[미디어스=문현숙 칼럼] 공적 소유구조의 언론이 상업자본에 팔려나가면서 미디어 공공성 역행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보도전문채널인 와이티엔(YTN)의 한전KDN과 한국마사회 보유 지분(30.95%)이 지난달 23일 최고가를 써낸 유진그룹에 낙찰됐다. 공영미디어의 공공성이 정부가 내세운 자산 효율성이라는 잣대에 떠밀린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최다액 출자자 변경 승인 심사를 통과하면 YTN은 최대주주가 사적 소유구조로 바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언론통제 전략은 투트랙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정권 비판 언론을 대상으로 한편은 인사 전횡과 압수수색 등의 고압적 탄압 방식, 또 다른 한편에선 정권과 코드가 맞는 자본시장에 공영미디어를 떠넘기는 사영화 작전이다.

한전KDN과 한국마사회가 보유한 보도전문채널 YTN의 지분 30.95%를 유진그룹이 낙찰받았다. 23일 YTN 매각 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 주재로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 진행된 개찰을 마치고 관계자들이 회의장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한전KDN과 한국마사회가 보유한 보도전문채널 YTN의 지분 30.95%를 유진그룹이 낙찰받았다. 23일 YTN 매각 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 주재로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 진행된 개찰을 마치고 관계자들이 회의장을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정부여당은 그동안 선진국과 견줘 공영방송이 너무 많다며 ‘1공영 다민영‘ 체제를 주장했다. 첫 주자 YTN에 이어 KBS 2텔레비전, MBC까지 겁박하고 있다. 미디어 지형 변화에 대한 원칙과 기준 등 사회적 공론화도 없이 밀어붙이는 YTN 사영화 작업은 절차, 헐값 매각 의혹뿐 아니라 유진그룹에 대한 언론사 소유자로서 부적격 논란 등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YTN은 국내·외 뉴스 신뢰도에서 지속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온 보도채널이다. KBS 공영미디어연구소가 지난 5월 발표한 2023년 1분기 미디어 신뢰도 조사에서 가장 신뢰하는 방송사 뉴스(인구특성별 분석 1순위)는 MBC 29.8%, KBS 15.6%에 이어 YTN이 11.8%로 3위였다. 같은 보도채널인 연합뉴스TV는 한 자릿수인 6%였다. 지난 6월 공개된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3’을 보면, 국내 주요 언론사 신뢰도 조사에서 1위 MBC(58%)에 이어 YTN(55%)은 KBS와 공동 2위였다. 이 연구소의 2022년과 2021년도 신뢰도 조사에선 YTN이 연속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YTN을 인수하려는 유진그룹은 건설자재·금융 등 5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고 지배회사인 유진기업은 레미콘업계 1위로 알려졌다. 지상파방송인 SBS도 TY홀딩스가 최대주주(36.92% 지분 보유)로 태영건설이 주력 계열사이다. 지역방송에도 건설토건 자본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

건설토건 재벌들이 언론사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언론에 지속적 투자를 해서 저널리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 회의적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경 유착 속에 선정된 기업들이 언론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활용한 사세 확장과 홍보·이미지 강화에 무게를 두고 진출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서울신문의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카테고리. 관련 기사 50여 건은 2022년 1월 17일 일괄 삭제됐다. (사진=서울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신문의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카테고리. 관련 기사 50여 건은 2022년 1월 17일 일괄 삭제됐다. (사진=서울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전형적 사례가 서울신문이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인 서울신문은 2년 전 최대주주가 호반그룹으로 바뀌었다. 주력사가 호반건설이다. 이후 서울신문에서 호반을 비판했던 기사가 일괄삭제됐다. 이를 비판한 기자들은 줄줄이 신문사를 떠났다. 지면엔 호반건설 주택청약 소식과 사주·그룹의 동정과 홍보가 자주 등장했다. 편집권 유린의 지면 사유화와 언론 자유 침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또 다른 건설 관련 그룹인 유진이 YTN을 소유하면 미디어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공영이든 사영이든 언론이라면 저널리즘 가치를 실현해야 할 책무가 있다. YTN이 조직화된 이익집단인 재계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을 때, 대주주가 채널 신뢰를 바탕으로 유리한 보도를 띄우고 불리한 기사 삭제를 강요한다면 권력을 감시·견제해야 할 언론 역할은 무기력해질 수 있다. 방송 공정성은 취약해지고 왜곡·편파뉴스가 난무한다면 보도채널로서의 정체성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YTN은 광고 의존도가 높은 채널이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방송·사업 매출에서 콘텐츠 등 사용료보다 광고·협찬 등의 비중이 81%에 달한다(전자공시시스템 2022년 연말 기준). 여기에 사적 자본이 개입되면 보도와 광고의 경계가 불투명해질 수 있다. 방송법 제73조(방송광고)에서 방송사업자는 방송 광고와 방송 프로그램이 혼동되지 아니하도록 명확하게 구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 제고를 위한 프로그램 압박이나 이윤의 극대화를 노린 광고주와의 기사 거래 등을 막기엔 한계가 있다. 이대로 진행 땐 경영 효율화를 내세워 뉴스 연성화, 상업주의에 내몰릴 수 있다.

유진그룹 [유진그룹 제공=연합뉴스]
유진그룹 [유진그룹 제공=연합뉴스]

<부자 미디어 가난한 민주주의>에서 저자 로버트 W.맥체스니는 “기업적 미디어가 부유해지고 힘이 강해질수록 참여 민주주의의 전망은 더욱 빈곤해진다”고 설파했다. 윤석열 체제에선 정권의 언론 통제에 이어 경제권력의 미디어 장악까지 겹쳐 민주주의는 점점 퇴행한다고 하겠다. 정부가 밀어붙이는 공공성 역행을 저지하기 위해 야당에서 ‘사영화 방지법’을 발의했지만 소관 상임위조차 넘지 못한 상태다.

YTN 지배주주가 바뀔 때 소유·경영의 명확한 분리, 방송의 독립과 편성 자율성 보장이 확실한지 좀 더 엄격한 제도적 점검이 필요하다. 보도채널의 공정성과 공공성, 공익성이 훼손되면 그동안 쌓아놓은 뉴스 신뢰도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 문현숙 전 한겨레 기자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에서 발행하는 '언론인권통신' 제 1020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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