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여진 칼럼] 우리나라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되어 있는 매체는 2만 개가 넘는다. 이렇게 많은 언론사 중 우리가 접하고 알고 있는 언론은 많지 않다. 구독료가 아닌 광고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우리의 신문시장은 과열경쟁, 플랫폼의 변화, 광고시장 위축 등으로 위기에 놓여 있다. ‘시민의 알권리’를 위임받아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은 치열한 경쟁과 위축된 시장 환경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생존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언론사의 경영은 훨씬 더 공격적이며 노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급기야 감시와 견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건설자본, 금융자본이 언론사 경영에 뛰어들었고, 경영이 어려운 언론사는 그들에게 영혼까지 내어주며 간판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언론노조, 언론연대, 언론인권센터가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언론노조, 언론연대, 언론인권센터가 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지난 2월 8일 국회소통관에서 신문법 일부개정안 내용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대표발의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홍익표 위원장과 언론노조,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인권센터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번 신문법 개정안은 신문사를 새롭게 등록하거나 양도・합병하고자 하는 자가 편집・제작운영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조항(신문법 제 9조 제 1항 제 12호)을 신설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그리고 그 계획서에 편집의 독립성 보장과 독자의 권리 보호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신문사 양도・합병 시 신문 종사자들이 미리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사업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신문 종사자들과 새로운 사업자가 계획서의 내용을 두고 편집권 독립에 관한 협약을 추진하거나 보완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그동안 언론이 보여준 지나친 상업주의적 모습에 시민단체가 지속적으로 문제를 지적해 왔지만, 건설이나 금융자본과 같이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이들이 언론사주가 되었을 경우에는 단순한 상업주의적 경향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 언론의 역할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미 서울신문의 경우 사주가 바뀌면서 과거에 보도되었던 호반건설에 대한 비판기사가 삭제되었다. 언론이 자본과 유착된 권력의 문제를 감시하기는커녕 덮어주어야 하는 지경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사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은 우리 공동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다.

지난 2009년 국회는 신문법을 언론사 내 편집위원회 설치를 강제조항이 아닌 임의조항으로 바꾸며 편집권 독립 관련 기능은 권고 수준으로 축소시켰다. 그동안 신문법 개정논의는 2009년 개정된 신문법(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을 다시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현행 신문법이 편집규약과 편집위원회 설치를 강제 사항으로 두지 않아 신문 편집의 자율성을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여기에 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포털사이트 운용사)의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고 정보공개 규정을 담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서울신문의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카테고리. 관련 기사 50여 건은 지난해 1월 17일 일괄 삭제됐다. (사진=서울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서울신문의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카테고리. 관련 기사 50여 건은 지난해 1월 17일 일괄 삭제됐다. (사진=서울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신문법이 편집권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틈을 이용해 언론사를 인수합병한 경영주는 자사 언론인을 사주의 말을 잘 들어야 연명할 수 있는 일개 직원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사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은 ‘알권리’와 무관하고, 독자의 권익을 무시할 수 있으며, 우리 사회의 인권을 확장하기는커녕 시류에 편승해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

이번 신문법 개정안은 신규 인수합병하는 언론사에 한해 편집권 독립 조항이 신설된 것이지만, 앞으로 모든 언론사가 정기적으로 편집·제작 운영계획서를 문체부에 제출하는 것으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언론이 본연을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할 수 있을 것이다.

*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990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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