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보수. 변화를 반대하고 기존의 것을 보전하고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보수를 표방하는 세력들의 뻘짓 덕분에, 한국에서는 보수란 단어를 삐딱하게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실 보수는 가치중립적인 단어입니다. 변화가 아닌 안정을 추구하는 일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죠.결혼. 남녀가 법적, 사회적으로 관계 맺음을 인정받는 제도입니다. 부모들의 결혼하라는 잔소리 덕분에, 30대 중반의 남녀에게 결혼은 억압의 뉘앙스를 지니고 있지만, 결혼이야말로 관계의 절정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남녀는 결혼을 통해 관계를 인정받고, 관계의 지속성을 담보받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관계의 지속성입니다. 한마디로, 결혼은 남녀 관계의 안정성을 확보해주는 중요한 안전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은 매우 보수적인 제도
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 유달리 살인 뉴스가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냄새난다며 50대 노모를 패 죽인 아들, 자기 엄마를 안 모신다며 올케언니를 찔러 죽인 시누이, 말다툼 끝에 시어머니를 흉기로 찌른 며느리의 이야기까지, 하나 같이 충격적인 사건들이었죠. 이런 뉴스를 접할 때면, 보통 두 가지 반응이 먼저 나옵니다. 하나는 가해자가 분명 정신병자 아님 미친놈이랄 것이란 비난. 제 정신이 아니고서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못할 것이라는 거죠. 두 번째는 재수 없게 내가 피해자가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두 반응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난 적어도 폭력과 무관한 사람이란 사실. 육하원칙에 따라 작성된 기사는 사건을 철저히 타자화합니다. 그래서 기사 속 가해자들을 나와 무관한 사람들
문제는 슬립다운인가 녹다운인가였습니다. 복싱에서 슬립다운은 미끄러져 넘어진 다운을 말합니다. 일종의 실수죠. 녹다운은 상대의 펀치를 정통으로 맞고 쓰러진 다운입니다. 확실한 다운이죠. 영화 의 전직 복서 출신인 딕키는 약에 중독된 폐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전설적인 복서 슈가레이 레너드를 녹다운 시켰다는 자부심 하나를 믿고 살아갑니다. 슈가레이 레너드를 녹다운 시켰단 사실은 현실의 비루함을 모두 잊게 해줄 마약 같은 추억입니다. 때문에 딕키에게 슬립다운인가 녹다운인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복싱계의 전설 슈가레이 레너드를 녹다운 시켰다면, 승패와 무관하게 그 자체로 영광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슬립다운이었다면, 딕키는 과거의 기억을 자부심으로 간직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1중세 시대에도 가난한 사람들은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그 땐 굶어죽는 사람도 있었죠. 하지만 심리적인 부분만 놓고 본다면 그들은 우리만큼 괴롭진 않았을 겁니다. 그들에겐 분명한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가난은 가난한 사람들의 책임이 아니다’ ‘가난함에 도덕적 의미는 없다’ 중세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지위와 부가 결정됐다고 믿었습니다. 때문에 가난한 것은 하늘의 탓일 뿐, 자신의 책임이 아니었죠. 중세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에게 ‘게으르고 나태한 자’라고 도덕적인 비난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릅니다. 가난엔 도덕적 책임이 뒤따릅니다. 이제 가난은 물리적인 고통과 심리적인 불안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가난은 ‘킹크랩을 먹지 못해’ 괴로운 것이 아닌, ‘사회적 무능력자’라는 인식 때문에 우릴 힘들게
의 원작을 전혀 모릅니다. 대신 김태용 감독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는 세상과 단절한 한 여성에게 다가온 한 남자의 이야기랍니다. ‘소통’ 이죠. 김태용 감독은 전작 에서도 소통을 영화 속 중요한 화두로 삼았습니다. 서로의 의도는 언제나 엇갈리고, 사람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외로워합니다. 신작 에서 김태용 감독은 보다 깊이 있게 소통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1.나는 소통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자크 라캉은 인간의 욕망이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밖에서 주어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내가 부자가 되고 싶어서’ ‘권력을 얻고 싶어서’ 스스로 자신만의 욕망을 추구한다고 생각하지만, 구조적으로 모든 욕망은 상징계라 불리는 외부가 가져다 준
나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을 잘 알지 못합니다. 얼마 전 선생의 부고를 듣고 ‘벌써 돌아가시다니’하고 놀랄 정도였으니까요. 난 선생을 육 십 언저리인 어머니 또래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돌아가실 적 연세는 향년 80세.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50학번이다. 숫자 ‘50’과 ‘학번’이란 단어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럼에도 선생의 나이를 20살이나 깎아먹은 것은 아마도 내가 선생을 떠올릴 때마다 나의 장모님을 함께 연상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두 분의 외모는 닮지 않았지만, 난 박완서 선생을 떠올리면 장모님이 함께 떠오릅니다. (물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완서 선생의 큰 딸이 장모님 또래라고 한다.) 두 분의 외모가 모두 온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장모님 역시 소설을 쓰셨
홍익대학교의 청소, 경비를 담당하는 아줌마 아저씨 170명이 해고됐습니다. 아줌마, 아저씨를 고용한 용역업체와 학교의 계약이 해지됐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아줌마, 아저씨들의 용역 단가를 올릴 생각이 없었습니다. 반면 용역업체는 최저임금보장을 위해 용역단가 인상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당시 아줌마, 아저씨들이 받고 있던 임금은 월 75만원. 해고를 당하기엔 참으로 서글픈 액수였습니다. 물론 용역업체 직원들이 직장을 잃는 사건은 한국에서 더 이상 충격적인 뉴스가 아닙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는 일은 일상이 되었죠. 사람들도 이제 일상을 덤덤히 받아들입니다.하지만 홍대 총학의 반응은 나름 충격적이었습니다. 홍대 총학은 ‘학교는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노조관계자
장하준 교수의 새 책 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것만큼이나 놀라운 뉴스입니다. 과연 무엇이 장 교수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이끌었을까요. 는 장하준 교수의 전작, , , 에서 다뤄왔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기존의 주장들을 23가지라는 틀에 맞게 분류해, 주장을 좀 더 명료하게 단순하게 만들었습니다. 때문에 장하준 교수의 전작을 전혀 읽지 않았다하더라도 장하준 교수의 주장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그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주장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자유 시장경제의 신화를 허물자.”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시장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시장은 선, 규제는 악’을 모토로 탄생한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사고를 공고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2008년에 발생한 금융위기도 신자유주의의 기세를 흔들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맹목적인 낙관은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요. 바로 추상화된 미시경제학 교과서의 다양한 그래프에서 온 것입니다. 경제학의 온갖 모델들은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을 그대로 놓아두면, 자연스레 시장이 균형을 향해 나아간다고 말합니다. 수요와 공급이 알아서 균형을 찾아가려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바로 이러한 믿음에서 ‘시장이 우리의 삶을 자유롭게 하리라’는 신흥 종교가 탄생했습니
21세기 최고의 오락 영화로 평가받는 . 저는 특히 엔딩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침묵이 수호자이자 우릴 지켜보는 보호자, 그는 바로 어둠의 기사란다.(He's a silent guardian, a watchful protector…a dark knight.)”라는 고든 형사의 말과 함께 영화는 끝납니다. 스크린이 어두워졌을 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객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감동의 도가니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질 못했습니다. 정말 긴 여운을 남기는 멋진 엔딩이었거든요. 하지만 가슴 한 구석이 찜찜했습니다. 고든의 멋진 대사가 등장하기 전의 묘한 상황 때문이었죠. 영화가 끝나기 직전, 배트맨은 하비덴트가 범죄자였단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내가 그 경찰들을 죽인 걸로 합
Ⅰ.제가 막 아빠가 됐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좋은 아빠 되기’는 제 원대한 꿈이었습니다. 이건 마치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취업해서 좋은 일꾼이 되어야지’라는 생각만큼이나 평범한 꿈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떻게 좋은 아빠가 되는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란 질문만큼이나 어렵고 심오한 문제입니다. 때문에 전 영화에서 자녀 교육과 관련된 장면이 나오면, 힌트를 얻으려고 집중해서 보곤 했습니다.가끔은 영화의 전체 내용 중 자녀 교육에 해당되는 부분만 기억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그랬습니다. 미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이 걸작에서 제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부분은 브래드피트도, 릴 낚시도 아닌, 주인공의 아버지였던 목사가 자녀들에
침대에 누우면 눈이 말똥말똥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전 아내와 ‘침대위의 수다’를 떨고 싶은데, 보통 잠이 많은 아내는 두 마디 정도 하다가 잠이 듭니다. 그래서 우린 침대 위의 수다를 도통 하지 못 합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어쩐 일인지 아내의 눈도 저처럼 말똥말똥 해졌습니다. 그 날 밤, 우리는 새벽 3시까지 침대위의 수다를 떨 수 있었습니다. 주제는 ‘사랑과 결혼’. 인류가 탄생한 후, 모든 철학자들이 고민했던 거대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침대에서 시작한 것이죠. 나; 그런데 우리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을 보면 하나 같이 경제적 수준이나 종교, 문화적 환경 등이 비슷한 경우가 많은 거 같아. 내 친구들 와이프도 그렇고, 네 친구 남편들도 그렇고, 학벌이나, 재산 수준, 직업 등이 다 비슷비슷하잖아
본질; 실존에 상대되는 말로, 어떤 존재에 관해 ‘그 무엇’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성질. 국어사전에 나온 본질의 정의입니다. 명확히 이해되는 깔끔한 설명은 아닙니다만, 여기서 핵심은 ‘그 무엇’입니다. 한 마디로 대상의 특징을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바로 대상의 본질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살펴보죠. 여기서 사람의 특징을 설명한 ‘그 무엇’은 바로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람의 본질은 ‘사회적인 동물’이 됩니다. 그런데 본질은 단순히 대상을 정의할 뿐만 아니라, 규정하기도 하는데요. 사람의 본질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면, 사회적이지 않은 동물은 인간이 아닙니다. 때문에 인간의 본질을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인간은 사회적인
2007년 12월, 세상은 변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2년이 흘렀습니다. 노무현 시대를 풍미하던 ‘정의(Justice)'의 주인공은 모두 교체됐습니다. 대신 노무현 시대 시절, 바닥을 뒹굴던 조연들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대북 포용 정책은 물러터지다는 비판 아래 하차했고, 대신 호전적인 강경책이 단호하단 강점을 얻고 올라섰습니다. 노무현 시대에 정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종부세는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악으로 여겨졌으며, 감세를 통한 경기 활성화가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올랐습니다. 급기야 새로운 시대는 ‘행정수도 이전 반대’를 들고 나와 이전 시대에 활동하던 정의의 흔적을 완전히 새로운 얼굴로 대체하려 했습니다. 적잖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가는 그 다음 문제였습니다. 물론 조중동의 이념으로 무장한
요즘 파업이란 걸 난생 처음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파업이란 게 생각보다 참 힘들었습니다. 일 안 하고 노니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정신적으로 불안한 게 꽤 괴롭습니다. 정신적인 불안함은 두려움 때문인데요. 왜 두려울까요? 모르기 때문입니다. ‘파업이 어떻게 끝날까’ ‘파업이 끝난 뒤 난 어떻게 될까’ ‘회사는 좀 변할까’ ‘파업 참여율은 얼마나 높을까’ ‘외부의 시선은 어떨까’ 등등. 전 어떤 질문에도 답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과연 우린 파업을 해야 할까’ ‘파업이 정말 옳은 것일까’란 의문에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저란 존재는, 아니 인간은 제대로 아는 게 거의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인간의 이해력은 너무나 부족한데요. 철학자 올리비에 푸리올은 이런 인간을 두고 “인간은 장님이라고
“이 영화의 내용에 또 하나의 의미가 더 있다면 그건 사회적 부조리 때문에 주변인이 되는 여자와 자기 책임으로 주변인이 된 루저 남자의 이야기겠죠.” 영화 의 주연배우 박중훈이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전 이 말이 영화의 핵심을 정확히 집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부조리 때문에 주변인이 되는 여자’. 정유미가 연기한 옆집 세입자 세진입니다. 속칭 오늘날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젊은 세대를 대변하죠. 반면 ‘자기 책임으로 주변인이 된 루저 남자’. 박중훈이 연기한 오동철이란 깡패입니다. 이전 세대의 루저를 대표하는 인물입니다.옆집 세입자 세진은 취업을 위해 정말 목숨을 겁니다. 매일 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아끼기 위해 영양제로 끼니를 대신합니다. 먹고 자는 시간을
“당신이 힘들게 벌어 쓴 112만원의 가치를 알기에 당신을 아낍니다.” 요즘 한 TV광고의 문구입니다. 남자, 여자 버전이 있는데, 남자는 회식자리에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여자는 백화점 화장실에서 서러운 눈물을 흘립니다. 둘 다 노동의 고단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광고는 ‘당신이 얼마나 X빠지게 고생하는지 알기 때문에 우리 캐쉬백포인트로 당신의 고생을 어느 정도 보상해주겠다’라는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요. 전 이 광고를 볼 때 마다 가증스러워 죽겠습니다. 이 광고는 ‘대한민국 상위 1%의 차’ 따위의 광고랑은 다른, 새로운 차원의 분노를 일으킵니다.광고는 영리합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굴레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결코 소비를 멈추지 않
전 싹싹한 성격이 아닙니다. 낯도 많이 가리죠. 한 번은 처갓집을 나서면서 아내의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는데, 마침 그 광경을 본 아내가 한참을 웃습니다. “왜?” “하하. 아니 그냥 할머니 방에 들어가서 인사하면 될 걸. 밖에서 멀찍하니 떨어져서 배꼽 인사하는 오빠 모습이 정말 어색해서.” 장인어른, 장모님도 수다스러운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위마저 무뚝뚝하니, 당신들의 애정을 표현할 길이 많지 않으셨을 겁니다. (언제나 “자네, 별일 없나?”라는 질문으로 대화가 시작되지만, “예, 별일 없습니다.”로 대화는 막을 내린다.) 그래서 장모님은 음식으로 애정 표현을 대신합니다. ‘조 서방 이것 좀 먹어봐. 국수도 좀 먹을래. 밥 좀 더 먹어. 딸기랑 감도 먹어봐’ 등등. 한 번은 배가 터질 것 같아서 힘
는 경향신문에 2005년 연재됐던 만화 모음집입니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만화가 지망생들의 모습을 솔직하게 그려냈는데요. 5년 전에 나왔지만 지금 떠드는 88만원 세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여전히 따끈따끈 합니다. 특히 집에 물이 새자 주인공과 친구들은 주인에게 항의하러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뻔뻔한 대응. 하지만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방으로 돌아와 ‘C-8’이라며 분노해보지만 거기까지입니다. 그들의 분노는 ‘왜 미안해하지 않는 거냐’는 의구심을 벗어나지 못하죠. 사회의 부조리조차 개인의 부족함으로 받아들이는 오늘날 젊은이들의 모습과 닮아있었습니다. 물론 신문 연재용으로 그렸기 때문인지 분량이 짧습니다. 때문에 내용의 깊
Chapter1: 영웅호걸을 만나고 싶어요.아내와 사귄 뒤 가졌던 친구들과의 첫 술자리. 진부하지만 빠질 수 없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넌 네 여친 어디가 좋아서 만나는 거냐?” 곧 이은 저의 대답. “응, 걘 대인배야. 마치 도산서원에 있는 오래된 고목 같다고나 할까” 순간 굳어버린 친구들의 표정. ‘나비도, 꽃도, 토끼도, 강아지도 아닌 오래된 고목 같다고?' '지금 네가 만나는 여자 친구가 혹시... 몇 살?' '그녀의 이름은......신사임당?’ 녀석들의 표정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었습니다.곧이어 부연 설명 했습니다. “응. 토끼나 강아지처럼 깜찍하거나, 꽃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대인배 기질이 펄펄 넘치는 사람이야. 마치 걜 보고 있으면 맹자의 호연지기가 떠오른다고나 할까?” 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