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윤희숙 전 의원이 서울 중구 성동갑에 출마 선언을 하자 언론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의 ‘운동권 청산 공천’이 시작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서울 마포을의 김경율 비대위원, 인천 계양을의 원희룡 전 장관 등에 더해 더불어민주당의 86세대 주요 인사와 맞붙기로 한 인사들이 ‘운동권 청산’이라는 하나의 맥락 안에 있다는 거다. 조선일보는 ‘한동훈표 킬러공천’이라고 썼다.
유권자들도 그렇게 볼까? 각자 앞으로 하기 나름이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지만, 이런 이들을 반드시 ‘운동권 출신’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윤희숙 전 의원 역시 ‘운동권’과 대비되는 ‘경제전문가’라는 타이틀 하나로만 평가할 인물은 아니다. 부친의 투기 의혹으로 의원직을 내려놓은 이력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러나 국민의힘 구성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럴듯한 얘기일 것이다. 화제가 되고 있는 지역구는 결코 쉬운 곳이 아니다. ‘윤심’이 실린 인사들이 나가봐야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윤심’이 그나마 덜 묻었으면서 전통적인 국민의힘 출신 인사처럼 보이지 않는 카드를 배치하는 게 그나마 답이다. 어떻게든 정권심판론을 희석시키면서 동시에 ‘거야심판론’이라는 반격으로 연결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런 방향의 출마 선언이나 공천이 이뤄질 것을 전망하는 시각이 있는 건 그래서다.
이 대목에서 최근의 윤석열-한동훈 충돌 소동까지 묶어 ‘공천 갈등’까지 연상하는 흐름도 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입장에선 어찌되었든 총선에서의 성과가 절실하다. 총선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윤심’과 거리를 둬야 한다. 당정의 일체화는 반드시 ‘정권심판론’이라는 함정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전당대회 등을 통해 수차례 확인된 바와 같이 ‘윤심 공천’을 기도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중과 충돌한다. 결국 윤석열-한동훈 갈등은 2차전 또는 3차전까지 예고되어 있다는 것이다.
일부 언론은 이를 현재권력 대 미래권력의 대결구도로 보기도 하지만 다소 성급한 해석이다. 이 갈등은 과거 이명박 정권 시절의 ‘이명박 대 박근혜’ 구도, 즉 친이 공천을 위해 친박을 학살하는 등의 구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당내에 확고한 자기 세력을 구축해 놓은 상태도 아니다. 친한 대 친윤 구도는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거다.
공천권을 고리로 현역 의원들을 줄 세울 수 있지 않느냐는 해석도 있는데,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다. 비대위원장 임기가 끝나면 당을 떠나든가 아니면 전당대회에 출마해야 한다. 보도에 의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 내각으로 돌아와 경험을 쌓으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실제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이나, 여기서도 확인되는 건 대통령은 한동훈 비대위원장에 총선 이후에 당권을 맡길 생각이 없다는 거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임기 마치고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선돼야 ‘친한동훈계’는 비로소 의미있는 형태로 형성된다. 물론 총선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거뒀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지난 총선의 경우 황교안 당시 대표가 공천했지만 성과가 없었고 황교안 대표 본인도 원내 진출에 실패했으므로 친황계가 형성되지 못했다. 마찬가지 결과가 한동훈 비대위원장에게도 닥칠 수 있다. 총선 성적이 안 좋으면 어떤 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이 시점에 벌써 언론이 미래권력을 운운하는 게 당혹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자업자득이다. 정치적으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여당 지도부를 비합리적인 이유로 연이어 스스로 무너뜨려 정권 2인자가 비정상적 형태로 비대위원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2인자가 이런 식으로 나서게 되면 1인자와는 반드시 충돌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역사적으로 예외는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제거 작전’을 실행하다 멈춘 것은 이게 결국 지지층 분열을 불러와 총선을 망치고 국정 동력 상실을 불러올 게 명확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2인자에게 공간을 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밀어낼 수도 없는 게 윤석열 대통령이 처한 딜레마이다.
그런데 방향을 달리 생각해보자. 과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정치를 다루는 방식이나 철학에 있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두 사람은 극히 일부의 주제를 제외하고는 거의 똑같은 얘기를 해왔다. 사실 ‘운동권 심판론’ 역시 전형적인 ‘윤석열 코드’다. 두 사람이 갈등하는 ‘극히 일부의 주제’에 포함되는 것은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대응인데, 그마저도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요구하는 것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 그걸 요구하는 것은 김건희 여사 문제를 정리하지 않으면 ‘정권심판론’을 돌파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김건희 여사 문제만 해결하면 두 사람은 충돌이나 갈등할 일이 없다는 거다. 과거 ‘이명박 대 박근혜’ 갈등에 비하면 얼마나 쉬운 해법인가? 이 쉬운 일을 왜 못할까? 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를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라고 했을 때는 장인이 문제였지 배우자가 직접 문제가 된 건 아니었다. 소위 ‘연좌제’와 비슷한 얘기였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더러 “아내를 버리겠습니다”라고 하라는 사람도 없다. 적절한 설명과 사과를 내놓고 책임 소재를 밝히며 재발방지의 대안을 내놓으라는 거다. 그런데 KBS와 대담을 한다는 걸 보면 아직도 그럴 것 같지 않다. 참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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