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논리를 설명하는 대통령실 이관섭 비서실장의 모습은 대통령의 참모라기보다는 방송 패널 같았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 행해져야 함에도 이 정권 들어 남발되고 있는 인상인데, 이관섭 비서실장의 이런 모습은 양뿐만 아니라 아닌 질도 문제라는 지적을 낳기에 충분했다.

더 문제는 비상 상태인 국민의힘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용산의 이런 ‘코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거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8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이해충돌이라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대장동 특검이야말로 자기 당 대표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의 방탄특검”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관섭 비서실장이 이른바 ‘50억 클럽 특검’에 대해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방탄이 목적”이라고 한 것을 그대로 되뇌인 것이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쌍특검법'의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5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쌍특검법'의 윤석열 대통령 거부권 행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50억 클럽 특검이 ‘이재명 방탄’이라는 논리의 근거는 이관섭 비서실장의 주장에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데 “누군가 대장동 사업 로비용으로 50억원을 받았다면 그 사람은 당시 인허가권자인 이재명 성남시장 주변 사람일 것이고,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해서라도 지난 대선에 민주당의 집권을 바라고 지지했을 것”이라는 거다.

그런데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이전에 국회에서 공개해 밝혀진 ‘50억 클럽’의 멤버들을 보면 전직 국민의힘 의원도 있고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이도 있어 ‘성남시장 주변 사람들’이라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들이 김만배 씨 등을 통해 이재명 대표와 따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지는 수사를 통해 확인해야 할 문제인데, 정작 검찰은 제대로 된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50억 클럽에 속한 인사 중 하나인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한 수사도 국회에서 특검 도입이 논의되자 부랴부랴 시작했을 정도다.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안 하니 특검 주장은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 보수언론도 50억 클럽 특검은 검찰이 자초한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이 이해충돌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이 놀랍다”면서 “방탄 특검을 당 차원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이해충돌”이라고 했는데, 대장동 사건은 결국 이재명 대표에 대한 문제이고 50억 클럽 수사가 그것과 무관할 수 없으므로 민주당이 특검을 추천하는 것은 이해충돌이라는 논리는 언뜻 보기에 사리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50억 클럽 특검의 경우 바로 그런 우려 때문에 비교섭단체가 추천권을 갖는다는 걸로 돼있다는 거다. 현재로서는 정의당, 기본소득당, 진보당에 해당이 되는데 이들은 민주당과 이해관계를 달리하므로 특검을 추천하는 걸 ‘이해충돌’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걸 모르고 ‘이해충돌’이라는 주장을 했다면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용산의 지침만 따르는 역할을 하는 셈이고, 알고 했다면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게 된다.

2021년 12월 30일 유튜브 채널 '윤석열'에 게재된 영상 갈무리
2021년 12월 30일 유튜브 채널 '윤석열'에 게재된 영상 갈무리

용산과 여당이 ‘도이치모터스 특검’ 또는 ‘도이치 특검’이라 부르고 있는 ‘김건희 특검’에 대한 반대 논리는 좀 더 심플하다. 이관섭 비서실장은 “도이치모터스 특검 또한 12년 전 결혼도 하기 전 일로 문재인 정부에서 2년간 탈탈 털어 기소는커녕 소환도 못 한 사건”이라고 했는데, 이 주장은 국민의힘 소속인 권은희 의원의 발언으로 완벽하게 반박된다.

권은희 의원은 8일 불교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 “범죄가 사인 시절에 이루어졌느냐보다 범죄 혐의에 대한 수사의 불공정성이 어떤 시기에 이루어졌느냐, 어떠한 영향이 있었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고위직 검사 또는 검찰총장, 대통령 후보 등의 지위에 있는 이의 배우자를 수사기관이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것으로 의심되기 때문에 특검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2년간 탈탈 털어 기소는커녕 소환도 못 한 사건”이라면 뭇사람들의 지적대로 검찰이 이 사건 관련 김건희 여사를 불기소 처분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조치는 여태까지 없었다. 이 사건 주요 관계자인 권오수 도이치모터스 회장에 대한 1심 재판에서 김건희 여사의 사건 관련 역할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가 일부 드러났음에도 수사가 진척된 바는 없다. 역시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특검이 필요하고, 특검 추천은 대통령의 배우자에 대한 것이니 만큼 과거 내곡동 사저 특검 등에 비추어 야당이 하는 게 옳다는 거다. 무리한 논리가 아니다.

결국 용산과 여당이 내세우는 특검불가론 중에 남는 건 선거 영향이 우려된다 정도인데, 두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첫째, 선거 영향이 우려되면 특검을 여당이 조기에 수용했으면 됐다. 이 정권 주장으로 “2년간 탈탈 털어 기소는커녕 소환도 못 한 사건”이 맞다면 특검에서도 별다른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을 거고, 그랬으면 지금쯤 ‘김건희 리스크’ 따위는 걱정할 일이 아니었을 거다.

둘째, 선거 영향을 우려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면 정부는 아무것도 해선 안 된다. 대통령은 각 부처 업무보고를 전국을 돌며 ‘민생토론회’ 방식으로 진행하는데,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단해야 한다. 공매도 무기한 중단을 기정사실화 하거나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를 추진하는 것은 주가부양의 의도가 있는 걸로 비춰져 선거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만둬야 한다.

뭘로 봐도 거부권 행사가 말이 안 되니 조선일보 등은 여전히 ‘총선 후 특검 수용’을 주장하고 있다. TV조선 등은 이 방안에 대해 지난해 12월 중순 여권 핵심부에서 논의됐던 안이라고 해설했다. 그런데 한동훈 비대위원장 취임 이전에 대통령실은 윤재옥 원내대표까지 불러 이 방안을 포함한 특검 원천 거부에 쐐기를 박아 버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논의하며 서로 등을 떠밀다 고양이에게 들키는 바람에 고양이가 화를 내게 된 셈이다.

그런 맥락으로 보면 재의결 국면에 대체입법의 방식으로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하는 ‘총선 후 특검 수용’ 역시 현실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태도가 변하지 않을 거고, 여당 역시 이를 거스를 뜻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부 비대위원이 방송 인터뷰에 나와 ‘김건희 리스크’ 여섯 글자를 말할 수 있게 된 걸 성과로 꼽아야 할 판이다. 그렇게 목 놓아 외치던 공정과 상식은 어디로 갔는지 어리둥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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