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국민의힘은 26일 한동훈 비대위원장 임명 및 비대위 설치안을 전국위에서 의결할 예정이다. 그러면 비대위 인선 작업을 거쳐 28일 쯤 비대위 구성에 대한 최고위 의결이 이뤄지고, 29일 상임전국위가 이를 추인하게 된다. 비대위 공식 활동은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28일 더불어민주당이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특검법을 단독처리할 예정이고 27일에는 이준석 전 대표의 탈당이 예고돼있기 때문에 한동훈 비대위가 이에 대해 뭔가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지는 사실상 시간적으로 없는 셈이다. 이 두 가지는 한동훈 비대위가 용산과의 관계 설정과 보수 통합이라는 점에서 맨 먼저 맞닥뜨릴 쟁점으로 꼽혀왔다.
물론 비대위가 구성되기 전에라도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이러한 쟁점에 대한 나름의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김건희 특검’에 대해서는 한동훈 전 장관이 ‘법 앞의 평등’과 ‘독소조항’ 등을 지적한 발언 때문에 총선 이후로 수사 시점을 미루는 등의 수정안을 전제로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방식의 해법이 나올 가능성이 거론된 바 있다. 그러나 이 해법은 두 가지 지점에서 난관에 부딪친 상태인데 첫째는 더불어민주당이 동의하지 않을 태세라는 거고, 둘째는 대통령실이 나서서 이러한 논의의 전제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관섭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4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총선을 겨냥해 흠집 내기를 위한 의도로 만든 법안이 아니냐는 생각을 확고하게 갖고 있다”고 했다. 25일 정부,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비공개 긴급 협의회를 열고 특검에 대한 수용 불가로 입장을 정리했는데 총선 후 특검을 추진하는 등의 조건부 수용안에 대해서도 불가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이러한 기류에 발맞춰 당내 주류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김건희 특검 수용 불가론’을 일제히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 및 평론가들은 한동훈 비대위가 목전에 둔 가장 큰 과제는 용산과의 관계를 건전한 방향으로 재설정하는 일이고 이를 위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동훈 비대위의 공간을 일정 정도 열어주고 분리 전략 등을 용인하는 등의 용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해왔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상황은 공간을 열어 주기는커녕 비대위 출범 전부터 당내 주류와 대통령실이 더 강력한 블럭을 형성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만일 한동훈 비대위가 이런 상황에도 ‘김건희 특검’ 수용 여부를 두고 용산과의 관계 재설정을 시도한다면 상당한 파열음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인데, 한동훈 전 장관이 현 시점에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 문제가 대통령 임기 초반에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치킨게임으로 비화하는 시나리오는 비현실적이다. 그러다 보니 한동훈 비대위가 ‘김건희 특검’에 대한 대통령실의 거부권 행사 이후 국면에 나름의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단 거부권 행사 자체는 막지 못하더라도 비대위가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지 않겠느냐는 거다.
구체적으로 어떤 시나리오가 가능할까? 첫째는 재의결 국면에서 대체입법을 추진하는 것이다. 한동훈 전 장관이 ‘독소조항’으로 언급한 수사 시점, 특검 추천권 등을 수정한 내용으로 새로운 특검법을 만들어 야당과 협의할 수 있다는 것인데, 국면이 바뀌어 야당과 대화는 수월해질 수 있을지 몰라도 용산을 설득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거부권 행사의 핵심은 특검 자체의 부당성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는데 여당이 ‘독소조항’만 수정한다는 것은 최소한 특검 자체의 필요성은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즉, 이 시나리오가 작동하려면 현재권력이 미래권력의 공간을 열어 주거나, 미래권력이 현재권력의 힘을 완력으로 빼앗는 그림이 연출돼야 하는데 앞서도 언급했듯 현직 대통령 임기 초에 이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둘째는 특별감찰관 임명이나 제2부속실 설치 등을 제안하고 이를 대통령실이 수용할 가능성이다. 최근 보수언론까지 ‘김건희 리스크 관리’ 필요성을 연일 논하는 걸 봐서 이 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만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기 위한 해결책은 아니기 때문이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을 뒤늦게 하는 것일 뿐이다. 한동훈 비대위의 용산과의 관계 재설정이 이 정도 수준에 그친다면 언론도 ‘생색내기’라고 평할 수밖에 없을 거다.
결국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한동훈 비대위를 통해 여당과 용산과의 관계를 재설정 하는 건 어려운 셈이다. 애초에 한동훈 전 장관이 비대위원장으로 지명된 것 자체가 그것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대통령이 여의도 출신을 못 믿으니 결국 검사 출신의 측근에 여당 대표격 자리를 넘긴 게 이 사태의 본질이란 뜻이다. 대통령은 여당뿐 아니라 전반적 국정에 대해서도 ‘그립’을 놓지 않는 방식으로 응하고 있다. 한동훈 전 장관에 대해서만 예외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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