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시험을 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하며 평소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게 정공법이다. 정공법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 ‘시험 잘 보는 법’을 따로 공부하는 것이다. 후자를 보통 꼼수라고 하는데, 요즘 국정 운영도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많다.

개각을 했는데 언론은 ‘서오남 탈피 인사’라고 한다. 대통령이 직접 “내가 모르는 사람이어도 좋다”며 여성 인재를 추천하라고 했다고 한다. 대선 때만 해도 성별보다 능력이 우선이라는 식의 주장 일변도여서 비판받을 정도였다. 당선 직후에는 외신 기자로부터 비판을 듣기도 했고 취임 이후 공직 사회에서 여성의 구조적 불이익에 대해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해 태도 변화를 예고했는데, 검찰 시절에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인지 의문인 점도 있었다.

어찌됐든 이것도 국정 운영 방향을 달리하겠다는 표현이라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총선을 잘 치르려면 대통령부터 변해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입을 모아 하는 얘기다. 그러나 그렇다기보다 여성을 장관 후보자로 지명한 게 다른 문제를 가리려는 시도에 불과한 것이라면 그 점은 엄중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인사는 어느 쪽일까?

윤석열 대통령은 4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최상목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사진 윗줄 왼쪽)을 지명하는 등 장관 6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에 강정애 전 숙명여대 총장(사진 윗줄 왼쪽 두번째부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송미령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국토교통부 장관 박상우 전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사진 아랫줄 왼쪽부터), 해양수산부 장관 강도형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원장,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오영주 외교2차관 등을 각각 지명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4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최상목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사진 윗줄 왼쪽)을 지명하는 등 장관 6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에 강정애 전 숙명여대 총장(사진 윗줄 왼쪽 두번째부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송미령 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국토교통부 장관 박상우 전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사진 아랫줄 왼쪽부터), 해양수산부 장관 강도형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원장,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오영주 외교2차관 등을 각각 지명했다.(연합뉴스) 

언론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이번 개각의 핵심 포인트는 ‘총선 대비용’이며 ‘쇄신’의 의미를 담지는 못했다는 거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외부에서 아주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기보다 관료 출신 3명 등 실용적 인사로 총선까지 정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취지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실 개편과 개각에서 ‘내부 돌려막기’ 양상은 사라지지 않았고, 향후 하마평을 보면 윤 대통령과 인연이 있거나 검사·기재부 출신 주축의 중용 기류가 재연될 소지가 있다”고 했고 동아일보는 “장관들의 총선 출마에 따른 내각 공백을 메우는 데 급급했던 것 아닌가 의문이 든다”, “무난한 내 편 인사, 회전문 인사 등으론 국민 감동을 얻기 힘들다”고 했다. 보수언론이 이런 정도라면 상식적 시민들의 눈에도 크게 다른 인상을 주기 어렵다는 뜻일 거다.

최상목 경제수석이 경제부총리에 재기용 된 것은 상징적인 대목이다. 세수부족을 초래하면서도 세금을 깎아주는 데 집착하고 재정을 쓰는 데에는 인색한 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새로 지명된 다른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 자리에 가서 이런 정책을 밀겠구나 하는 정책적 지향이 뚜렷해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오영주 외교부 2차관은 전날 언론 보도에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 가능성이 높은 걸로 보도됐다. 어떤 자리에든 갈 수 있는 사람에게 소신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결국 용산이 키를 쥐고 장관은 유명무실한 상태로 국정 기조에 변화가 없는 상태가 이어지는 것이다. 장관 후보자 인선에 지나치게 소홀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반대로 장관을 총선에 내보내는 데에는 누구보다도 진심인 게 이 정권의 특징이다. 추경호 부총리나 원희룡, 박민식 장관 등은 원래 정치인 출신이니 그렇다 치자. 다른 장관들은 지역구 출마를 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없어 보인다. 심지어 장차관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나 장미란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출마설까지 나오는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방문규 장관은 지난 9월, 장미란 차관은 지난 7월에 각각 취임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윤심’에 기대는 것 말고 집권당의 독자적 정치 전략이 없는 상태가 장기간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대통령은 태도를 바꿀 생각이 없는데도 대통령을 간판으로 한 선거를 치러야 하고, 인물난에 시달리게 된다. ‘윤심’이 그나마 묻어있고 인지도라도 기대해볼 수 있는 장관 차출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공천 과정에서도 대통령의 개입은 여러 형태로 불가피할 전망이다. 가령 언론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김은혜 전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과의 지역구 조정 문제를 거론한다. 둘 다 성남 분당구 을에 출마를 희망하고 있는데 당에서는 손을 댈 수 없어 ‘고위급’에서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문제를 김기현 지도부와 상의해야 한다. 인요한 혁신위의 권고안이나 비대위 전환설 같은 게 먹힐 여지가 있을리 없다.

이런 대목들은 애초에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기조를 전환하고 태도를 바꾸었으면 여당이 얼마든지 전략적 자율성을 가져가면서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문제다. 총선이라는 시험을 앞두고서도 대통령이 바뀌지 않고 ‘그립’을 놓지 않으려니 ‘시험 잘 보는 법’을 따로 공부해야 하는 처지가 된 거다. 쇄신의 의지가 없는 개각은 그 여파인 셈인데, 그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또 민망하니 결국 ‘서오남 탈피 인사’라는 고명이라도 얹자는 얘기가 된 것은 아닌가? 바뀌는 척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바뀌어야 ‘서오남 탈피 인사’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