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여당이 선거에 졌고 더 큰 선거를 앞뒀으니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보수언론은 그게 잘 기획된 일사불란이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어떻게 봐도 그런 모양은 아니다. 단지 타이밍이 문제일 뿐이라며 뭔가 불씨를 살려보려는 사람들도 있으나 큰 기대가 되지 않는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지도부, 중진,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을 직접 거론하며 불출마나 험지 출마 등을 요구한지 꽤 지났으나 의미 있는 답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의 대표격인 장제원 의원은 산악회 참여 등 지역구 관리 일정을 공개하며 혁신위의 요구를 대놓고 깔아 뭉개고 있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혁신위원회 첫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혁신위원회 첫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보다못한 조선일보가 결국 13일 장제원 의원을 직접 겨냥했다. 사설에 “대통령의 뜻을 누구보다도 제일 잘 헤아린다는 장 의원은 인 위원장의 주문을 비웃는 듯한 실력 과시로 대응했다. 정권의 성패보다는 의원 자신의 정치적 활로가 우선순위라는 명백한 의사표시일 것”이라고 쓴 거다. 이 신문은 또다른 친윤 핵심 이철규 의원이 사무총장을 그만둬 놓고 인재영입위원장을 맡았을 때에도 <선거 지고 혁신한다는 당에서 또 나온 이상한 인사>란 제목의 사설로 비판했는데, 달라진 건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다.

여기서 궁금한 건 대통령의 의중이다. 만일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대통령을 사랑한다면 결단해달라”는 요구에 ‘윤심’이 실린 거라면 장제원 의원이 저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결단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낮은 자세였을 것이다. 일각에선 나중에 높은 자리라도 받고 불출마하게 되지 않겠느냐 하는데, 이렇게 무력시위 하는 걸로 그게 되겠는가? 아직 ‘윤심’이 실린 정도는 아닐 수도 있겠다 싶으니 최초에 ‘영남 스타 의원’으로 호명된 주호영 의원까지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걸로 모드를 바꾼 거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1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유 그냥 마실래, 아니면 매 맞고 우유 마실래”라고 했다. 또 혁신위 안건으로 의원들의 윤리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했다. 만일 이러한 메시지가 ‘윤심’이 실렸다면 혁신의 다음 장은 압수수색과 포승줄로 점철된 섬뜩한 광경을 연상케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윤심’과 크게 관계가 없는 메시지라면? 국회의원들은 그냥 웃을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면 결국 인요한 혁신위의 미래는 둘 중 하나다. 누가 말하는 대로 별 성과없이 말의 성찬으로 끝나거나. 윤심 낙하산 펼칠 자리 닦아 놓는 작업을 충실히 한 걸로 귀결되거나. 어떤 경우든 혁신이라고 하기엔 미진하거나 방향이 틀렸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주장도 맥락이 중요하다. 가령 대통령과 가까운 이들의 희생이 필요한 이유는 뭔가? 희생이 당연한 듯 얘기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다들 말을 아끼는데, 생각해보면 이유가 없다. 맥락을 만드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유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윤핵관’이 희생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당과 용산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만드는 핵심 역할을 자임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괄 퇴진해야 하며 험지 출마가 아닌 불출마나 정계 은퇴가 필요하다.

혁신위가 청년 우대를 말하지만 믿기 어려운 이유도 비슷하다. 이미 바로 직전 총선에 유사 사례가 있다. 당시 미래통합당은 청년을 배려할 것처럼 제도를 설계했으나 자기들끼리 공천 밥그릇 싸움을 벌인 끝에 결국 청년 후보들을 배려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험지로 내몰았다. 이번에는 그렇게 안 되리라는 보장이 없는데 비슷한 얘기 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이다.

청년 유권자층을 포용하고 싶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아젠다를 수용해야 하고, 그것을 제기해 온 인물들에 대한 포용이 필요하다. 이준석 전 대표와의 정치적 줄다리기와는 별개의 문제다. 당내 비주류에는 이준석 전 대표 말고도 다양한 인사들이 있다. 만나서 얘기를 몇 번 듣는 걸로는 부족하다. 그들이 제기하는 의제를 실제로 행동에 반영하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가령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나 쓴소리를 들어 놓고 “얘기가 잘됐다”고 해서는 안 되는 거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전혀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혁신위는 하고 싶은 얘기만 하다 끝날 거라는 거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영남 중진들의 공천 탈락이나 용산-낙하산들의 대두 같은 일들은 혁신위가 활동 종료한 이후에나 벌어질 일이고, 이건 혁신위의 활동 성과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상태로 진행될 거다. 즉, 지금 혁신위의 활동이라는 것은 영화 문법으로 보면 맥거핀 같은 것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갑자기 혁신위의 활동에 뭔가 드라이브가 걸리고 실질적인 힘이 주어지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세간의 의심대로 ‘윤심’의 배후를 입증하는 일이 된다. 그런데, 만일 그렇다면 그건 뭘 가리키는 것일까? 여의도 호사가들이 말하는 대로 단지 용산-낙하산용 정도에 그칠 일이라면 나중에 나와도 되는 ‘윤심’이 굳이 벌써부터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건 당 입장에선 뭔가 우격다짐의 군홧발이 들어와야 할 정도의 일일 것이라는 얘기다.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저 빈 수레가 요란한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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