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누군가를 기분 나쁘게 하는 데에 천부적 재능이 있다. 자길 만나겠다고 부산까지 찾아간 인요한 혁신위원장 면전에 영어로 응대를 한 대목이 그렇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어찌됐든 한국인이다. 영어로 말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인종적 정체성이 고려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상당한 결례다.

그 점을 분명히 지적하면서,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저러는 이유가 뭔지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한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최근 유승민 전 의원을 만난 후 언론 인터뷰에서 “코리안 젠틀맨”이라며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다”고 했다. 유승민 전 의원을 “많은 산전수전을 겪었지만 그래도 비교적 상처를 안 받았다”고 평하면서 “이준석 전 대표는 이 사람, 저 사람 통해서 연락을 해 봤는데 많이 마음이 다쳤다”고 했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4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이준석 전 대표, 이언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있다. 이날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토크콘서트를 지켜보고 자리를 떠났다. 이 전 대표와 별도의 대화는 없었다.(연합뉴스)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4일 오후 부산 경성대학교에서 열린 이준석 전 대표, 이언주 전 의원이 진행하는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있다. 이날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토크콘서트를 지켜보고 자리를 떠났다. 이 전 대표와 별도의 대화는 없었다.(연합뉴스) 

여의도 정치의 번역기로 해석하면 언론은 유승민-이준석 신당을 말하지만 유승민과 이준석은 결이 다르고, 유승민은 실제 만나보면 충분히 포섭 가능한 인사라는 것처럼 들린다. 듣는 사람의 포지션에 따라서는 유승민 전 의원이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해석까지도 가능한 얘기다.

실제 유승민 전 의원은 어떤 주장을 한 것일까? 유승민 전 의원은 YTN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반성과 변화, 당정의 수직적 관계 청산, 김기현 지도부 교체를 인요한 혁신위원장에게 요구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주장의 일관성을 고려해도 그렇고 정치적 맥락을 생각해도 그렇고, 실제 이런 요구를 했다고 보는 게 사리에 맞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혁신위가 대통령의 변화를 주장하거나 김기현 대표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발언해왔다. 그러니까 유승민 전 의원의 요구는 수용되지 않았을 거고, 대화에서 오간 신호도 ‘긍정적’이었을 리 없다. 그렇다면 언론에 비공개 대화 내용을 “이견이 있었다”고 해야지, “긍정적인 신호를 받았다”는 방식으로 설명해선 안 되는 거다.

그럼에도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긍정적 신호”나 “마음의 상처” 같은 얘길 하는 이유는 뭘까? 가능성은 두 가지다. 첫째는 ‘정치적 악의’가 실렸을 경우다. “긍정적 신호”는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거다. “마음의 상처”는 행위의 동기가 공적인 것이 아닌 개인적인 것에 있음을 의미한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이런저런 눈물겨운 노력을 했음에도 이준석-유승민 세력이 불순한 의도를 갖고 신당을 추진해 결과적으로는 또다시 배신을 하고 말았다는 식의 서사를 쌓아 올리는 중인 것 아니냐는 의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 어휘다. 둘째는 ‘정치적 미숙’이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어찌됐건 의사 출신의 정치 초보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퉁치고 넘어가는 게 정치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식의 정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향일 수 있다.

원인이 뭐든 이런 식이면 이준석 전 대표 입장에선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다. 혁신위가 제대로 된 혁신 의제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또 모르겠다. 혁신위 비장의 카드인 양 묘사되는 지도부 및 친윤 의원들에 대한 불출마 혹은 험지 출마에 대한 위원장 개인 차원의 권고는 어떤가? 그 자체의 성격도 불분명한 데다 다른 인사와 엮여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인재영입위원장을 직전까지 사무총장을 지낸 이철규 의원이 맡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이철규 의원은 ‘윤핵관 4인방’ 중 한 명이다.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임명직 당직자들이 그만두는 게 혁신의 시작인 양 말해놓고 정책위의장이던 박대출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을 뻔한 사태 이후 또다시 등장한 회전문 인사의 한 사례이다. 김기현 지도부가 유난히 ‘스타팅 멤버’를 교체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선수 교체 권한이 대표가 아닌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 아닌가? 인재영입위원장은 총선 출마 인재를 영입하는 임무를 맡는다. 혁신위가 비우게 한 지역구를 윤핵관이 데려온 인재로 채우는 구조라면, 애초에 지역구를 비우는 의도 역시 의심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애초에 낙하산 꽂을 자리 만드는 걸 혁신으로 포장하는 것 아닌가?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긴 어려울 테고, 이런 정도의 혁신으로 이준석 전 대표의 이탈을 막을 수 있을까? 이준석 전 대표의 신당론을 놓고 이런 저런 해석이 많지만 이미 자기 입으로 다 설명했다. 국민의힘이 변하지 않으면 당선이 어려워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데 언제까지고 그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 시한을 12월 말로 정했노라는 거다. ‘변화’는 최소한 지도부 교체에 해당하는 것이어야 할 텐데, 지금 그걸 기대하긴 어렵다. 그러니 신당 창당 준비 프로세스를 병행할 수밖에 없지만, 여전히 ’12월 말’이라는 시한이 되기 직전까지 국민의힘 변화 여부에 따라 언제든지 이 프로세스는 중단될 수 있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가장 무섭다고 했다. 그런데 동시에 칼은 언제든지 칼집에서 나올 수 있을 때만 칼일 수 있다. 현재 시점에서 이준석 신당론의 동력은 여기서 나온다. 실제 신당 창당은 쉽지 않은 길이다. 양당 구조가 공고할수록 더욱 그렇다. 그러나 혹여라도 연말 이후 정국이 마치 여러 신당들의 경합 국면인 것처럼 되고 이준석 신당도 이런 선택지 중 하나처럼 돼버린다면? 더 지켜볼 일이지만, 그때는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촉매’란 이런 때야말로 비유로 들기 적합한 소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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