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응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모습은 어딘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신속하게 대국민 담화를 통해 남 탓이 없는 자책을 하고 사과한 게 대표적이다. 유임이 확정적이던 박진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관계자들의 문책성 인사 조치도 예고됐다. 웬만하면 국면전환을 위한 인사는 하지 않는다던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선거를 앞두고 달라진 태도를 보여주려는 것일까? 엑스포 유치 실패가 가져올 부산 지역 여론 악화와 관련된 바를 생각해보면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부산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스윙보터가 판세를 좌우할 수 있는 지역이다. 그런데 정부가 전력을 다한 엑스포 유치가 실패로 돌아갔다면 경제 활성화를 위한 나머지 대형 공약들도 ‘공수표’일 수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된다. 이런 식의 나비효과는 여당 입장에선 곤혹스러운 선거 구도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 입장에선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대국민 담화의 상당 부분이 부산과 균형 발전에 대한 메시지로 채워진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대응이 선거를 의식해 달라진 판단이나 태도에 따른 것이라고만 보기에는 석연찮은 대목이 있다. 가령 수석비서관 5명을 일괄 교체한 대목을 보면 그렇다. 사람을 다수 바꿨다지만 인사 방향은 그대로다. 그동안 국정 운영의 키를 쥐고 있던 인사들이 더 중요한 자리를 맡았거나, 전임자와 유사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예상되는 인사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가령 국정기획수석에서 승진한 이관섭 정책실장은 사실상 권한이 더 강력해진 상태로 원래 하던 일을 하는 그림일 것이다. 대변인으로서 지나치게 정파적 대립구도에 기대거나 대통령실 일방의 시각에만 기댄 메시지만으로 일관해 온 이도운 대변인이 홍보수석으로 승진한 것도 마찬가지다. 새롭게 등장한 뉴라이트 전국연합 출신 한오섭 정무수석은 야당이 다수당인 국회와의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전통적 역할보다는 선거를 앞둔 ‘우리 편 조직 챙기기’에 최적화된 인사로 판단된다.

이러다 보니 중앙일보와 같은 신문도 의구심을 표한다. 중앙일보는 1일자 사설에서 “고심 끝의 재편이겠지만, 민심의 눈높이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자기 편의 약점을 지독할 만큼 혹독하게 검증하는 ‘레드팀(Red Team)’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니 대통령 입맛에 맞는 보고만 올라가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과 판단이 양산돼 온 것 아닌가”라면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와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 등의 문제를 거론했다.

이런 점을 감안해서 본다면 대통령의 이례적 대응은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를 진심으로 예측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당혹감, 배신감, 실망, 분노 등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대통령은 2030 엑스포 개최지 투표 결과를 받아들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동아일보는 “격앙된 것으로 안다”는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에서도 결과가 애초의 예측에서 빗나갔다는 취지의 설명을 수차례 했다.

예측은 왜 빗나간 것일까? 조선일보는 11월 30일 보도에서 애초 정부도 사우디의 유치 가능성이 높다고 봤지만 대통령이 직접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보도했다. “희망적 사고가 냉정한 현실 인식을 대체했다”는 것이다. “유치 교섭 일선에서 ‘아직 한국이 확보한 표가 훨씬 부족하다’는 보수적인 보고를 올렸는데, 정부 고위층에선 ‘왜 사기를 꺾는 보고를 올리느냐’는 질책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도 보도에 포함됐다. 결국 대통령의 마음에 들만한 얘기만 보고가 되다 보니 실제 현실이 파악이 되지 않는 ‘벌거벗은 임금님’ 상태로 이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짚을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애초에 ‘벌거벗은 임금님’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지도자의 곁에 충신은 떠나고 간신들만 남았다면 그 원인은 결국 지도자의 리더십에 있는 것이다. 평소에 직언과 고언을 소중히 하고 그러한 맡은 바를 하는 인물들을 제대로 대접했다면 현실을 제대로 전하는 게 무엇보다도 우선인 기풍이 정착됐을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거슬리는 말과 행동을 하는 인사를 ‘내부총질’하는 자로 규정하고 조금이라도 코드가 일치하지 않으면 찍어내기 바빴다. 국정을 그런 식으로 일관하는데 ‘레드팀’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레드팀’이 있을 수 없으니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는 것은 정해진 결말인 것이다.

따라서 ‘벌거벗은 임금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자들을 찾아내 혼내는 것을 넘어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리더십이 바뀌지 않으면 인사조치를 백번 천번을 해도 같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사조치를 스스로에게 하시라. 견책도 좋고 감봉도 좋다. 이번에 여기서 교훈을 찾지 못하면 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와 같은 사건은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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