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이준석 전 대표를 “준석이”라 부르며 “버르장머리가 없다”, “도덕이 없다”, “부모 잘못이 큰 것 같다”고 했다는데, 혁신은 이제 정치 코미디의 새로운 장르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준석 전 대표를 공격하는 데에 통일된 목소리를 냈던 국민의힘 내에서도 역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니 결국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사과를 했다. 이제 언론은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나라님” 등 발언과 엮어 이러한 연이은 실언을 혁신위 동력 상실의 요인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지난주 외부 출신 혁신위원 3인의 사의 표명설로 혼란스러웠던 점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혁신위가 주도권을 상실한 상황을 뒤집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거다.
이쯤에서 ‘혁신’이 자기 좋을 대로 소비되는 상황을 짚지 않으면 상황을 전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혁신위는 이번 주 지도부 중진 친윤인사 등에 대한 험지 출마 등을 촉구하는 권고안을 최고위에 공식적으로 제출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조기 해산을 검토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둘러싼 내부의 논란 때문에 불거진 게 혁신위원 3인의 사의 표명설이었다.
이들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인천 계양을 출마 시사를 일종의 계기로 봤다고 한다. 희생 권고에 아무도 응답하지 않던 상황에 모처럼 반응이 나온 셈이니 이를 기회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다. 이런 움직임을 정치권의 혁신위원들이 만류하고 급기야 김경진 전 의원이 “모르실 수 있는데, 혁신위는 김기현 지도부 체제 유지를 위한 시간끌기용”이라고 하면서(김경진 전 의원은 연착륙을 위한 시간을 줘야 한다는 발언의 취지가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파열음이 커진 것이다.
그러면 애초에 원희룡 장관은 왜 ‘명룡대전’을 감수한 험지 출마를 하겠다는 것일까? 그것은 혁신을 위한 희생일까? 원희룡 장관은 오래 전에 지역구를 떠나 제주도지사에 도전한 인물이다. 이제와서 마땅한 지역구를 찾기 어려운 마당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붙겠다는 주장은 차기를 노리는 대권주자로서는 좋은 명분이 된다.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희생을 핵심으로 하는 혁신의 동력을 살리기 위해 ‘스타 장관’들과의 만남을 원했으나 원희룡 장관과의 자리만 성사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희생이라기보다는 ‘빌드업’인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한동훈 장관이 인요한 혁신위원장의 만남 요청에 응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한동훈 장관의 총선 쓰임새에 대해서는 아직 이런저런 얘기만 오가는 수준이다. 본인과 ‘윤심’의 향방이 매우 중요하기에 출마 예정 국무위원 사퇴 시한인 1월 초, 즉 막판까지 간을 보고 결정할 거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럼에도 강서구청장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원래 뒤에 써야 할 카드를 이것 저것 앞당겨 쓰는 국면에서 한동훈 장관의 정치 행보 역시 앞당겨진 측면이 있는 셈이다. 여기에는 물론 이준석 신당론의 여파도 고려됐을 것이다.
만일 ‘윤심’이 인요한 혁신위를 통해 희생을 밀어 붙이는 것에 있다고 하면 한동훈 장관의 ‘앞당겨진 정치 행보’에 인요한 혁신위원장을 만나는 것 역시 포함됐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윤심’과 혁신은 별 관계가 없는 것에 가까워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한동훈 장관 카드를 앞당겨 쓴 역효과가 커지는 중이다. 동아일보가 지난 21일 <1주일 새 대구 대전 울산… ‘정치 행보’는 장관직 내려놓고 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한동훈 장관의 정치 행보를 비판적으로 다룬데 이어, 중앙일보도 28일 <총선 출마할 장관들, 조속히 거취를 결정하라> 제하 사설에서 “사표를 내고 물러나기 전까지는 장관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 못 하겠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총선에 출마할 장관들의 거취를 조속히 결정해 주는 게 바람직하다”며 비슷한 지적을 내놓은 것이다. 한동훈 장관으로선 속도조절을 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일단 링 위에 올라가겠다는 선언이 되는 ‘혁신’에 동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비윤계 일각에선 부산 해운대 갑이 지역구인 하태경 의원의 서울 출마 주장을 희생적 결단으로 포장해왔다. 하태경 의원은 27일 종로구 출마 의사를 밝혔는데, 여기는 국민의힘 소속인 최재형 의원의 지역구다. 최재형 의원은 불출마 의사를 밝히거나 한 일이 없어 당내에서는 반쪽짜리 결단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는 중이다. 가려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현역인 지역구에 가야하지 않겠느냐는 거다.
하태경 의원은 한동훈 장관 등도 종로구 출마설이 있었다며 왜 자기가 갈 때만 험지가 아니게 되느냐고 항변하지만, 다른 인사들의 종로 출마설은 험지출마론에 속한다기보다는 상징적 데뷔론에 가까웠다. 이러다 보니 하태경 의원의 경우는 종로를 선택한 의미보다는 해운대 갑에서 밀려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오히려 강조되는 상황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해운대 갑에는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인 검사 출신 인사 등의 출마설이 거론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혁신’이나 ‘희생’은 포장지에 불과하고 정치인들은 각자의 사정대로 움직일 뿐이며 정권은 그것을 그저 방관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연이은 실언 릴레이만 남는 것이다.
최근 여의도 일각에선 김기현 지도부를 유지한 상태로 선대위 체제 등을 통해 한동훈 장관 등 주요 인사를 내세우는 등 ‘얼굴’만 바꿔 총선에 대응하는 방식이 언급되고 있다. 그렇다면, 전직 당대표를 “준석이”라 부르며 버르장머리가 없는 것은 부모 탓이라고 발언한 인요한 혁신위원장은 이런 방식으로 총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게 될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보수적 유권자들은 뭐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심경으로 인요한식 혁신에 지지를 보내고 있고, 이준석 전 대표를 어떤 방식으로든 비난하는 것은 그들의 심기를 그다지 거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위는 김기현 지도부 체제 유지를 위한 시간끌기용”이라는 김경진 전 의원의 발언은 이런 방식으로 실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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