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예상대로 여당 참패로 끝났다. 그럴만한 선거였는데, 예상 외의 것도 있다. 17% 포인트 넘게 차이가 날줄은 몰랐다. 패배를 예감한 여당이 미리 준비한 여러 변명거리가 다 소용이 없게 되었다. ‘제2의 드루킹’의 음모랄지 부정선거 같은 얘기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격차이기 때문이다. 이제 혁신을 한다 뭘 한다 분주한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선거 패배 이후 대통령실의 첫 메시지는 ‘차분한 변화’라는 단어로 요약되었다. 뭘 바꾸기는 해야겠는데 폭이 크지는 말아야 하겠다는 거다. 당내 동요가 심상치 않자 이러한 대통령실의 반응은 대통령도 상황을 엄중히 보고 있다는 걸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애초에 ‘차분한’을 강조한 이유가 없어진 건 아니다.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가 용산책임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당 주도권을 놓는 일만은 용인할 수 없다는 게 용산의 의중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가 16일 국회 당사무실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윤재옥 원내대표가 16일 국회 당사무실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임명직들이 일괄사퇴한 게 첫 번째 수습책으로 나온 걸 보면 이 점을 알 수 있다. 임명직을 제외한 지도부는 다시 말하면 선출직이다. 선출직은 전당대회에서 선출되었는데, 지난 전당대회는 모두 알다시피 ‘윤심 전당대회’였다. 대통령이 당의 주도권을 틀어쥐기 위해 나경원, 안철수 등의 인사를 내치다시피 한 결과물이었다는 거다. 그렇게 선출된 사람들이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윤심 전당대회’ 이전으로 당 상황을 되돌릴 의사는 없다는 거다.

물론 김기현 대표를 물러나게 하면서 주도권도 잃지 않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용산 직할 비대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모두에게 부담이다. 대통령 입장에선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당 주도권을 재차 장악하려 한다는 비판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통칭 비윤계로 분류되는 반발 세력 입장에선 여우를 피하려다 늑대를 만나는 황당한 상황을 겪게 될 수 있다. 휴일에 4시간이 넘는 의원총회를 치르면서도 김기현 대표 퇴진 요구가 다수 의견이 되지 않은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언론은 진단한다.

이제 물러난 사람들을 누가 채우느냐가 관건인데, 언론 보도를 보면 별로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일부 언론은 사무총장 자리에 정책위의장을 맡다가 물러난 박대출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명직 사퇴가 혁신의 출발점이라더니 회전문 밀고 한 바퀴 돌아 들어오겠다는 거다. 실제 뉴시스의 카메라에 잡힌 조수진 최고위원의 휴대폰 화면을 보면, 박대출 의원이 사무총장으로 돼있는 인선안에 대해 당내 관계자가 “황당하네 김기현 대표 쫓겨나겠네ㅜㅜ”(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해 여론이 좋지 않을 거라는 의미)라고 반응하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그래서인지 최종 발표안의 사무총장은 이만희 의원으로 바뀌었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휴대폰 문자를 보고 있다. 문자에는 주요당직자 임명안과 김기현 대표 관련 내용이 있다.(연합뉴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휴대폰 문자를 보고 있다. 문자에는 주요당직자 임명안과 김기현 대표 관련 내용이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이만희 의원이라고 논란이 되지 않는 건 아니다. 이만희 의원은 친박계 출신이라 최경환, 우병우 등 인사가 걸려있는 영남에서의 혁신 공천을 주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지난 이태원 참사 국면에선 좌파들이 참사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등의 음모론을 유포하는 등의 황당한 행보로 일관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이 ‘김기현 2기’라고 부르는 이번 인사는 김예지 의원의 지도부 기용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박대출 의원도 그렇고 이만희 의원도 그렇고 영남에 기반을 둔 편향적 인사들에 사무총장을 맡겨야만 하는 당의 상태를 바꿀 생각이 없다는 점에서 혁신이라기보다는 제자리걸음이라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이런 눈가리고 아웅이 아니면 수도권 민심과 표심 걱정 정도가 최대치라는 점은 갈 길이 한참 멀다는 점을 보여준다. 강서구청장 선거 패배의 최대 요인은 윤석열 정권의 국정 운영 행태에 있다. 가령 선거의 ABC인 후보 전술부터 무너진 것은 대통령이 사면권을 남용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아무리 사면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해도 그것이 ‘남용’이 되지 않으려면 뭔가 통합에 기여한다는 등의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김태우 전 후보에 대한 사면은 강서구청장 선거 출마와 떼놓을 수 없는 일이었고, 원인 제공 재보궐선거에 출마 명분을 만들어 줬다는 점에서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이것은 국민 통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상대 정파 공략을 위한 일이었고, 그런 점에서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정파 두목에 어울리는 행위였다. 여당이 제대로 거듭나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싶다면 이 점을 비판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할 일이다. 그런 얘긴 한 마디도 못하면서 선거 걱정 정도에도 대통령을 흔들지 말라며 완장질이나 한다면 미래는 없는 것이다.

지난주 조선일보는 사흘 연속 사설에 ‘대통령이 변해야 살 길이 열린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넣었다. 대통령은 국정을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전 정권을 때리는 걸로 정치적 반사이익을 취하고 이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념드라이브를 거는 것에 몰두해왔다. 강서구청장 선거 결과는 이걸로는 정치적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게 드러났다. 그러니 이제 반사이익을 노리는 것 말고 할 일을 제대로 하라는 게 합리적인 결론일 것이다.

그러나 그간의 사례에서 익히 보듯 대통령은 그러한 준비는 되어 있지 않은 인물이다. 무언가와 싸우면서 자기 존재를 증명해왔다. 그 점이 걱정이다. 의대 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리는 걸로 민생 드라이브를 시작할 태세인데, “이제 검사와 의사가 싸우는 건가”라는 인터넷 댓글 반응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의사들이 반대하더라도 쏠림 현상 해결의 대안을 내놓으면서 증원을 추진해야 한다. 현장의 상황은 심각하다.

중요한 건 문제 해결에 방점을 찍어야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는 거다. 대통령은 ‘노조 때리기’로 정치적 이득을 본 경험을 갖고 있다. 실제 문제 해결에는 무관심하고 단지 이것저것 기득권을 겨냥한 전선을 넓혀 전방위적 싸움을 걸면서 그걸 ‘민생’으로 포장할 전략을 세우는 것 아닌지 의심된다. 그러는 동안 여당은 뒤에서 변하는 척만 하면서 제자리걸음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오늘까지는 그런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태도다. 내일은 다르기를 바라는데, 그런 바람이 이루어진 일은 한 번도 없어 씁쓸하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