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박민 KBS 사장이 긴급이사회에서 ‘임명동의제’로 인사권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노조와 보충협약을 통해 단협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임명동의제를 이행할 경우 방송법 위반 소지가 있고, 거치지 않을 경우 ‘노사간 신의성실 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률 자문을 거치지 않은 주장으로 비판에 직면했다. 야권 추천이사들은 반드시 법률 검토를 받아야 한다는 당부를, "이러려고 긴급안건으로 상정했나. 이사들이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냐”라는 여권 추천이사도 있었다. 이날 긴급이사회는 박민 사장의 요청으로 소집됐다. 

박민 KBS 사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박민 KBS 사장이 14일 서울 여의도 KBS아트홀에서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24일 열린 KBS 이사회에서 박 사장은 “국장 임명동의 절차를 따를 경우 방송법 위반 소지가 있고, 이행하지 않을 경우 노사간 신의성실 원칙 위반일 수 있다는 사내 법무실 등 관련 부서의 지적이 있었다”며 “관련 법규와 KBS 정관, 판례 등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한 법무실과 관련 부서는 임명동의제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5개 국장은 방송과 경영의 핵심인데, 임명이 지연되고 있어 방송제작 과정에 많은 차질을 빚고 있다”고 보고했다. 

박 사장은 ▲임명동의제가 사장의 인사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한다는 점 ▲김의철 전 사장의 해임 집행정지 가처분 기각 사유로 ‘임명동의제 확대에 대한 이사회 보고가 없었다’고 지적된 점 ▲(사장 인사권에 대한)본질적인 침해가 있을 경우 단협 대상이 아니라는 판례가 있다는 점을 내세우며 “이사회에 보고하고, 노조 측에 이 부분에 대한 보충협약을 요청해 서로 원만한 합의 후 인사를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률 자문을 거치지 않은 주장으로 드러났다. ‘어디서 법률 검토를 받은 것인가’라는 이상요 이사의 지적에 박 사장은 “어디서 검토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부사장이 대신해서 답하겠다”고 말했다. 

류삼우 부사장은 “노사협력실이나 인적자원실 등 소관부서에서 별로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요 이사가 “사장은 법적 검토를 받았다고 했잖나”라고 따져 묻자 류 부사장은 “사장이 헛갈리신 것 같다”고 말했다. KBS는 변호사로 구성된 법무실을 갖추고 있다.  

이상요 이사는 “너무 어설프다”고 질타했다. 이 이사는 “사장이 보고하면서 방송법 위반 소지가 있고, 단협 위반 소지가 있다고 했는데, 두 개가 충돌할 경우 어떻게 받아들일지 검토해야 한다”며 “법적 자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2곳 이상에서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박 사장은 지난해 한국노동교육원이 이사회 의결없이 ‘임금피크제’를 노사합의로 도입한 것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과 김의철 전 해임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판결을 거론하면서 “법률 자문을 구한 게 아니고, 법무실 내 변호사와 인적관리실에서 유사한 사건에 대한 판례를 취합한 것이다. 판결문에 내용이 다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KBS 이사회 (사진=KBS)
KBS 이사회 (사진=KBS)

정재권 이사는 “임명동의제를 지키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보고할 것이라 짐작했는데, 노조와 보충협약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임명동의제의 위법성 이야기를 하면서 김 전 사장의 가처분 판단을 언급하는데, 이는 최종적 판단이 아닐 뿐 아니라 임명동의제의 위법성을 지적한 것이 아닌, 이사회에 보고를 거치지 않은 절차적 과정에 대한 판단이다. 추가협상 과정에서 회사 쪽이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0일 서울행정법원은 김 전 사장의 해임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을 기각하면서 “'임명동의제'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이사회의 심의·의결 및 보고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반면 여권 추천 이사들은 교섭대표노조와 ‘보충협약’을 진행하겠다는 박 사장의 입장이 유보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석래 이사는 “보충협약을 하겠다는 것은 ‘임명동의제’를 수긍하겠다는 것 밖에 안 된다”면서 “이러려고 긴급안건으로 상정했나. 이사들이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나”고 따져 물었다. 

이석래 이사는 “단협보다 방송법이 우선인데, 그러면 최소한 변호사 자문을 통해 ‘임명동의제’에 문제가 있다는 데이터를 갖고 와서 이사들을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그동안 경영자의 인사권을 존중받지 못한 것인데, 왜 과감하게 못하냐. 또 중간평가제도 단협에 들어가 있는데 이것도 인사권 침해”라고 말했다.

황근 이사도 “임명동의제가 나오기 전 편성규약 때부터 위법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KBS는 이것을 확대해온 것”이라며 "그렇다면 보충협약을 통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단협이더라도 여러 법률적인 문제가 있다면 원천적으로 다시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여권 추천 이사 지적에 정재권 이사는 ”단협을 존중하지 말라고 경영진을 종용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면서 ”위법성 논란이 있다면 법원에서 따지면 되고, 국장 공석 사태가 시급하다면 단협에 따라 임명동의를 진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KBS본부가 24일 KBS본관 앞에서 '임명동의 준수 촉구'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사진=KBS본부)
언론노조 KBS본부가 24일 KBS본관 앞에서 '임명동의 준수 촉구' 피케팅을 진행하고 있다.(사진=KBS본부)

같은 날 언론노조 KBS본부는 성명을 내어 “법무실 검토도 제대로 받지 않아 놓고 받았다고 대놓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이사들의 지적에 낙하산 박 사장이 당황하자, 류삼우 부사장이 나서 노사협력과 인적자원실에서 별도로 검토했다고 답변했다. 회사 법무실 검토를 거치지 않고 노사협력과 인적자원실에서 검토하면 그게 회사 내부 법률 검토가 되는 것인가”라고 따져물었다.

KBS본부는 “단협은 노사가 상호 합의 하에 맺은 것으로 별도의 이사회 보고가 필요없는 사안”이라며 “실제로 그동안 단협 체결 전 단협 내용과 관련해 이사회 보고가 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여권 이사들은 사측 편을 들며 임명동의제 폐지에 힘을 실었다”고 비판헀다.

KBS본부는 ‘단협이 이사회 보고 사안이 아니다’라는 외부 법률 자문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KBS본부는 “낙하산 박 사장과 입만 열면 단협 위반을 당당히 얘기하는 류삼우 부사장은 더이상 단협에 명시된 임명동의제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 당신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하나하나가 단협 위반이자 부당 노동행위”라면서 임명동의를 무력화한다면 추가 법적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KBS 사측은 이날 박민 사장의 이사회 보고 후 교섭대표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에 단협보충협약을 위한 교섭을 요청했다고 언론에 공지했다.

이와 관련해 KBS본부 관계자는 “사측이 어떤 내용에 대해 보충협약을 할지 알리지도 않은 채 노조의 입장을 28일까지 달라고 했다”며 “일방적 주장을 마치 법률 자문을 검토받은 것처럼 보도자료를 뿌린 것에 대해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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