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20대 대선을 치른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20대 대선 과정에서 떠오른 이슈 중 하나는 젠더 갈등이었다. 지상파 3사의 대선 출구조사 결과, 특히 20대 남녀의 표심이 확연히 갈렸다. 정치권과 언론은 앞 세대에선 찾기 힘든, 이념과 지역이 아닌 ‘성별’로 갈린 20대 유권자의 특징에 주목했다. 대선 1년이 지난 지금, 20대 남녀의 생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난 7일 KBS 1TV <시사기획 창>‘이대남 이대녀’ 편(☞방송 다시보기)을 방송했다. 20대 남자 셋, 20대 여자 셋이 함께한 2박 3일 여행에서 대면 토론과 익명 단톡방 토론 등을 통해 ‘지금’ 20대의 젠더 갈등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방송 기획‧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8일 ‘이대남 이대녀’ 편 연출한 강나루 기자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만났다. 다음은 강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KBS 1TV 〈시사기획 창〉 '이대남 이대녀' 편
KBS 1TV 〈시사기획 창〉 '이대남 이대녀' 편

먼저 ‘이대남 이대녀’ 편 방송 끝낸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방송 준비 중엔 엄청 피곤해서 잠도 잘 못 자요. 그래서 방송 나가면 푹 잠들어야 정상인데 어제(7일)는 진짜 거의 못 잤어요. 왜냐면 ‘이대남 이대녀’, 젠더 갈등은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예민한 주제죠. 그래서 방송 끝나면 어느 정도 안 좋은 댓글 비롯해서 반응이 좀 세게 올 수 있겠다 정도 생각은 했는데,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반응이 나오더라고요.”

반응이 어느 정도인가요?

“일단 지금(8일) 댓글이 약 1만 2천 개가 달렸어요. 제가 기자 생활하면서 그렇게 많은 댓글이 달린 아이템은 처음입니다. 특히 참석자에 대해 안 좋게 얘기하는 댓글이 많다 보니 심란하고 걱정되기도 해서 못 잤어요.”

이번 ‘이대남 이대녀’ 편은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요?

“제 방송일이 3월 초중순으로 잡혔었고요. 마침 시기적으로 대선 1년이 맞물리니까 기획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했어요. 지난 대선 때 여러 특이한 현상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20대 남녀가 ‘성별’에 따라 지지 후보가 완전히 엇갈리는 경향이 나타났죠. 물론 대선 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났어요. 이른바 ‘이대남 이대녀’ 현상인데, 1년 전 대선 때 그랬던 것처럼 20대들이 여전히 정치나 사회 이슈에서 엇갈린 태도를 보이는지 분석해보고자 시작하게 됐습니다.

근데 딱딱하게 설문조사 등의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라 진짜 일상의 20대들을 만나기 위해 조금 독특한 방식으로 기획해보자고 한 거죠.”

기자님은 젠더 갈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제가 국회 출입했을 당시 정치권에서도 이준석 전 대표를 비롯해 이대남 이대녀 현상이 이슈로 올라오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20대 남녀의 갈등이 심각한가 정도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이 있고, 특히 온라인 공간에서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됐죠.”

KBS 1TV 〈시사기획 창〉 '이대남 이대녀' 편
KBS 1TV 〈시사기획 창〉 '이대남 이대녀' 편

아이템 결정하고 어떤 작업부터 했나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20대 남녀를 모집하는 게 가장 큰 과제였어요. 그래서 이번에 한국리서치라는 여론조사 전문기관과 같이 설문조사도 진행하고 협업해서 참가자들 모집했어요.”

모집한 이유가 있나요? 다르게 접근할 수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 거리에서 20대 섭외해 코멘트 따고 전문가 의견 듣는 게 기존 취재방식이죠.

“맞아요. 기본적으로 전문가들 얘기 듣고, 여의도공원이나 홍대 이런 데 가서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는 게 일반적인 취재 방식인데, 저는 무엇보다도 당사자인 20대 남녀의 속 깊은 얘기를 듣고 싶었어요. 거리에 나가서 ‘이대남 이대녀 현상,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하면 얇게 말해 줄 수는 있지만 깊은 얘기를 털어놓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아예 우리가 참가자를 모집하고 선발해서 취재를 해보자고 한 거죠. 특정 공간에 가서 같이 시간을 오래 보내면서 진짜 진득하게, 깊이 있게 당사자들 얘기를 들어봐야겠다 싶어서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남녀 세 명씩 여섯 명이 캠핑 가서 이야기 나누는 형식이었죠. 참가자 선정 기준이 있었을 텐데?

“자의적으로 기준을 정한 건 아니고요. 여론조사 전문기관에서는 FGI(Focus Group Interview)라는 집단심층면접 조사 등을 많이 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 여론의 분포를 살피기 위해서 특정 몇 명을 선발하는 매뉴얼, 기준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리서치라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자문을 구했고 그 통로로 모집했어요.

선정 기준을 같이 논의했는데 일단 학력 요소를 봤어요. 왜냐하면 같은 성이라고 해도 학력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이나 지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요. 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어떤 직에 종사하느냐 직업 부분, 그리고 대선 1년 기획이기 때문에 정치 성향도 물어봤어요. 그리고 젠더 갈등 관련 조사를 하면 남녀가 크게 부딪히는 지점 중 하나가 저희 프로그램에도 나오는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거든요. 페미니즘에 대한 관점 혹은 거부감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물어봤어요.

‘우리가 이러이러한 기획을 진행하고 소정의 사례비도 지급하니 관심 있는 사람은 지원해달라’라고 하고 일단 30명에서 끊었어요. 6명을 뽑으니까 30명이 5배수거든요. 30명 중에서 18명을 추려서 면접을 진행했어요. 그리고 종합해서 최대한 쏠림이 일어나지 않게 6명을 선발했는데 아무래도 저희가 생각하는 그 완벽한 분포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KBS 1TV 〈시사기획 창〉 '이대남 이대녀' 편 제작현장 (사진제공=KBS)
KBS 1TV 〈시사기획 창〉 '이대남 이대녀' 편 제작현장 (사진제공=KBS)

여섯 분이 처음 만났을 때 어땠나요?

“처음 만났을 때는 되게 어색해했죠. 저는 그 어색한 시간이 길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완전 다 처음 만나는 데다 카메라도 많아서 긴장되잖아요. 근데 처음 잠깐 어색해하고 서로 농담하고 친하게 지내더라고요. 그래서 놀랐어요.”

대면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익명 단톡방 분위기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맞아요. 프로그램 앞부분에서 중요하게 나온 포인트였죠. 저희가 처음에 프로그램 콘셉트 잡고 회의를 하면서, 온라인에서의 젠더 갈등과 오프라인에서의 젠더 갈등이 다른 부분이 있으니 익명 채팅방을 만들어서 거기서 얘기를 해보자는 안이 나왔어요. 숙소에 가서 약간 가볍게 익명 채팅방을 시작했는데, 그렇게 달라진 분위기는 사실 저희 제작진도 깜짝 놀랐던 부분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참가자들이 굉장히 빨리 친해졌다고 했잖아요. 때문에 익명 채팅방에서 전혀 싸우지 않고 아름답게 얘기하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저희 예상과 달리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돼서 그때 여성 FD가 깜짝 놀란 게 기억이 나요.”

익명이라도 그 여섯 명 중 한 사람이라는 건 인지되는 거잖아요. 그런데도 어떻게 그런 상황이 됐을까요?

“맞아요. 기자님 말대로 완전히 모르는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저희가 놀란 이유에 그런 부분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이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몰라도 어느 정도 예측은 할 수 있는 조건이었죠. 그렇지만 젠더 갈등 이슈가 확실히 당사자들에게 정말 민감한 주제, 폭발적으로 격하게 반응하는 이슈이기 때문에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 아니어도 잠깐이지만 그 채팅방 안에서 몰입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젠더 갈등이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데 왜 그럴까요?

“온라인에서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다만 온라인에서 더 격하게, 더 노골적으로 표출이 된다고 생각해요. 오프라인에서도 수면 아래 분명히 존재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잘 언급하지 않고 그러니 눈에 잘 안 보이는 거겠죠. 그렇지만 온라인에서 더 많이 드러나는 건 명확한 사실 같고요.”

KBS 1TV 〈시사기획 창〉 '이대남 이대녀' 편
KBS 1TV 〈시사기획 창〉 '이대남 이대녀' 편

젠더 갈등이 드러난 지는 얼마 안 되지 않았나요?

“방송 준비하면서 문헌들도 읽고 교수님들도 만나보고 했는데, 가시적으로 표출된 건 근래이긴 하지만 그 시점을 예전에 어떤 온라인 문화에서부터 찾는 전문가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인터넷상, 온라인에서 혐오 표현 또는 놀이문화 이런 식으로 가다가 몇몇 사회적인 사건을 거치면서 변화가 생겨요. 강남역 살인사건이라든지 혜화역 앞 페미니스트들 시위, 이런 일련의 사건이 발생한 후 온라인 게시글에 머물렀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어요. 그 수면 위로 올라온 것들을 정치인들이 포착해냈고 언론도 화제가 되니까 기사화해서 더 퍼뜨린 측면이 있는 거고요. 수면 아래 갈등은 이전부터 차곡차곡 쌓여 있었던 것 같아요.”

참가자 전원이 모여서 젠더 갈등 이야기를 할 때 분위기는 어땠나요?

“첫째 날 익명 톡방 진행하고 그에 대한 후일담 나누고, 다음 날 아침에 전체 토론을 했어요. 그런데 익명 톡방만큼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점점 올라가더라고요. 특히 방송에 나온 것처럼 여성가족부, 군대 문제 그리고 남성과 여성 중 지금 누가 차별받고 있는가 이런 이슈가 나오면서 감정이 올라가는 게 보였어요. 근데 아무래도 대면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절제된 선에서 진행이 됐어요. 익명과 확실히 다른 게 있더라고요.”

남녀 차별을 느끼는 게 출신고가 남녀공학일 경우 강할 거라 예상했는데 반대라서 의외였어요.

“맞아요. 교수님 본인도 조사 결과가 흥미로웠다고 하셨어요. 저도 기자님처럼, 학교 내에서 학업 차이가 난다든지 그렇게 되면 더 차별인식이 높을 거라 생각했는데, 교수님이 그렇지 않다고 해서 되게 의외였어요. 이 결과가 저희 프로그램의 메시지 가운데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서 그 부분을 넣은 거예요. 접촉하고 교류하며 서로 의견이 같지 않더라도 차이에 대해 의견 나누고 공감하고 바로잡는 과정을 거치면 갈등의 골이 깊어지진 않는다는 거예요. 지금의 이 젠더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는 거죠.”

KBS 1TV 〈시사기획 창〉 '이대남 이대녀' 편
KBS 1TV 〈시사기획 창〉 '이대남 이대녀' 편

소통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남녀공학이면 직접 보고 듣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학교를 남녀공학으로 가야 된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기자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거고요. 특히나 교수님이 해주셨던 얘기 중에, 남성과 여성이 생애 전체적인 주기로 따지면 분명히 차별받는 구간이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남성도 20대 초반에 남성이라는 이유로 군대를 가는 거잖아요. 분명히 남성이 차별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봐요.

생애주기로 보면 여성의 차별은 특히 결혼 이후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 여전히 경력 단절이라든지 이런 부분들이 남성들보다 더 많이 나타나거든요. 서로 생애 주기에서 전체적으로 보고 ‘여성들은 확실히 그런 어려움이 있겠구나’ 또는 ‘남성들은 그래, 젊었을 때 좀 억울한 부분이 있겠네, 공부도 못하고’ 이렇게 얘기를 나누고 방안을 찾아야 하는데, 계속 자기만의 생각에 갇혀서 자신만 차별받고 있고 피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전혀 해결되지 않죠.”

취재하며 느낀 점 있을까요?

“‘이대남 이대녀’라는 굉장히 자극적인 이슈에 올라타서 갈등을 중재하기보다 오히려 부추기는 데 나도 일조하는 것 아닌가란 의문이 계속 있었어요. 그리고 마지막 캠프파이어 때 서로 좋은 얘기하고 화기애애하게 마무리되니까 ‘왜 갑자기 이렇게 서로 화해하고 청춘드라마처럼 끝나냐’라고 지적하는 분도 있었어요. 근데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마지막에 가장 많이 담은 거거든요.

남녀 갈등이 존재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그걸 사람들이 인식해야 할 필요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분명히 존재하는 이 갈등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외면하지 않고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이 갈등을 완화해 나갈 수 있을지 얘기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프로그램의 이런 기획 의도를 알아주시는 시청자분들이 좋은 댓글을 달아주기도 했죠.”

KBS 1TV 〈시사기획 창〉 '이대남 이대녀' 편 제작현장 (사진제공=KBS)
KBS 1TV 〈시사기획 창〉 '이대남 이대녀' 편 제작현장 (사진제공=KBS)

제작하며 어려운 점은 뭐였나요?

“<시사기획 창>은 기자가 어떤 주제의식을 가지고 메시지를 선명하게 내주는 프로그램인데, 이번 기획은 6명 참석자의 말에 의지해서 나가다 보니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어요. 공영방송으로서 선명한 메시지, 예를 들어서 젠더 갈등을 해소하려면 이런 방향으로 가야 된다든지 하는 메시지를 직선적으로 못 던진 게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방송되지 않은 부분 중 전하실 말씀 있을까요?

“2박 3일 동안 진행했는데 방송 분량은 48분이니 방송에 안 나온 부분이 많죠. 캠프에서 6명이 친하게 잘 지냈어요. 초코파이랑 말티즈나 정고나 프로그램에서 날 선 말들이 나왔는데요. 토론할 때 분위기가 격해졌지만 사실 그런 이슈를 제외하고는 밥 먹을 때 산책할 때 다 분위기가 좋았었어요. 그런 부분들이 저는 보기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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