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정부가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장관 김현숙) 폐지를 공식화하자 정치적 위기 때마다 여성인권을 볼모로 잡는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선 때부터 위기의 순간에 여가부 폐지 방침을 들고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여가부 폐지를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처리될 가능성은 낮다.
5일 한창섭 행정안전부 차관은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지도부에 정부가 준비 중인 정부조직개편안을 보고했다. 민주당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여가부 기능을 보건복지부 산하 본부로 두는 안에 대한 보고가 있다"고 전했다.
오 원내대변인은 여가부 장관을 차관급 본부장으로 격하할 경우 국무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성범죄 관련 정책 논의 시 타부처와의 교섭력 등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정부에 여가부 폐지 방안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분명하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오 원내대변인은 "우리 당이 여가부 명칭을 고집하는 건 아니다"면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등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여전히 사회적 이슈로 반복되고 있고, 유엔에서도 성평등 관련 독립부처의 필요성을 권고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국가보훈처 격상이나 재외동포청 신설 등의 정부조직개편에는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3일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고위당정협의회를 열고 정부조직개편안을 논의한 후 조만간 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여가부 기능을 복지부와 고용노동부로 이관하는 방안과 재외동포청 신설, 방송통신위원회 개편 등이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주 안으로 행안부 장관이 민주당을 설득하는 절차를 거친 뒤 구체적인 안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5일 정의당 예윤혜 부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여가부에 필요한 것은 폐지가 아니라 성평등부로의 격상"이라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여성 인권, 성평등을 후퇴시키는 대책 없는 여가부 폐지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예 부대변인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 여가부 폐지의 이유라면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산업 재해를 막지 못하는 노동부는 어떤가. 학생들을 입시경쟁에 몰아놓고 사교육비에 등골이 휘는 학부모를 양산하는 교육부는 또 어떤가"라며 "주거난에 신음하는 서민들은 제쳐두고 땅 장사, 집 장사 하는 국토부, LH도 이참에 폐지하는 것이 어떤까"라고 물었다.
이어 예 부대변인은 "결국 필요와 의지의 문제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성평등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폭력 피해 여성과 경력 단절 여성, 다문화 가족 지원에 의지마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당정 협의로 자인한 것"이라며 "전가의 보도처럼 여가부 폐지를 휘두른다고 정부의 정치적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여성단체들은 여권이 정치적 위기 때마다 여성인권을 볼모로 삼는다며 여가부 폐지 시도를 중단하라고 입을 모았다. 4일 전국 286개 여성시민사회단체는 공동성명을 내어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대선시기부터 근거도 내용도 없이 여가부 폐지를 공약하고, 대통령 지지율 24%라는 최저점을 찍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위기마다 여가부 폐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면서 "구조적 성차별과 여성의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특정 집단에서 지지율을 끌어내보려는, 그러나 오히려 정치적 위기를 더욱 자초하는 무지몽매한 자충수에 불과하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여성인권 증진에 대한 국내 성과와 계획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면서도 윤 대통령 취임 후 가장 먼저 내놓은 여성인권 관련 계획이 성평등 전담 부처 폐지라는 사실이 부끄럽지도 않은가"라며 "정부와 국민의힘은 국내외에서 정부의 성평등 정책과 전담부처 강화 필요성을 외치는 수많은 이들이 두렵지 않은가"라고 따져 물었다.
또 여성단체들은 "신당역 스토킹 살해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제도를 더 보완해 이런 범죄가 발붙일 수 없게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발언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면서 "여성들이 신당역 사건에 더 분노하고 아파한 이유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해온 구조적인 여성폭력 사건이었고 국가가 했어야 할 역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여성단체들은 "피해자 보호 역할뿐 아니라 여성폭력이 발생하는 사회구조적 요인을 진단하고 정책을 통해 여성들이 차별과 폭력 없이 일상을 안위할 수 있도록 여가부의 책무와 권한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면서 "그 외에도 여성의 낮은 고용률과 성별임금격차 등 불평등한 현실에서 현안은 계속 발생하는데 할 일이 산적한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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