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사회 모든 분야가 충격을 받았고 그 여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예술 분야에서는 그 충격의 정도가 다른 분야보다 더 심하다. 회화 역시 그 대상 중의 하나다. AI가 그린 그림이 비싼 값에 거래된 사실은 하나의 사례다. AI 화가 오비어스가 그린 작품 ‘에드몽드 드 벨라미(Edmond de Belamy)’가 2019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치열한 경쟁 끝에 한화 약 5억 원에 낙찰된 이후 AI 화가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게 되었다. 유사한 사례는 여러 건 있다. 이런 사례들이 반복되면서 '회화의 종말'이 다시 언급되기도 한다. AI가 예술가를 대체하여 예술 영역에서 인간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 딥드림(Deep Dream), 달리(DALL-E), 미드저니(Midjourney)와 같은 AI는 사람들이 요청하는 그림을 아주 잘 그려준다. 주문만 하면 AI가 바로 만들어준다. 어떤 요구를 하든 AI는 주문자의 요구에 최대한 가깝게 만든다. 데이터가 쌓일수록 정교함과 완성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누가 그렸는지 표시하지 않으면 창조의 주체가 AI인지 사람인지 분별하기 쉽지 않다. 책이나 잡지에 이용되는 일반적인 삽화는 이미 대부분 AI 손에 넘어갔다. 그림을 그리는 일들이 AI로 대체되면서 화가들은 AI가 할 수 없는 영역을 발굴하거나 새로운 일을 찾아 다시 시작하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이미지 생성 AI (PG)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이미지 생성 AI (PG)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그러나 이런 우려와 현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과 그 기술의 구성물이 출현할 때마다 발생한다. 19세기 중후반 사진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때 당시 화가들이 느낀 충격은 지금 AI 등장으로 인한 충격보다 더 컸다. 당시 대부분 화가들의 주 수입원은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급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받는 사례비였다.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화가들은 초상화를 완성하는 데 걸리는 기일, 재료비, 보조인력에 지급해야 하는 임금 등을 계산하고 그에 적합한 금액을 예상한다. 이후 고객과 그림의 사이즈, 전신 또는 반신, 디테일의 정도 등을 협의하고 계약서를 체결한다. 당시 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일종의 프로젝트 성 사업이었다.  

이런 사업이 거의 갑자기 종말을 맞게 된 것이다. 사진기가 등장하고 인물 사진이 일반화되면서 초상화 화가들은 일거리가 없어졌고 풍경화가들 역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실 묘사에 있어서 그림은 사진기를 능가할 수 없었다. 사진기가 등장하자 당시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가 외친 “이로써 오늘부터 회화는 죽었다!”라는 말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가져온 충격을 대변하는 말로 유명해졌다. 야수주의 화가 블라맹크의 멘트 “우리는 사진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증오한다” 역시 당시 화가들의 위기의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진기는 회화의 역사에서 처음 목격된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사진기의 등장은 회화의 종말이 아나라 회화의 부흥, 또는 회화의 재발견을 가져왔다. 사진기 등장 이전 회화의 일차 목적은 인물이나 사물의 충실한 재현에 있었지만 사진기 등장 이후 회화는 묘사를 중요시했던 전통적인 회화 기법에서 벗어나 색채, 질감, 빛 등에 초점을 맞추고 대상을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인상주의는 사진기술이 가져온 충격에서 벗어나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대상을 색채나 색조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하여 묘사했다.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화가의 시각이 더 중요해진 것이다. 인상주의는 이후 고갱과 고흐, 세잔 등의 탈인상주의, 프랑스의 야수파와 독일의 표현주의 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물론 AI는 19세기에 등장한 사진기와는 다른 차원에서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사진기는 이전에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대상의 그럴듯한 묘사를 정확한 재현으로 치환하는 정도에서 끝났지만, AI는 주문자가 어떤 요구를 하든 그대로 그려내거나 만들어 낸다. 또 스스로 창작하기도 한다. AI창작에 대한 정의가 명쾌하게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넓은 의미의 해석을 허용한다면 AI 화가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다시 질문을 던져 보자. 

적어도 회화는, 좀 더 넓게 표현해서 시각예술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AI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고 고전적 예술의 자리에 머물고 말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각예술로 재구성될 수 있을 것인가.  

2023년 10월 30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라이트룸 서울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몰입형 전시 'David Hockney: Bigger & Closer'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시사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2023년 10월 30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라이트룸 서울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몰입형 전시 'David Hockney: Bigger & Closer' 기자간담회에서 작품을 시사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 질문에 대한 답 역시 우리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AI를 포함한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만들어지거나 작동되는 시각예술의 확장성과 가능성은 사실상 무궁무진하다. 이미 아날로그 시절 백남준이 보여준 비디오아트는 전통적 시각예술의 한계를 넘어섰고 디지털 시대에 와서는 이미지, 영상, 체험, 오브제 등 보이고 체험할 수 있는 것과 그것들의 결합이 시각예술의 정의를 확장시키고 있다. AI가 만든 그림의 저작권 여부 등을 둘러싼 문제 등은 합리적으로 해결해야겠지만 AI로 인해 예술 자체가 위축되는 일은 없다. 인간은 늘 예술을 새롭게 재해석하고 재창조해왔기 때문이다. 

마침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해 시각 예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이 라이트룸서울에서 5월 말까지 전시된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예술의 미래에 대한 의미있는 메시지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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