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Justice delayed is justice denied)라는 말이 있다. 법조계와 관련된 오래된 격언이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라는 의미다. 재판의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 사이 피해자의 상처가 더 깊어지고 때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돼 재판 승소가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법원의 판결을 통해 비정상적 상태를 정상적 환경으로 바꿔 다시 평범하게 일상을 영위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작은 소망이 오히려 법원에 의해 좌절당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재판이 하염없이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법원행정처에서 발간한 ‘2022년 사법연감’에 의하면 민사본인사건의 합의재판부 경우 1심 확정의 평균처리기간이 321일로 나타났다. 항소심 확정은 759일, 상고심 확정은 977일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나 재판 개시부터 최종 판결까지는 거의 3년 가까이 걸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속한 결정을 위해 민사소송법은 1심 재판을 5개월 안에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 1심 결과를 얻기까지는 평균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평균처리기간이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다. 지난 5년간 통계를 보면 매년 평균 5%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된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이런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은 적고 일거리는 많다는 데 있다. 발표 자료에 의하면 지방법원의 경우 법관 1인당 처리건수는 555건, 고등법원은 99건, 대법원은 무려 3665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사소송법에서 말하고 있는 5개월 규정 준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재판 건수를 줄일 수 없으니 법관의 수를 늘려야만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사법정책연구원이 작년에 발간한 보고서 '법관 업무부담 및 그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추가로 최소 756명의 법관이 필요하다고 나와있다. 그러나 법관뿐 아니라 국가 운영의 모든 분야에서 인원 증원이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재판이 지연되는 이유는 인원 부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지만 결국 자료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최근 다시 AI 판사가 언급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동안 리걸테크(legal tech)는 주로 번역, 변호사 검색, 상담 신청, 법령 검색, 업무 처리 등 비대면 무료 법률 상담 서비스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고도화된 AI가 등장하면서 판례 분석 및 판결문 작성도 가능해졌다. AI를 도입하면 법관의 근무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수 있게 된다. 물론 최종 판단은 법관의 몫이다. 사실 AI 모든 결과물에 대한 최종 책임은 그 결과물을 사용하는 인간에게 귀속된다. 그러나 AI의 실력이 좋아지면서 사용자의 책임이 점점 더 가벼워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 AI 분석 결과가 이를 뒷받침해 준다. AI 형량 예측 서비스에 발생했던 사건을 입력한 다음 예상 형량을 알려달라고 하자 실제 법원에서 결정된 형량과 거의 근접하게 나왔다. 샘플로 활용된 사건은 음주운전과 같은 비교적 경미한 사건이고 특별한 쟁점도 없는 사건이지만 AI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실제 AI를 재판에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019년 중국 항저우 법원은 AI 판사 ‘샤오즈’를 도입했다. 샤오즈는 판사를 보조해 변론 요약, 사건 증거 평가 등을 처리해 주고 있다. 대만 최고법원인 사법원은 AI 양형정보시스템을 2023년부터 전면적으로 도입했다. 다량의 재판 기록들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 AI 시스템을 통해 자신의 형량을 예측할 수 있게 됐다. 

인공지능(AI) 일러스트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인공지능(AI) 일러스트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AI를 도입하고 활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 학습을 통해 계속 진화한다는 것이다.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례 584건을 토대로 훈련받은 AI 판사가 인간 재판의 결과를 79%의 정확도로 예측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학습을 더 많이 하면 이 수치는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AI 결정이 인간 판사가 내린 판결과 같을 수는 없다. 바람직하지도 않다. 판결은 법과 상식에 기초해 최대한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AI는 실력 있고 일 잘하는 비서로 활용해야 한다. 이 비서를 잘 이용하면 지연된 정의를 어느 정도 회복시켜 줄 수 있다.  

문제는 법원의 판단이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보수적이다.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우호적이지 않다. 특히 판결에 영양을 미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보수적이다. 어느 정도는 동의할 수 있다. 문제는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사법정의 안에는 법관의 신중한 판결도 있지만 국민들이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도 포함된다. 헌법 27조에는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모든 것을 법관 부족으로 돌리고 법관 증원만 기다리고 있으면 법원 스스로가 헌법을 위반하게 된다. 국민 모두가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의 회복을 위해 필요한 조처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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