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바라는 것을 갖게 되면, 해보고 싶은 것을 하게 되면,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루게 되면 내가 싫지 않을까. 꿈꿔온 게 있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주 오래된 바람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반에 글을 쓰는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단순히 일기 정도, 글짓기 정도를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였다. 친구는 항상 화제의 중심에 있었다. 아이들은 친구가 만든 이야기책을 보겠다고 줄을 섰다. 친구는 대여 순서를 정해주고 언제까지 책을 반납할 건지 꼼꼼하게 수첩에 적었다. 책을 다 읽은 아이들은 다음 책이 언제 나올지 궁금해하며 기다렸다.

나는 관심 없는 척했지만 사실 친구의 책이 보고 싶었다. 도화지를 잘라 만든 책이었는데 공책 반만 한 크기로 글 옆에 그림도 있었다. 글도 그림도 모두 친구가 쓰고 그린 것이었다. 말하자면 ‘초미니’ 동화였다. 그때 나의 감정은 놀라움을 넘어서 충격이었다. ‘동화를 쓰다니. 책을 만들다니!’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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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글 좀 쓰던 아이였는데 친구는 차원이 달랐다. 아이들은 나만큼 놀라고 신기했던 것 같았다. 친구가 책을 꺼내 들면 우르르 몰려들어 만져보려고 서로 손을 뻗었다. 나는 친구 근처에는 가지 않았지만 쉬는 시간에도 조용히 앉아 공책에 무엇인가를 쓰고 있는 친구를 힐끗거렸다.

사실 책을 만드는 친구가 부러워 집에서 도화지를 꺼내 몇 번 시도해 본 적이었다. 친구가 한 것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제법 글도 썼고, 그림도 그렸으니까.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줄 쓰기도 어려웠다. 글쓰기와 이야기를 만드는 일은 다른 일이었다. 좌절감에 포기해 버렸다.

친구의 동화책에 애써 관심 없었던 척한 건 지금 생각해 보면 질투였다. 우리 반 대표 글쟁이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글 좀 쓰는 애의 칭호를 잃어버렸다. 학교에서 하는 글짓기 대회에 반 대표로 나가는 아이는 친구가 되었다. 아이들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글짓기 대회가 있는데’ 하면 선생님도, 아이들도 친구를 쳐다보았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에 처음 생긴 스크래치였다. 이후에도 글을 쓰고 싶어서 부단히 애쓰는 삶을 살았다.

지금은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작가가 되었고, 책도 발간하게 되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깊은 우울의 시간을 보냈다. 작가가 되기 전 학원에서 강사 생활을 했다. 그때 나의 생활은 불행했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은 열심히 해도 아이들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며 곧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일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도 아니고,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하는 일이 즐겁지 않았다. 오만했다. 오만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어리석었다. 내가 나의 마음과 삶을 갉아먹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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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학원 강사를 하고 있지만, 곧 등단해 작가가 될 거야, 라는 생각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이미 등단하고, 책을 내고, 화제의 작가가 된 친구들을 보며 나만 멈춰 서 있다는 생각에 나는 자꾸 작아졌다. ‘이젠 꿈에서 멀어졌구나.’

일상이 공허해졌다. 내 삶인데 내 삶에서 내가 발을 빼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는 무너진 부분에 집중해 남아 있는 부분을 보지 못했다. 내가 싫어 견딜 수 없었던 시기였다. 나를 돌아보고 사랑할 겨를이 없었다.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꿈에서 멀어지게 만든 건 다름 아닌 나였단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다시 나를 찾고 일상을 회복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의 생활에, 지금의 시간에 집중하게 되자 일상은 조금씩 회복되었다. 일상이 되찾자 마음도 좋아졌다. 하루하루 삶을 살아내자 작가가 되었다.

바라는 것을 갖게 되었고, 해보고 싶은 것을 하게 되었고,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루게 되었다고 항상 내가 좋을까? 나는 아직도 문득 내가 싫을 때가 있다. 방금 전 한 말을 걱정하고, 종종 상처받고, 실패해 좌절하고 우울한 시간을 보내지만, 예전처럼 함부로 무너지진 않는다. 내가 싫어지면 앞을 향해 걷는 걸 멈추고 앉을 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나에게 말한다.

멈춰 있으면 어때.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하지만 낭비 좀 하면 어때.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다시 달리겠어.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도 있잖아.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2023년 12월 첫 번째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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