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대여섯 살 무렵이었다. 동네가 발칵 뒤집혔던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동네가 발칵 뒤집힐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는 건 기억나는데 무엇 때문이었는지, 어떤 사건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동네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은 너무도 금세 없었던 일처럼 꼬리를 감춰버렸기 때문이었다. 마치 골목에서 울려 퍼지던 뻥튀기 아저씨의 뻥이요, 처럼 뻥 같았다.

고막이 찢어질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지고 난 후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구수한 탄내만 남기고 조용히 사라져 버리는 뻥이요. 동네는, 골목은 다시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로, 웃음소리로 가득 차고 봄볕은 평상에 길게 누워 한낮을 보냈다.

시간이 흘러 골목에서 뛰어놀던 아이 중 한 명이었던 난 작가를 꿈꾸게 되었다. 쓰고 싶은 소설이 있었다. 쓰고 싶은데 선뜻 써지진 않았다. 구상하는 내내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흔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어디서 들어서 본 것만 같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알 수 없는 찜찜함이 풀린 건 몇 년 전이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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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었다. 몇 해 전 여느 때와 같이 어머니와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용감한 오 형제가 악당에 맞서 지구를 지키던 ‘독수리 오형제’라는 애니메이션이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였다. 상희네 삼남매, 나와 언니, 그리고 또 다른 아이는 판자를 대충 얹어 은신처까지 만들고 독수리 오형제가 되어 동네를 뛰어다녔다. ‘악당이 나타났다’라고 외침은 신호가 되어 있지도 않은 악당을 찾으러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독수리 오 형제는 다섯 명이었는데 우리는 여섯 명이었다. 잘 뛰지도 못하고, 항상 중간에 쉬어 주어야 했던 내가 별수 없이 깍두기가 되었다. 뛰다 보면 모두 사라지고 나만 덩그러니 남을 때가 많았지만 참 열심히 골목을 뛰어다녔다. 한참을 뛰놀다 배가 고프면 상희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 앞에 앉아 밥을 먹었다.

그 시절 동네 사람들은 가족과 같았기 때문에 놀다 배가 고프면 같이 놀던 친구 집 어느 집에나 들어가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삼촌과 고모가 어디에 사는지, 아들이 이번 시험에서 몇 등을 했는지, 어머니가 어떤 화장품을 쓰는지까지 남의 집 일을 내 집 일처럼 모두 알고 공유하던 시절이었다.

“언덕 끝 집 기억나니?”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머니가 무심하게 던진 말에서. “새댁이 있었잖아. 말수 적고, 조용한.” 기억나지 않았다. “남편이 공무원이었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었지. 남편이 출장이 잦았는데 그 무렵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게 되어 주말에 잠깐 집에 왔지. 그것도 나중에는 바빠서 오지 못하고 달에 한 번, 두 번 왔었어. 새댁이 갓난쟁이를 혼자 키웠어. 기억 안 나?”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동네에 새댁이 있었나.’ 생각하는 사이 어머니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새댁이 도망간 거야. 갓난쟁이를 두고.” 소설에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레퍼토리를 어머니는 눈으로 텔레비전 화면으로 좇으며 말했다. “남자처럼 머리 자르고, 남자처럼 옷 입고 다니던 박 씨네 고모 생각나? 박 씨네 집에 잠깐 있었는데.” 이건 또 다른 스무고개였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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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고모가 새댁 집에 들락거렸어. 자기가 무슨 서방처럼 안방에 앉아 새댁이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한집에서 지내고 그랬지. 그러더니 새댁이 갓난쟁이를 두고 박 씨네 고모와 도망을 갔어. 세상에 별일이 다 있지. 그때 동네가 발칵 뒤집혔었잖아.”

남편이 일을 쉬고 육 개월을 넘게 새댁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전국을 뒤지고 다니던 남편이 새댁을 찾아냈다. 새댁을 남편의 손에 끌려 집으로 돌아오고, 박 씨네 고모는 집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그런데 돌아온 새댁이 말이야. 좀 이상해졌지.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살림도 하지 않고, 매일 볕 드는 마당에 앉아 대문만 쳐다보고 있는 거야. 보다 못한 남편이 새댁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 갔지.”

그때 깨달았다. 내가 쓰려고 마음먹었던 소설의 진짜 이야기는 뻥이요, 하고 사라졌던 새댁과 고모 이야기였다는 걸. 한동안 볕이 좋으면 문득 새댁이 생각났다. 새댁의 마음 끝자락이 닿아 있는 대문. 그 대문을 열고 새댁은 나갔을까. 이제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되었을 새댁. 아직도 볕이 드는 마당에 앉아 대문을 바라보고 있을까.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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