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불리는 학교가 내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였다. 까마득하게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학교에 첫발을 내디디던 순간을 기억한다. 3월이었지만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단단히 입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말씀대로 눈밭에 굴러도 춥지 않을 정도로 입었지만 까슬한 볼은 빨갛게 얼었다.

초등학교 입학식은 나에게도 중요한 날이었지만 엄마, 아빠에겐 뜻깊은 날이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서는 아이가 나만이 아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언니, 오빠까지 온 가족이 함께 온 아이도 있었다. 운동장엔 입학하는 아이들보다 아이들 가족이 더 많았다. 나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을 이렇게 많이 보게 되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사람들이 넓은 운동장에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있는 광경도 처음이었다. 나는 놀라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엄마는 잔뜩 긴장해 엄마 옆에 바싹 붙은 나를 슬며시 떼어 놓으며 한곳을 가리켰다. 운동장 강단 아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 둔 푯말이 보였다. 엄마는 푯말 하나를 가리키며 나에게 그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푯말 앞에 선생님이 서 있었다. 내가 선 푯말 앞에는 여자 선생님이 서 있었다. 선생님은 푯말 앞으로 모여드는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이쪽으로 와서 두 줄로 줄 서도록.”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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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서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 줄이나 아무렇게 서는 아이들이 많았다. 줄은 구렁이처럼 구불거렸고, 선생님이 줄 밖으로 튀어나온 아이들을 줄 안에 넣고 바르게 서 있도록 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가슴에 하얀 가제 손수건을 단 아이들은 연신 코를 훌쩍거리며 운동장 뒤편에 서 있는 엄마와 아빠를 돌아보았다. 교장 선생님의 연설은 8살 인생에서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재미없었다. 그 재미없는 이야기를 6년 내내 듣게 될 줄 그때는 몰랐다. 6학년 언니, 오빠가 교가를 부르는 것을 보고, 간단한 율동을 한 다음에 선생님을 따라 반으로 이동했다. “내일부터 이곳으로 오면 돼. 내일 가져올 준비물은.”

두 달 전에 사 두었던 가방을 메고 다음 날 교실을 찾아 들어갔다. 이미 교실을 찾아 들어가 자리에 앉는데 진이 다 빠져 버린 것 같았다. 같은 반 친구는 40명이 넘었다. 나는 발이 닿지 않는 의자에 앉아 선생님 말씀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이야기인 것처럼 고개까지 끄떡이며 들었다. 사실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이해하기 어렵고 모르는 이야기였다. 어젯밤에 졸음을 참아가며 속성으로 배웠던 이름 석 자를 학습지 이름 칸에 커다랗게 써놓고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모르는 건 수업 내용만이 아니었다. 공부 시간과 쉬는 시간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항상 집으로 뛰어갔다. 선생님은 미술 준비물을 챙겨오지 못해 집으로 뛰어갔다 할머니가 차려 준 밥을 먹고 미술 시간이 다 끝난 후에 와도 야단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1교시가 끝나고 나면 솔솔 졸리기 시작했다. 그럼 팔베개하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잤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한 번도 나무란 적이 없었다. 잠든 내가 춥지 않도록 윗옷을 가져다 덮어주었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강당 앞에서 추모객들이 강당 외벽에 국화꽃을 놓고 추모메시지를 적는 등 고인이 된 교사 A씨를 추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강당 앞에서 추모객들이 강당 외벽에 국화꽃을 놓고 추모메시지를 적는 등 고인이 된 교사 A씨를 추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처음 받아쓰기를 했던 날, 나는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선생님은 내내 연필만 꼭 쥐고 있던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당시 선생님은 엄마에게 이런 내가 아주 잘하고 있다며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 내 이름 석 자뿐 아니라 짧은 문장을 쓸 수 있게 되고, 학교 화장실을 사용할 용기가 생기고, 준비물을 잊어버리지 않고 가져오게 되면서 점점 초등학생 1학년다워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무슨 마음으로 나를 가르쳤을까 싶다.

맨 앞자리에 앉아 엎드려 자다 화장실 가겠다며 집으로 뛰어가는 나를 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선생님이지만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두려웠고, 무서웠던 1학년 학교생활을 선생님이 있어 잘, 아주 잘 지나갈 수 있었다.

글을 마치며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학교가 신나고, 재밌고, 행복한 곳이었으면 한다. 매일 가고 싶은 곳이 학교였으면 한다. 이것은 비단 학생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모는 교실에 인권은 없다. 누군가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기본적인 권리가 짓밟히고 무시된다면 이것은 교육정책의 실패다. 교실에선 학생과 교사 모두의 행복과 인권이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 스물네 살 초등학교 교사 A씨의 죽음이 가슴 아프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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