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세상의 모든 정원에 꽃이 필 때면 나는 너를 생각한다. 그 시절 따뜻하고 상냥했던 너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지난밤, 너는 앵두나무 밑에 서 있었다. 하얀 꽃으로 덮인 앵두나무 아래 서서 미소 짓고 있었다. 꿈이라는 걸 알았는데도 나는 너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우린 이미 헤어졌는데’라고 생각했을 뿐인데 머릿속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곁에 있었는데.’ 나는 어느새 작고 약한 아이가 되어 너를 마주 보고 있었다.

너는 그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나는 앵두나무가 되어버린 것처럼, 말랑한 땅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두 발을 땅에 딛고 서서 가만히 네가 서 있는 쪽을 보았다. 네 발가락 끝이 닿아 있는 곳에 두 손을 작은 그릇과 같이 조심스럽게 모은 듯한 구덩이가 있었다. 나는 기억했다. 죽은 새를 묻었던 자리였다. 그리고 내가 너를 두고 돌아섰던 자리였다. 내가 너를 기억하고, 구덩이를 기억해내는 순간, 내 몸은 하얀 앵두나무꽃이 되어 흩날렸다. 나는 생각했다. 왜 네가 아니라 내가 앵두나무꽃이 되어 흩날리는 거지.

모든 것은 앵두나무가 있던 정원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춘천에서 살았다. 춘천은 조용한 도시였다. 너무 조용해 낮이 되면 무료하고 나른한 시간이 졸음을 몰고 와 눈꺼풀 위로 내려앉았다. 조용한 도시에서 우리 집이 가장 시끄러웠다. 할머니, 삼촌, 아버지, 어머니, 오빠, 언니, 나, 수시로 드나드는 동네 사람들, 수시로 찾아와 집에 머무는 친척들, 아버지 고향 친구들로 좁은 집은 항상 사람이 넘쳐나는 초고밀도 상황이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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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이 되어서 시끄럽고 정신없던 집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조용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시범적으로 지은 태양열, 열관리 단독주택으로 이사했다. 시범적으로 지은 주택은 도심과 떨어진 농가에서도 외따로 떨어져 여덟 채만 덩그러니 있었다. 우리 집은 길가 첫 번째로 마당과 작은 정원이 딸린 주택이었다. 나에게 정원이 생길지 몰랐다. 정원은 정원이라고 하지만 풀 한 포기 없는 맨살 그대로였다.

정원이 정원다운 모습을 갖추기까지 아버진 많은 시간과 노력을 정원에 쏟았다. 퇴근하면 정원에 쪼그리고 앉아 꽃을 심었다. 주말은 고스란히 정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아버진 처음 가져 본 정원을 사랑했다. 나는 아버지가 집 앞 대문 앞에 목련을 심고 흐뭇하게 바라보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정원에 잔디를 깔고, 뒤편으로 이어지는 길옆에 장미를 심었고, 안방 바로 밑에 앵두나무를 심었다. 이것 말고도 꽃과 나무를 심었는데 내 기억 속엔 장미와 앵두나무만 남아 있다.

나는 아버지가 가꾼 정원을 사랑했다. 장미가 심어진 길을 걷는 걸 좋아했다. 길 끝까지 걸어도 고작 서른 걸음도 되지 않는 길이었지만 붉은 장미가 가득한 길을 천천히 걸으면 동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어느 날은 다이애나를 만나러 가는 앤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다락방 창가에 앉아 꿈꾸는 소공녀 세라가 되었다. 짧은 길을 수없이 오고 가다 너를 만났다. 타들어 갈 것처럼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어지럼증이 일었다.

“너무 덥잖아. 세상에 머리가 불덩이 같아.”

“그러게. 정말 덥네. 괜찮겠어?”

혼잣말을 했을 뿐인데 대답하고 되물었다. 누구? 나? 나는 너야. 우린 그렇게 만났다. 나는 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들을 수 없었다. 너는 오직 나의 너였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함께 즐거워했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화내고 위로해 주었다. 너는 나와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 나는 네가 있어 행복했다.

정원에서 피고 지는 꽃을 너와 함께 보는 것이 즐거웠다. 앵두나무꽃이 하얗게 피어오르면 나는 너무 좋아 앵두나무 주위에서 떠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앵두나무가 우리 집 정원에 있었다. 너무 예쁘다, 라고 내가 말하면 빛이 나는 것 같네, 라고 너는 말했다. 그날 앵두나무 밑에 상자 하나를 묻었다. 내가 아끼던 반지가 든 상자였다. 그날 이후 앵두나무 아래 많은 것이 묻혔다. 인형의 옷, 쪽지, 그림, 몽당연필 등이 앵두나무 아래 묻혔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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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회색 시멘트 마당을 뜨겁게 달구던 날, 나는 마당에서 새를 발견했다. 손바닥만 한 아주 작은 새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새는 움직임 없이 옆으로 누워 있었다. 툭, 건드려도 날아가지 않았다. 죽은 거야, 네가 말했다. 죽었다고? 그래. 죽은 거야. 잠든 게 아니고? 새는 마치 잠든 것처럼 누워 있었다. 벌레와 곤충이 아닌 말랑한 살을 가진 동물의 죽음으론, 새는 내가 처음으로 목격한 죽음이었다. 새를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새를 깨끗한 가제 손수건에 싸서 앵두나무 아래 묻었다.

밤새 앵두나무 밑에 묻은 새를 생각했다. 어쩜, 죽은 게 아니지 않을까. 잠든 것이 아닐까. 다음날 나는 구덩이에 덮었던 흙을 걷어냈다. 구덩이에서 가제 손수건을 꺼내 새를 확인했다. 새는 어제 모습 그대로였다. 가제 손수건으로 덮어 다시 구덩이에 묻었다. 잠시 쉬고 있던 새를, 잠든 새를 내가 묻은 것을 아닐까, 하는 생각에 새를 묻고, 다시 흙을 걷어내 확인하는 작업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너는 그때마다 죽었다고 말했다.

그날도 죽었다는 너의 말을 듣지 않고 흙을 걷어내 가제 손수건을 꺼냈다. 새가 없었다. 새가 사라졌다. 문득, 무서워졌다. 죽지 않았던 거잖아. 살아있었던 거잖아. 잠깐 잠든 거였는데 내가 땅에 묻었어. 네가 죽었다고 했잖아. 나는 집으로 뛰어 들어가 어머니를 붙잡고 말했다. 엄마, 앵두나무 밑에 묻은 새가 없어졌어. 새가. 많이 울었다. 좋은 곳으로 날아갔을 거야, 라고 말하는 너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네가 말을 걸어오는 것을 모른 척했다. 너는 점점 말수가 적은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너를 잊었다.

올해 봄, 부여에서 앵두나무꽃을 보았다. 무심히 지나가는데 누군가 감탄하듯 소리쳤다. 앵두나무꽃이네. 어머나. 발길이 멈췄다. 너를 생각해냈다. 이젠 나를 찾아오지 않는 너를. 그립네, 라고 되뇌었다. 이젠 너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다. 이젠 나이 들어 시시한 어른이 되어버린 나와 노는 게 재미없겠지. 너는 지금 누구와 놀고 있니? 눈부신 너에게 하지 못했던 인사를 한다.

어린 시절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

내 이야기를 들어 줘서 고마워.

나를 기억해줘서 고마워.

눈부신 나와 너의 어린 시절 안녕.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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