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겨울이 유독 춥고 길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동화 작가 모임이 있었다. 연말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존을 확인할 겸 얼굴 보고 밥을 먹자는 의견이 있었다. 열 명의 작가가 모여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시는 소박한 모임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모임을 할 수 없어서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도 인사를 나눌 일이 없었다. 몇년 만에 얼굴을 보며 밥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작가들은 행복해 보였다.

작가는 외롭고 고독한 직업이다. 나 혼자구나, 나 혼자만 글을 쓰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책상에 앞에 앉아 견딘다. 그러니까 연말 모임은 생존 확인을 위한 것이며 잘 버티고 있었던 나에게, 우리에게 주는 소소한 시간이다. 연말 모임에 나는 신입회원으로 참여해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간단한 자기소개 후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근황에 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동화 작가로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는 이야기였다. 작은도서관 사업도 줄어들었고, 창작 지원 사업도 삭감되었고, 강연도 줄어들었고, 도서관 상주 작가도 뽑지 않는 지역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였다. 우울한 이야기였다.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작가로 사는 일은 힘들고 고된 일이라는 것이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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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시나리오 작가이며 영화감독이었던 최고은 작가가 지병과 생활고로 사망했다.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만큼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32세 젊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은 온전한 고통으로 뼈에 새겨졌다. 최고은 작가는 각박한 사회에서 의연하게 예술가로서 삶을 꾸려갔지만, 예술가로 사는 것이 녹록지 않았다.

최고은의 죽음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예술인을 위한 ‘예술인 복지법’, 일명 ‘최고은법’을 탄생시켰다. 예술인이 문화 발전에 공헌하는 바가 커도, 예술은 배고픈 것 아니냐에 대한 인식이 복지에 대한 목소리를 높일 수 없게 만드는 구조였다. 배고파야 예술이 된다는 말은 시대에 맞지 않는 말이다. 배고프면 예술을 할 수 없다. 많은 작가가 직장을 다니며 글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삶이 고단해도 글을 놓지 않는다.

묻고 싶다. 예술은 언제까지 배고파야 하는가. 

예술인은 직업 선택란에서 해당 사항이 없다. 직장인도, 주부도, 자영업도, 프리랜서도 아닌 기타이거나 무직자이다. 2011년에서 11년이 지났지만 우린 여전히 무직자이다. 회원가입을 위해 혹은 은행 대출을 위해 작성하는 서류를 보면 직업 선택란에서 예술인이 선택할 직업란은 없다. 출판사에 회원가입을 할 때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 문학 관련자인지, 작가인지 묻고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11년 사이 다양한 창작 지원 관련 사업이 진행되고, 예술인을 위한 복지 사업이 단계별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예술인의 삶은 여전히 힘들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예술 정책은 달라지고, 예산도 달라지고, 지원 사업도 달라진다. 지속력을 가지지 못하는 정책은 예술인의 삶을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 교육과정에서 ‘한 학기 한 권 읽기’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놀라웠지만, 도서관 상주 작가 사업도 줄어들고, 예술지원 사업 예산이 시마다 전반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는 앞으로 예술인으로 사는 삶이 더 고될 것이라는 예고이다.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이번 겨울은 길고 혹독할 것이라고 한다. 예년보다 춥고 겨울도 길다고 한다. 내가 사랑하는 후배 시인은 먹고살기 바빠 올해 시를 몇 편밖에 쓰지 못했다. 내년에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말에 그래도 써야지, 라고 말했지만, 마음은 좋지 않았다. 그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로는 먹고살 길이 없다. 소설도 마찬가지이다. 장편을 쓰기 위해서는 보통 2, 3년은 걸린다. 직장 다니며 장편소설을 쓰는 일은 꿈도 꾸지 못하겠지만 그런데도 일하면서 쓰겠다는 결심을 한다면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내 삶과 시간을 몽땅 갈아 넣어야 가능하다.

작가로서 2023년 소망이 있다면 예술인의 삶이 예전과 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는 ‘예술은 배고픈 거야’, 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었으면 한다. 10년 전, 20년 전과 다른 예술인의 삶을 살았으면 한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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