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소설가 김은희] 광화문에서 약속이 있었다. 아침에 일기 예보를 확인하니 여름 날씨라고 했다. 여름이라고 하여도 봄이니까, 생각하며 봄과 여름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햇살도, 바람도 기분 좋게 살랑거렸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초록색으로 물든 나뭇잎이 출렁거렸다. 버스 안에서 밖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은 즐거운 일 중 하나였다.

길엔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것 같은 풋풋한 모습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한껏 멋을 내고 학교에 가는 대학생이 내 아들도, 내 딸도 아닌데 귀엽고 예뻐 보였다.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때의 표정과 달랐다. 반짝거렸다. 그들만큼 나도 살짝 들떠 있었다. 서울을 가는 것이 오랜만인 데다가 광화문 나들이는 천만년쯤 되었다. 아침인데도 광화문 거리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직장인부터 외국인 관광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광화문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모두 와 있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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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임에 나온 사람들은 동화 작가였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요즘 쓰고 있는 동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요즘 출판되는 동화 이야기로, 요즘 아이들의 이야기로, 내 아이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동화 작가지만 내 딸은, 내 아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외계인 같았다. 아들과 딸이 이미 다 커서 청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풀리는 않는 숙제였다.

“이해할 수 없다니까.”라는 말로 시작된 우리 아들, 우리 딸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어린이였을 때, 청소년이었을 때가 지나면 고민은 끝날 줄 알았는데 어린이였을 때, 청소년이 되었을 때, 성인이 된 후에도 고민은 매번 다른 종류로 생기고 세상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특히 아들은 엄마에게 있어 이해할 수 없는 생명체였다. 나는 내 친구 A 이야기를 했다.

A는 아들만 둘이었다. 아들이 둘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안됐다는 얼굴로 A를 쳐다보며 말했다. ‘힘드시겠어요’ 물론 너무너무 힘들었다.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무시무시한 엄마로 변해가는 자신을 보고 있으면 서글퍼졌다.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조그마한 입으로 음료수를 조금씩 홀짝홀짝 마시는 옆집 딸들을 보다 바닥에 음료수를 쏟고 좋다고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있는 모습을 보면 화부터 나서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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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사고를 쳐. 하지 말라고 몇십 번은 얘기해도 금방 잊어버리고 하는 거야.’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루에도 수십 가지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전쟁이라고 했다. 세수하고 양치시키는 것은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밥 먹이고 옷을 입히고 유치원을 보내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다. 뛰어놀 땐 그렇게 빠르던 애가 등원 시간이 되면 굼벵이가 된다고 했다. 엄마 속은 타들어가는 줄 모르고 거실 바닥에 누웠다, 소파에 누웠다. 소매를 한쪽만 끼고 킥킥거리며 벌렁 누웠다, 바지를 양팔에 끼고 재밌어 죽겠다며 데굴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단전에서부터 화가 치솟는다고 했다. 아들 둘을 데리고 마트나 음식점에 가게 되면 눈을 뗐을 수 없었다. 잠깐 사이에 아들들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항상 죄지은 것처럼 허리도 펴지 못하고 미안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이 모든 게 내가 잘못 가르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들을 대하는 방식이, 훈육 방식이 잘못되었나 그래서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는가 자책하게 되었다. 매번 자책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사이, 어린이였던 아들들은 청소년이 되었고 A는 여전히 아들 방을 벌컥 열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꼭 딴짓을 하다가 나가야 하는 시간에 씻겠다고 하고 그때부터 챙기기 시작하는 건 뭐야.”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화 작가 B가 말했다. “그때부터 챙기면 양반이지.”하며 웃었다. B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어 상담도 받았다고 했다. 상담이 큰 힘이 되었고, 아들을 외계인이 아닌 나와 다른 사람으로 인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아들을 보며 혼자 화내고 자책하고 좌절하며 엄마와 아들 모두 자존감이 낮아지고, 서로 멀어졌던 순간이 미련스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돌고 돌며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하기 전에 상담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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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친구 A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A의 아들들은 멋진 성인이 되었다. 청소년이었던 아들이 어린이였던 아들과 변함없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며 A는 아들을 대하는 방법을 바꿨다. 일방적으로 내 말을 들어, 네가 잘못했어, 라는 방식은 아들을 고집스러운 아이로 만들고, 입을 닫게 만든다는 사실을 늦게 깨달았다.

친구 A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어려웠다. 아들은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는 걸 힘들어했고, 적당한 단어를 찾아 자신을 마음을 전달하는 걸 어려워했다. A는 답답했지만 기다렸다. A는 잘못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문제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지금 A의 아들들은 지구별에 사는 지구인으로 엄마와 살고 있다.

김은희, 소설가이며 동화작가 (12월 23일 생), 대전일보 신춘문예 소설 등단,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30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 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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