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최근 몇 년 전부터 대학 수강 신청 기간이 끝나면 여러 대학에서 깊은 탄식이 터져 나온다. 주로 어문학과 교수들에게서 시작된다. 어문학과 과목을 들으려 하는 학생들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적은 수의 학생들만 신청하기 때문에 폐강되는 과목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공이 결정되는 2학년 때 어문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들이 없거나 소수에 그쳐서 학과 운영이 어려워지는 것을 확인한 교수들의 한숨 소리 역시 이어지고 있다. 수년 전 지방 대학에서 일어나던 일들이 지금은 수도권 대학에서도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암울한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경북대는 2025학년도부터 유럽어교육학부 불어교육전공을 폐과하기로 했다. 1970년부터 53년 동안 유지되어 온 학과가 없어진 것이다. 경북대의 이 결정으로 불어교육과가 있는 대학은 서울대, 한국교원대, 한국외대 세 곳만 남게 되었다. 불어교육과 폐지는 제2외국어로 불어를 선택하는 고등학생들이 없거나 계속 줄어들기 때문이다. 불문학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최근 서울에 있는 덕성여대는 2025학년도부터 독문학과와 불문학과 2개 전공 신입생을 미배정하는 내용의 학칙 개정안을 대학평의원회에 제안했다가 부결된 사례가 있었다. 학교 측은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개정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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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는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이 해마다 펴내는 교육통계연보를 보면 지난 5년(2018 ~ 2023) 간 전국 4년제 대학의 어학(문학 포함) 학과는 920곳에서 750곳으로 약 5분의 1이 사라졌다. 앞서 언급된 독문학, 불문학과와 같은 비인기 어문학과는 대폭 줄어들었고 상대적으로 인기 학과였던 영어, 중국어학과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모든 어문학 계열의 학과들이 예외 없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문학과 계열이 축소되거나 폐지되는 이유 중 하나는 졸업 후 취업의 어려움에 있다. 특히 영문학의 경우 한때 기업이 선호하는 학과였지만 이제 대부분 신입사원이 영어 사용에 어려움이 없어 굳이 영문학과 출신을 뽑을 이유가 없어졌다.

그러나 어문학과의 비극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생성형 AI의 진화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최근 출시된 삼성 갤럭시 S24 시리즈는 13개 언어 통번역 서비스가 지원된다. 13개 언어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등 주요 언어가 포함되어 있다. 외국어는 계속 추가될 것이며 통번역의 품질 역시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간단한 통번역 말고 외국 원서의 번역 서비스 역시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유료 번역 서비스 Deepl PRO는 31개 언어의 번역이 가능하다. 번역 품질도 좋아 이용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이미지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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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기서 중요한 두 개의 질문을 만나게 된다. 하나는 외국어 통번역이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에 의해 수행된다면 어문학과는 존립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문학은 단순히 언어를 넘어 그 나라 문화와 철학을 가르치는 기초 학문이자 순수 학문이라는 주장을 수용해서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첫 번째 주장은 분명 설득력이 있다. 수요가 없는 전공과목을 대학에서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이미 대학 아닌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서비스를 대학에서 굳이 과정을 만들어 수행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문제는 두 번째 주장이다. 언어는 도구를 넘어 역사적 사회적 구성물이라서 단순 번역으로 치환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다.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이해해야만 콘텐츠의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고전의 경우에는 더욱 섬세한 연구가 필요하다. 시대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단어나 문장을 잘못 번역할 경우 전체 맥락이 왜곡되거나 본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다. 결국 어학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통번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 다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서 자신의 철학을 재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언어를 포함한 인문학 전반에 대한 통섭적 분석을 인공지능에게 기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나름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보편적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사실에 있다. 근대 이후 대학에 외국어학과가 설치된 이유는 글자 그대로 서양의 문물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과학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만 했다.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에서 외국어를 배워 졸업 후 적절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외국어를 습득해야만 외국의 것을 알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좋은 번역 시스템이 있고 많은 정보가 있어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으면 된다. 일부 특정 언어의 전문가들은 분명 필요하고 이들을 위한 전문교육기관 역시 필요하지만,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글로벌 언어의 습득을 위해 대학에서 몇 년씩 공부하는 일은 그리 생산적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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