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손준성 검사의 고발사주 관여 의혹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제외한 대부분의 혐의에 유죄 판단이 내려진 것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무죄 판단한 것은 고발장이 선거 전에 수사기관에 접수되지 않아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이유인데, 법적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실체적으로는 진실의 얼개가 상당히 드러났다고 본다.

이 사건은 어느 검사가 정치적 중립을 위반한 행위를 한 데서 그치는 게 아니다. 당시 검찰 상층부가 정치세력과 언론을 동원해 상상할 수 없는 정치공작에 준하는 일을 벌인 사건이다. 더군다나 그 핵심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지금 대통령과 여당 대표격 지위를 맡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사과가 됐든 설명이나 해명이 됐든 최소한의 책임지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고발 사주'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31일 손 검사장의 공무상 비밀누설 등 일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다만 법정에서 구속하지는 않았다. 손 검사장은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던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범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 이미지와 실명 판결문 등을 텔레그램 메신저로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후보였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주고받은 혐의로 기소됐다(연합뉴스) 
'고발 사주'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검사장)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등 혐의 사건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청사를 떠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31일 손 검사장의 공무상 비밀누설 등 일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다만 법정에서 구속하지는 않았다. 손 검사장은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던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범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 이미지와 실명 판결문 등을 텔레그램 메신저로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후보였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과 주고받은 혐의로 기소됐다(연합뉴스) 

이 사건은 2020년 4월 3일 조선일보 보도를 봐야 완전하게 이해가 된다.

[단독] 채널A 기자에 접근했던 親與 브로커, 그는 '제보자X' 였다

친여 브로커 "윤석열 부숴봅시다"… 9일뒤 MBC '檢·言 유착' 보도

당시 조선일보는 ‘채널A 사건’에 등장하는 이른바 ‘제보자X’에 대해 “조국 전 법무장관과 현 정권을 극성적으로 지지해온 지모씨인 것으로 3일 드러났다”면서 “지씨는 과거 횡령, 사기 등으로 복역했다”고 썼다. 기사에는 지모씨가 가명으로 만든 소셜미디어 화면을 캡쳐한 이미지가 첨부돼 있다. MBC의 채널A 사건 관련 보도는 같은 해 3월 31일이었다.

이 보도 이전까지 ‘제보자X’의 실명이나 과거 이력이 공개된 바는 없다. 손준성 검사에 대한 1심 판결을 보면 ‘제보자X’로 알려진 인물의 개인정보 등을 유출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는데, 여기에는 지모씨의 실명이 담긴 판결문과 이를 언급한 메시지 등이 포함된다. 손준성 검사는 앞서 조선일보 보도와 같은 날, 그러니까 이 4월 3일에 이른바 ‘1차 고발장’을 미래통합당 소속인 김웅 의원에게 앞서의 판결문 등과 함께 전송했다.

그런데 고발사주 의혹 공판 과정에서 채널A 사건 '보도 직후'부터 한동훈, 권순정, 손준성 검사가 함께 참여한 메신저 채팅방에서 활발한 대화가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조선일보 보도와 1차 고발장 전달 전날인 2일에는 당시 한동훈 검사가 채팅방에 60장의 사진을 올린 것으로 확인돼 있다. 고발장은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이미지 파일 형식으로 전달됐는데, 이와 관련된 것인지 앞서 지모씨의 소셜미디어 등 신상과 관련된 것인지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공판 과정에선 채널A 보도 직후 윤석열 검찰총장과 한동훈 검사 사이에서도 잦은 통화가 이뤄졌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관계에 더해 당시 전달된 고발장에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 배우자 김건희 여사, 한동훈 검사 등이 피해자로 적시돼 있다는 점까지 보면, 과연 이게 손준성 검사를 비롯한 몇몇이 단독으로 벌일 수 있는 일일까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검차원에서 언론과 정당을 동원할 목적을 갖고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고발사주 의혹 (PG) (=연합뉴스)
고발사주 의혹 (PG) (=연합뉴스)

가령 이런 것 아니냐는 거다. ’채널A 사건’ 등 일련의 보도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그 주변 검사들은 정권의 공작 내지는 공격으로 인식했다. 가령 당시 한동훈 검사는 2020년 2월 뉴스타파 등을 통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보도가 나오자 채널A 소속 기자와의 메신저 대화에서 “ㅎㅎㅎ공작치곤 수준이”라고 반응했다. 이들은 ‘반격’이 필요하다고 봤고, 기왕이면 이를 통해 총선 결과에 일정한 영향을 줄 필요도 느꼈다. 고발사주는 고발로 시작되는 법적 절차를 통한 권리 구제에 핵심이 있는 게 아니라, 고발이라는 행위가 선거전에 필연적으로 불러올 여론전에 목적이 있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고발사주는 검찰 조직이 정당에 단순히 고발을 사주한 게 아니라 자신들이 대놓고 할 수 없는 정치적 공방을 사주했다고 볼 수 있지 않는가?

물론 이러한 의심은 재판을 통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뭔가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선 누구도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은 이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고발사주가 아니라 제보사주”라면서 공작을 하려면 메이저 언론을 통해 하라는 둥 했다. 이제 누구나 알게 된 것처럼 ‘제보사주’는 아무 근거 없는 얘기였는데 대통령은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상태이다. 이번에도 1심 판결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 등을 앞세워 무대응으로 일관할 걸로 예상되지만, 이는 무책임한 일이다.

이건 단지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고 말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다. 정파를 떠나, 검찰개혁에 대한 입장을 떠나, 그냥 두고 보면 안 되는 일이다. 적과 아군을 나눠 ‘공작에 공작으로 대응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국가기관이 사적이익에 복무하거나 이를 위한 월권을 하는 일 등을 자연스레 인정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요즘 방통위, 방심위, 감사원 등의 기관이 하는 일을 보며 고발사주와 같은 의혹에도 익숙해지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 자체가 민주주의에는 위험 신호다. 요즘은, 위험하다. 이런 위험한 환경을 조성하고 방치하면서 운동권 청산이나 개발 담론 같은 것으로 어떻게 감히 표를 달라고 할 수 있는가? 대통령과 여당 비대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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