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 미디어스는 이번 주 KBS 공영미디어연구소 이슈리포트에 게재된 심영섭 교수의 기고문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가져올 파국'을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수신료 분리 징수와 관련해 KBS, EBS 등 공영방송사의 입장은 배제된 상황입니다. 미디어스는 수신료 분리 징수는 공영방송의 근간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시청자, 시민과 관련된 중차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합니다. 또한 공론장 마련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시민들의 올바른 판단에 기여하기를 바라며 반론의 장을 열어놓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사회적 비용과 갈등 증가시킬 '분리징수'

방송통신위원회는 TV수신료(KBS·EBS 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10일간의 입법 예고 기간으로 6월 16일 의결했다. 입법 예고 기간이 끝나면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안건으로 상정돼 의결될 것이고, 그 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서 대통령 재가 절차를 밟으면 7월 중 시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일반법 시행령 입법 예고 기간이 40일임을 고려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입법예고 기간을 10일간으로 줄여야 할만한 국가적 중대사나 긴급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만일 법령이 발효되면, 가처분을 통해서 법리적 행정적 절차에 대해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수신료 분리징수에 관한 주장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현 정부 언론정책의 대다수가 그렇듯이, 시민단체 혹은 야당에서 정부를 견제하거나 KBS 보도에 대한 불만이 있을 때마다 등장한 주장의 하나이다. 그러나 정치공세나 시민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최대치 주장이 실제로 법령으로 실행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추진과정에서 국회와 시민사회에서 의견수렴을 거쳐, 끓어오른 불만을 해소하거나 대안을 마련해 왔다. 

수신료 분리징수와 더불어 심지어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 수신료 제도 자체를 폐지한다는 잘못된 보도도 종종 등장한다. 실제로는 프랑스와 북유럽에서 가구당 부과하는 수신료 대신, 디지털미디어세나 시청각서비스세의 형태로 공영방송 재원조달 방식을 전환했고, 독일은 TV수상기 보유대수에 따라서 부과하던 수신료를 가구당 일괄적으로 납부하는 특별부담금으로 공영방송 재원제도를 전환하였다. 심지어 수신료를 폐지했다고 국내에 잘못 보도된 영국에서도 수신료는 동결되었지만, 차기 BBC측허장 개정 때 인상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은 의견수렴은 물론 사회적 합의를 위한 논의는 물론, 대안 마련을 위한 고민조차 없었다. 국정을 운영하는 정상적인 통치행위의 하나로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된다면, 수신료 분리징수에 따른 대안도 함께 제시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보니, 방송통신위원회가 공표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제43조(수신료의 납부통지) 제2항은 졸속 그 자체이다. 

개정안에서는 기존의 “지정받은 자가 수신료를 징수하는 때에는 지정받은 자의 고유업무와 관련된 고지행위와 결합하여 이를 행할 수 있다”를 “행하여서는 아니 된다”로 단 한 줄만 바꾸었다. 현행 제도에서 수신료 납부대행을 지정받은 한전이 전기료와 함께 고지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통과되면, 한전이 TV수신료와 관련한 징수를 대행하더라고 별도의 고지서를 발급해야 한다. 

수신료 제도 자체에 대한 혁신이 아닌, 단순한 TV수신료 분리 고지는 사회적 비용만 더 발생시킬 것이다. 과연 입법자와 정책발안자가 TV수신료 분리징수가 가져올 파장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이렇게 정책을 처리했는지 묻고 싶다. 그 파장을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게 보면 발등의 불이 떨어진 KBS와 EBS에 올 공적책무를 수행하기 위한 재원 고갈이 가장 크고, 다음은 시청자에게 올 불법 시청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며, 마지막으로 ‘국가의 실패’로 귀결될 정책 부재에 따른 정권의 무능에 대한 비판일 것이다. 

분리징수가 아닌 분리고지라는 함정

입법 예고된 방송법 시행령은 TV수신료 분리 고지를 강제하지만, 위탁징수를 금지하지는 않는다. 정부 당국이 얼마나 졸속으로 법안을 추진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법조문 그대로 본다면, 한전은 수신료 징수를 대행할 때, 전기세 징수라는 고유 업무와 결합하여 TV수신료를 고지할 수 없다. 그러나 별도로 고지할 수는 있다. 즉, 한전이 계속해서 TV수신료 징수대행을 맡지 못한다는 구절은 없다. 

다만 한전이 고유업무인 전기세 고지서와 별도로 TV수신료 고지서를 발급할 경우, 시청자로부터 자동납부 동의와 같은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고, 새로운 행정업무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한전이 TV수신료 징수로 받는 7%대 수수료는 더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법안은 한전이 각 아파트 단지와 같은 공동주택에 위탁하여 받는 관리비에 TV수신료를 병합하여 고지하는 행위를 금지하지는 않고 있다. 방송법 시행령 제42조제2항만으로 공동주택의 관리비 징수에 관한 사항을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KBS와 각 공동주택 관리사무소는 그 어떠한 위탁징수 계약을 맺은 당사자도 아니다. 문제는 개별가구이다. 단독주택이나 관리사무소가 없는 공동주택은 개별고지서를 받게 되는데, 이 경우에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당연히 집단소송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단독주택은 분리고지를 받는데, 관리사무소가 있는 공동주택은 관리비에서 자동으로 TV수신료를 징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한전이 정부 여당 압력이나 비용효율성 때문에 징수대행을 포기할 경우, KBS와 EBS는 수신료징수센터를 구축해야 한다. 

다른 방법은 KBS와 EBS가 다른 징수대행기관을 찾는 것인데, 현 정국에서 징수대행을 맡아줄 기관이나 대행사를 찾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은 한전 징수대행이 어려워 질 경우에 공영방송은 자체징수대행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 경우에 구축경비와 운영비는 지금으로서는 추산하기 어렵다. 사실상 신규회사를 하나 만드는 일이다. 

문제는 회사를 설립하더라도 회사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따라서 업무추진의 범위와 효율이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규를 적용받지 못하면, 일반 민간기업으로 설립해야 한다. 이때 징수원의 법적 지위는 징수업무를 위탁받은 대행업체 종사자에 불과하다. 이러한 신분을 가진 징수원이 각 주택단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관리사무소의 자발적인 협조가 있어야 하고, 개인 주택에서 수신기 소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도 집주인의 개별적인 허가를 받아야 한다. 쉽지 않은 난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사업무를 하는 사람 가운데 전국적으로 모든 주택단지나 공동주택에 별도의 허가 없이 들어갈 수 직종은 우정공사의 집배원뿐이다. 공공기관 소속으로 공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는 사실상 접근 불가능하다. 

KBS와 EBS가 독자적인 수신료징수대행사를 구축할 경우, 수신료 납부대상자를 획정하는 일도 난제이다. 지금은 한국전력이 각 가정에서 납부해야 하는 전기세에 병합하여 TV수신료를 징수하기 때문에, 납부대상자를 별도로 특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징수대행사가 분리징수를 하면 징수대상을 특정해야 한다. 한국전력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수신료납부세대의 이름과 주소를 KBS에 이관받는 걸 기대할 순 없다. 

한국전력이 수신료납부세대(엄밀히 말하자면 전기세납부세대)를 특정하여 KBS에 제공하기 위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서 각 가정으로부터 동의를 얻어야 하고, 그 이후에 취합한 정보를 이관할 수 있다. 비용이 들어가는 문제이고, 전기세납부세대의 전수 동의를 얻는다는 보장도 없다. 사실은 동의해 주길 기대하기도 어렵다. 국세를 납부하는 세대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서 동의가 전제되어야 하고,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시청자의 기피와 분리고지의 비효율성

현행 TV수신료 징수방식을 바꿀 경우, 시청자의 수신료 거부는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징수대행사가 납부대상자의 주소를 확보하여 각 가정에 고지서를 보내더라도, 시청자가 납부한다는 보장은 없다. 마치 대한적십자사 회비 고지서와 비슷하게 납부하지 않고 외면할 가능성이 더 크다. 

수신료는 1998년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서 TV수상기를 가지고 있는 세대면 누구나 내야 하는 특별부담금으로, 이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세대에 대해서는 KBS가 추징과 함께 가산금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해당 세대가 TV수상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납부를 회피한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징수원이 각 가정에 들어가서 TV수상기를 확인할 방법이 여의치 않다. 

시청자는 현행법 상 불법임에도 징수원들과 숨바꼭질을 하게 될 것이다. 혹여 징수원에게 적발되면 준조세를 체납한 체납자로 전락하고, 가산세 부과와 더불어 상습체납의 경우에는 언제든지 고발당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징수효율성은 한국전력에 TV수신료 위탁징수를 맡기기 이전인 1995년 수준인 납부대상자의 5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2022년 기준으로 약 7000억대 수신료 수입이 들어왔다면, 시행령 발효 이후에는 최소한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여기에 분리징수 초기에는 한국전력의 분리 고지 구축비용이나 혹은 KBS 수신료대행사 구축비용을 감가상각비로 계상하기 때문에, 실질 수입은 0에 가까울 수 있다. 

분리징수는 시청자에서 편리한 기피수단이 될 것이다. 지금은 한국전력 전기세 고지에서 TV수신료를 제외하기 위해서 시청자가 TV수상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러나 분리 고지가 시작되면 개인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고, 가구 방문을 거절함으로써 시간을 끌 수 있고, 수신료 납부를 회피할 다양한 방법이 생길 것이다. 여기에 인터넷에서 공공연하게 수신료 납부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방법을 안내하는 인플루언서나 블로거가 등장할 것이다. 제2의 ‘시청료거부운동’이 편의로 시작될 수 있는 위험도 크다. 공영방송 체제가 근간부터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올 수 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TV수상기 없이 실시간으로 TV를 시청하는 가구의 문제이다. 갈수록 TV수상기없이 태블릿이나 모바일, 노트북으로 자신이 희망하는 프로그램만 선별적으로 시청하는 세대가 증가하고 있다. IPTV에 가입하여 초고속 인터넷망을 사용할 경우, TV수상기 없이 태블릿이나 모바일로 TV실시간 수신이 가능하다. 

현재는 이러한 가구에 대해서 TV수신료를 징수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줄어드는 수신료징수액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독일에서처럼 단말기 유형과 관계없이 TV신호를 실시간으로 수신할 수 있는 전자장비(TV수상기, 자동차 내비게이션, 노트북, 테블릿, 모바일 등)를 보유한 가정은 가구당 특별부담금을 내도록 추진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소 판결문은 TV프로그램을 수신하는 가구에 특별부담금을 내도록 하므로,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TV수상기가 아닌 다른 전자장비로 TV를 실시간 수신하는지를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독일의 경우에는 수신이 가능한 장비를 소유하면 당연히 특별부담금을 내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법 해석이 명확하지 않다. 만일 KBS가 독일의 ARD/ZDF처럼 수신 장비에 상관없이 보유한 가구에 특별부담금을 부과한다면, 시청자 단체는 헌법소원을 낼 가능성이 크다. 긴 법정 공방이 불가피할 것이다.

수신료 분리징수에 대한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보수와 진보를 구분할 것 없이 한결같이 ‘KBS가 진즉에 뼈를 깎는 혁신안을 만들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은 ‘안일하게 대응한다’고 비판한다. 맞다. 그러나 지금은 대안없이 공영방송의 근간을 흔드는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 더 주목할 시간이다. 

새로운 시행령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공영방송의 존립 기반을 뒤흔들 것이다. 공영방송이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기능을 수행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마땅하다. 그렇다고 꼬리를 흔들어서 몸통을 비틀어서는 혁신도 개혁도 없다. 그걸 좋다고 비아냥거리고 웃고 즐길 일도 아니다. 

신문기업이 뉴스포털에 무료로 기사를 제공하면서, 신문은 공짜라는 인식이 굳어졌듯, TV수신료도 마찬가지다. 한번 납부하지 않아도 되는 ‘도피 경로’가 만들어지면, 무너진 둑에서 물이 새어 나가듯 수신료 납부대상자는 빠져나갈 것이다. 그 이후에 동일한 경로로 TV수신료를 징수하거나 납부의사에 호소할 방법은 없어질 것이다. 무료라는 독약은 영혼까지 잠식할 수 있다. 

지금 정부에서 해야 할 일은 OTT환경에서 공영방송에 부여할 공적책무가 무엇이고, 이 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재원의 조달과 책무에 대한 평가방식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서 제공될 수 있는 콘텐츠는 시장경쟁에 맡기면 된다. 현 정부의 기조대로 추진하면 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필요함에도 시장이 제공하지 못하는 콘텐츠를 공적 영역에서 제공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의 ‘기본공급’ 책무가 필요하다. 그 수준을 규정하는 일이 정부가 할 일이다. 물론 KBS 스스로 내부혁신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부혁신을 정부와 정책입안자가 중장기 정책 마련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다면, 그것은 통치를 포기하는 행위이다. 

현재의 수신료 분리징수를 위한 방송법 개정안의 직접적인 여파는 올해부터 시작되겠지만, 가장 큰 파고는 차기 사장의 임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본격화될 것이다. KBS 조직원 사이에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함께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내부에서 무너진 조직이 외부의 거센 파도에 견디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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