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한상희 칼럼] 요즘 KBS를 보고 있노라면 ‘공영방송론’을 듣고 있는 기분이 든다. 시청자들에게 공영방송과 국영방송의 차이를 친절하게 설명하고, 공영방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설파한다. 결국 이를 이상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권으로부터 독립적인 방송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수신료징수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마무리한다.

틀린 말이 없다. 더욱이 수신료징수방안 자체가 논의의 중심을 잡고 앉아, 마치 그것이 공영방송과 국민 사이에 가장 중요한 의제인 것처럼 흔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원론적이고 친절한 설명은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이전부터 매우 필요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원론적인 설명을 시청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방송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지난주 언론인권센터에서는 “방통위는 졸속처리된 수신료 분리징수 개정안 의결을 국민의 권리보장으로 포장하지 말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이를 통해 재난과 안전에 대한 정보의 차별 없는 접근,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교육 콘텐츠, 사회적 소수자와 사회안전망에 대한 가치공유 등을 진정한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의 권리라고 이야기했다.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국민들이 요구해 온 것은 수신료 분리징수도, 수신료 통합징수도 아니다.

수신료에 대한 모든 것, 3분에 정리해 드립니다 (출처=KBS)
수신료에 대한 모든 것, 3분에 정리해 드립니다 (출처=KBS)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것이 어느 진영을 표방하든,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문제와 수신료 문제는 항상 논의의 중심에 있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야의 자리가 바뀌면 공영방송에 대한 입장도 함께 바뀌어 버리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겪으면서 ‘국민의 방송 KBS’는 스스로 어떤 자구책을 마련했는지, 본인들의 말처럼 ‘독립적인 방송’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답을 듣고 싶은 것이다. 충분히 예고된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적응해 나갈 수 있는 내공을 얼마나 쌓아왔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미디어를 소비하는 시대에 ‘공영방송’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진심으로 고민해 왔는지 궁금하다.

공영방송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과 주장들을 하면서 뜻하지 않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나 혹은 우리들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일까?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일들을 한다고 생각했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만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다. 그런데, 단체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시민’이라는 말과 거리에서 마주치는 진짜 ‘시민’들이 동일한 것일까? 후자의 시민들은 우리가 하는 일들을 꼭 필요한 것이라고 공감해 줄 수 있을까?

미디어 이용자들의 인권과 권익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목적이 정파적이거나, 진영논리에 따라 달리 해석된 적은 없는지 생각해 본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이에 따른 문제점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 연구하고 고민하며 새로운 운동의 방식을 만들어 왔는지 반성하게 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를 지지해주는 회원들과 시민들의 필요와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며 활동해 왔는지 되돌아본다.

수신료에 대한 모든 것, 3분에 정리해 드립니다 (출처=KBS)
수신료에 대한 모든 것, 3분에 정리해 드립니다 (출처=KBS)

어쩌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은 정의롭고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내용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면, 지금의 공영방송과 시민단체는 닮은꼴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정파적이거나 진영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변화에 맞는 새로운 운동방식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시민들과 공감하며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발굴하는 것. 그리고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천해 나가는 것. 늦지 않았다면, 내가 있는 지금, 여기에서 차근차근 실천해 나가고 싶다.

공영방송 또한 정파적이거나 진영논리에 흔들리지 않고, 변화에 맞는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천해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준다면 이 '뜻밖의 반면교사'가 더욱 의미 있어질 것이다.

* 한상희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칼럼은 사단법인 언론인권센터 '언론인권통신' 제 1010호에 게재됐으며 동의를 구해 미디어스에 싣습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