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분신한 철근공 양회동 지대장이 끝내 운명했다. 양회동 지대장의 분신 소식이 전해진 5월 1일 건설노조 김태완 경인건설지부장은 “우리는 조직폭력배가 아닙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김태완 지부장은 “노동조합 이름 팔아가지고 같은 노동자들 피 빨고 갈취했던 ‘건폭’들이 실제로 있다”면서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는 “사측을 만나서 교섭을 하다가 노동조합 입장을 말하면 강요죄라고 하고, 교섭이 결렬돼서 집회 신고하고 집회를 하겠다고 하면 협박이라고 하고, 공갈죄라고 한다”며 “억울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 여러분! 제발 진실을 좀 봐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누군가는 ‘죽음’으로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고, 누군가는 ‘제발 진실을 좀 봐 달라’고 눈물로 호소해야 하는 나라! 

한겨레 장현은 기자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무거움>에서 “기자는 매번 누군가의 삶의 무거움에 관해 들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제라도 들어줄 자세가 돼 있는 걸까”라며 스스로의 역할에 대해 자문했다. 그래서 언론에 질문을 던진다. 

양회동 지대장의 죽음에 언론의 책임은 없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원희룡 국토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권기섭 노동부 차관 등으로부터 건설현장 폭력 현황과 실태를 보고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원희룡 국토부 장관, 윤희근 경찰청장, 권기섭 노동부 차관 등으로부터 건설현장 폭력 현황과 실태를 보고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21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후 건설현장 폭력 실태를 보고받고 “임기 내 건설 현장 갈취·폭력 행위는 반드시 뿌리뽑겠다”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건설현장 노조 폭력을 ‘건폭’이라 지칭하고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해 건설 현장에서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고 했다. 양회동 지대장의 죽음을 두고 “윤석열 정부의 ‘건폭몰이’식 탄압이 이 죽음을 불렀다”라는 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하지만 보수신문, 특히 조선일보는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조선일보야말로 ‘건폭’ 프레임을 앞장서서 만든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올해 들어 공을 들여 ‘건설노조=조폭’ 프레임 만들기에 앞장섰다. 

<민노총 파업이 앗아간 ‘초등생 교실’>(1월 10일)

<아침 7시부터 확성기 튼 민노총…주민 골병>(1월 12일) 

<‘무법자’ 건설노조 1685억 뜯어갔다>(1월 20일) 

<노조원 채용 강요, 타워크레인 월례비(웃돈) 요구…감당 어려워 공사 포기도>(1월 12일)

<타워크레인 기사들 月 1000만원 웃돈…업체 “기사들 노조에 상납”>(1월 20일) 

<불 지른다 협박하고 각목 휘둘러도 ‘집행유예’>(1월 20일) 

<경찰 “건설사 돈이 노조 상부로 흘러간 경로 추적”>(1월 20일) 

<장애인 없는 장애인 노조, 공사장 돌며 수천만원 갈취>(2월 14일) 

<건설사 협박해 300억 뜯은 건설노조 35명 입건>(2월 11일) 

<타워크레인노조, LH공사장서 年 116억원씩 뜯어>(2월 20일) 

<“건설노조서 3억 준대…나 1억 너 1억 갖자, 깨끗하니까 괜찮다>(3월 2일) 

<한노총 부위원장, 건설노조 뒷돈 수억 받았다”>(3월 2일) 

<월례비 못받자 태업…전국 공사판이 느림보 됐다>(3월 6일) 

<건설현장 ‘건폭’ 잡고 보니 진짜 조폭>(3월 9일)

<건설노조 간부, 현장서 전임비로 1억6000만원 뜯어내>(3월 16일) 

<건폭 피의자가 경찰청 앞에서 적반하장 집회>(4월 12일) 

조선일보는 기사뿐 아니라 사설을 통해서도 건설노조에 ‘조폭 프레임’을 씌웠다. 기사에서 언급된 사례들은 대부분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관련이 없음에도 기사 제목에서 ‘건설노조’라고 특정하고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지난 2월 16일 광주고등법원이 월례비를 사실상의 ‘임금’으로 인정했지만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1심 법원도 작업을 시키는 지위에 있는 대양건설산업이 월례비 지급을 강요당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타워크레인 운전기사들의 손을 들어줬지만 ‘웃돈’이라고 쓰면서 ‘건설사를 협박해 뜯어갔다’며 지속적으로 모욕적인 보도를 했다. 광주고법 판결 이후인 2월 21일 사설 <나랏돈과 조합비 사용처 흑막 밝히는 게 무법 노조 개혁 첫걸음>에서는 “118개 건설업체들이 타워크레인 월례비와 노조 전임비 등을 강요받고 노조에 뜯긴 돈이 3년간 1686억원에 달한다. 이 돈이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며 근거도 없이 건설노조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했다.

다음날인 2월 22일 사설 <‘월례비’ 뒷돈 243억원 갈취한 노조, 무법천지 건설 현장>에서는 “전국 건설 현장은 노조의 폭력 갑질로 무법천지가 된 지 오래다. 타워크레인 노조는 비노조원 기사를 쓰면 공사를 방해하는 등 일감을 독식하고 월례비를 안 주면 작업속도를 지연시키는 등 갑질 횡포를 일삼아 왔다”라며 “조폭과 다름없다”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1월 20일 사설 <조폭 그 자체인 건설 현장 노조 횡포, 5년 방치된 무법 천지>와 3월 1일 사설 <국민 지지 믿고 건설노조 협박에 단호히 대응해야>에서 “최근 속속 드러나는 건설노조의 횡포를 보면 그간 건설현장은 무법천지나 다름없었다”면서 “한 건설노조는 노조 상근 간부를 뽑으면서 '무술 유단자에 몸무게 90kg 이상 우대’를 내걸었다고 한다. 조폭 행태와 같으니 ‘건폭’이란 말을 듣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민주노총 건설노조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조선일보 1월 20일 자 사설
조선일보 1월 20일 자 사설

이뿐만이 아니다. 2월 8일 사설<조폭 행태, 시너 파업 노조 골라 '모범상' 준 민노총>에서는 “건설노조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는 화물연대 파업 당시 동조파업을 했을 뿐 아니라 간부들이 조폭처럼 건설 현장을 돌며 돈을 뜯어내다 구속된 조직이다. 현장에서 벌인 불법행위가 조폭들 행태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라고 모욕했으며 3월 10일 사설 <실제 조폭까지 노조 탈 쓰고 끼어 든 건설 현장 불법>에서 ‘단속 인원의 77%가 양대 노총 소속’이라는 경찰의 발표를 그대로 인용했다.

하지만 미디어오늘 보도에 따르면 이날 브리핑을 들은 기자들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노조별 단속 인원과 건수를 밝히라”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특정 단체를 지칭해 인원이나 통계를 알리는 게 오해 소지도 있다”며 합산한 숫자만 밝혔다고 한다. 이후 “무슨 오해를 얘기하느냐”는 질문이 재차 나오자 경찰은 ‘단속 대상은 특정 단체나 노조가 아닌 건설 현장’이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같은 사설에서 “실제 조폭이 건설노조 간부로 활동하며 돈을 뜯어낸 사례가 처음으로 적발됐다”며 인천, 충북, 부산 경남의 장애인노조, 세종시 환경단체 등의 사례를 적시했지만, 민주노총 건설노조 사례는 없었다. 노컷뉴스는 이와 관련해 “실제로 조폭이 개입된 불법 행위 적발 사례 가운데 양대노총 소속 조합원이 있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경찰은 "(양대노총이 개입된 사례는) 없다"라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그동안 기사와 사설, 칼럼, 취재수첩 등을 통해 집요하게 ‘건설노조=조폭’ 프레임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거론한 대부분의 사례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와 무관하다. 애초부터 조선일보에게 '진짜 조폭’과 건설노조의 구분 따위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한강대로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 등이 정부규탄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4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한강대로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관계자 등이 정부규탄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한국일보 이진희 기자는 칼럼 <‘건폭’이라는 이름이 죽이는 것들>에서 “모욕을 주는 가장 쉬운 방식은 싸잡아 말하기”라며 “이런 비난을 받는 사람은 ‘숨 쉴 구멍’이 없어진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정부가 ‘건폭’(건설노조+조폭)이라는 단어를 내놓았을 때, 의도한 것도 이 점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창조한 ‘건폭’이라는 이름은, 오랜 기간 ‘노가다’로 비하받으며 위험하고 힘든 건설현장을 그나마 다닐 만한 직장으로 만들어온 건설노조의 긍정적인 면을 아예 표백시켜 버린다”라고 지적했다. 

양회동 지대장의 죽음 뒤에는 ‘건폭’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싸잡아 비난하기’ 식의 모욕이 자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창조했다는 ‘건폭’은 조선일보와의 합작품이다. 대통령과 조선일보가 만든 ‘모욕’에 ‘자존심’을 지키려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노동자의 영정에 ‘언론개혁’이란 이름이 쓰인 국화 한 송이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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