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건폭몰이’를 통해 건설노조 고 양회동 지대장을 죽음으로 내몬 보수신문이 반성과 사과는커녕, 반헌법적 보도로 윤석열 대통령의 반노동 정치를 부추기며 민주주의 근간을 훼손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3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자유와 기본권을 침해하고 공공질서를 무너뜨린 민노총의 집회 행태는 국민들이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는 그 어떤 불법 행위도 방치‧외면하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거 정부가 불법 집회, 불법 시위에 대해서도 법집행 발동을 사실상 포기한 결과”라며 문재인 정부 책임론을 들고나왔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전날 보수신문의 기사와 사설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되뇐 것에 불과하다.

조선일보 5월 23일 자 사설
조선일보 5월 23일 자 사설

조선일보는 23일 사설 <입법 직무유기로 '24시간 불법 시위 천국' 만든 국회>에서 집시법 개정을 추진하는 국민의힘에 힘을 보탰다. 조선일보는 “불법 시위대를 검거하는 과정에선 시위자들의 저항으로 물리적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 문 정부는 이를 죄악시하며 과거 사건들까지 파헤쳐 경찰에 법적 책임을 물었다”라고 썼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故백남기씨 사망사건’을 적법하게 시위를 진압한 경찰에 책임을 물은 대표적 사례라고 적시했다.

국민일보도 23일 사설 <"국민 불편 해소" 심야 집회‧시위 금지법 추진하는 與>에서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집시법 개정안에 대해 “그간의 숱한 민노총의 집회가 불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뒷북대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국민일보는 이 사설에서 “최근 건설노조의 불법집회는 공권력의 권위가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지를 보여준다”며 “더 큰 문제는 건설노조원들의 이런 불법행위에 경찰이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데 있다”고 경찰의 강경한 대응을 주문하고 나섰다.

서울신문도 같은 날 사설 <시민에게 고통 안기는 집회의 자유는 없다>에서 소음규제대책 정비와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서울신문은 “특히 민노총처럼 법령을 우습게 아는 단체들에겐 마이동풍이라는 점에서 보다 엄정한 소음 규제안이 마련돼야겠다”며 국민의힘을 엄호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이를 위반할 때는 엄중 처벌하는 관행을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요할 때마다 ‘언론의 자유’를 부르짖는 보수신문들이 경쟁하듯 앞다퉈 반헌법적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윤석열 대통령의 당선은 재벌의 이익을 위한 보수신문의 협잡을 통해 이뤄졌다. 이들 보수신문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지율 위기를 겪을 때마다 ‘반노동 혐오 보도’로 윤 대통령의 반노동 정치를 부추겼다. 그리고 그 정점이 ‘건폭몰이’이다. 故양회동 지대장이 유서를 YTN기자에게 남기며 “제발 노조 탄압을 중단시켜 달라”고 호소한 이유다.

17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노동자, 서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윤석열 정권 퇴진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17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세종대로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노동자, 서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윤석열 정권 퇴진 결의대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8일 ‘시민 불편’ ‘혐오감’ 등을 거론하며 “건설노조처럼 불법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유사 집회는 금지‧제한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윤희근 경찰청장의 강경 대응 발언은 지난 15일 윤 청장이 주재한 지휘부 회의 결정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향신문은 21일 “경찰청은 건설노조의 집회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열린 화상회의에서 언행 유의와 적법 절차 준수 등 ‘안정적인 상황관리’를 주로 당부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의에서 경찰청장의 “불법행위 엄정 대응” 지시는 없었다고 한다. 불과 3일 만에 경찰청장의 입장이 돌변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경향신문은 그 배경으로 보수신문의 보도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건설노조 집회 이후 언론에서 ‘공권력이 무너졌다’는 프레임으로 기사들이 나오지 않았냐”는 경찰 관계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실제로 건설노조의 1박 2일 상경 집회 기간 조선일보와 경제신문 등 대부분의 보수신문은 ‘민폐집회’ ‘술판’ ‘노상방뇨’ ‘쓰레기 100t’ ‘노숙집회’ 등 자극적 단어를 사용하며 ‘노동 혐오 보도’를 쏟아냈다. 이틀 동안 보수신문이 전한 집회 분위기는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난장판’ 그 자체였다.

“술에 취해 돗자리에 누워서 자는 모습도 심상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노조원들이 거리에서 식사를 하고 담배를 피우며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려 통행을 방해하기도 했다.”

“거리에 배치된 쓰레기통에는 쓰레기가 수북하게 쌓이다 못해 넘쳤고 집회 참가자들 주변에는 아무렇게나 버려진 담배꽁초와 맥주 캔이 눈에 띄었다”

“보행로 한가운데서 잠을 자는가 하면 집회와는 무관하게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전날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와 술들이 뒤섞여 분리수거도 되지 않은 채 묶여 있었다”

“근처에서 밤새 시위를 한 노조원들이 노상방뇨를 한 탓에 지린내도 났다”

“아침부터 지린내, 토 냄새, 쓰레기 냄새가 겹쳐서 고역이었다”

하지만 건설노조는 1박 2일 상경 투쟁을 기획하면서 보수신문의 ‘노조 혐오 보도’가 이어질 것을 예상하고 전 조합원에게 ‘상경 시 절대 음주 금지’ 지침을 내리고 야외 이동형 화장실 12개를 임대했으며 청소용역업체와 계약을 통해 주변 정리에 최선을 다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건설노조의 1박 2일 집회에서 기물을 파손하거나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의 법 위반은 한 건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선일보는 “인도, 공원을 점거한 채 소란을 피울 경우에 경범죄로 벌금을 부과하는 정도”라며 ‘차로를 점거하지 않은 노숙’은 처벌이 어렵다는 경찰 관계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대규모 군중이 모이는 행사에서 발생하는 일부의 문제를 지적할 수는 있으나, 과장하고 확대해 집회 그 자체를 ‘불법 행위’로 규정하는 언론보도는 기본적인 취재 윤리에서도 벗어난 ‘선동’일 뿐이다.

보수신문은 ‘혐오 보도’에 그치지 않고 사설을 통해 경찰의 강경 대응을 주문하고 나섰다. 

주요신문 ‘건설노조 1박2일 상경 집회’ 관련 보도 제목
주요신문 ‘건설노조 1박2일 상경 집회’ 관련 보도 제목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

경향신문은 23일 사설 <야간 집회 옥죄려는 당정, 헌법적 권리 후퇴 안 된다>에서 헌법재판소 판단을 거론하며 “민주주의 후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2009년 9월 ‘해가 뜨기 전이나 진 후’ 시간대의 옥외집회‧시위를 금지한 집시법 1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렸다. 광범위하고 가변적인 시간대에 걸쳐 집회‧시위를 금지하면서 집회의 자유를 사실상 박탈했다는 취지였다.

한겨레도 사설 <야간집회 제한하겠다는 여권의 위험한 폭주>에서 “여권의 움직임은 경찰의 강경 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우려스럽다”며 “면책조항을 만들어 사실상 묻지 않겠다는 것은 자칫 ‘과잉진압 면허’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지적했으며, 한국일보는 사설 <여당 야간집회 금지 입법 추진…헌법적 권리 제한 신중해야>에서 “불편사항에 대해선 범칙금 부과 등 대응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고, 집회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면서 “집회·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키는 헌법적 권리인 만큼 제한에 신중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겨레 <[세상읽기]노동의 모욕과 존엄에 대하여>에서 “대통령, 여당, 정부 부처, 검경, 법원, 언론을 망라하는 포괄적 지배동맹이 노동자들의 조직과 단결을 공격하고 있다”고 썼다. 신진욱 교수는 “특히 언론은 이 모든 행위를 고무, 정당화하고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해주는 핵심적 행위자”라며 11개 전국 일간지와 8개 경제지에서 ‘노조’ 또는 ‘노동조합’이라는 단어가 ‘공갈’ ‘협박’ ‘폭력’ ‘부패’ ‘비리’ ‘횡령’ 중 하나와 함께 등장한 기사 건수를 분석했다. 그의 조사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1,420건이었는데, 2022년 2,516건으로 폭증하더니 올해는 1~4월에만 2,008건이었다. 결국 지금의 ‘노동 혐오’를 이끄는 장본인이 바로 언론, 특히 보수신문이라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한국기자협회는 인권보도준칙을 만들고 회원들에게 이를 지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인권보도준칙 제1장 ‘민주주의와 인권’은 “노사 관계에 대해 편파적인 보도나 헌법 제33조에 보장된 노동3권을 무시하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대부분의 신문 노동보도에서 인권보도 준칙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진짜 폭력배는 ‘건폭’이 아니라 ‘언폭’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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