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탁종열 칼럼] 조선일보가 지난 5일부터 전태일재단과 창간 104주년 공동 기획으로 <12대88의 사회를 넘자>를 연속 보도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기획에 대해 한편에서는 논쟁·토론을 통한 조선일보와의 '담론 경쟁’ 필요성을 제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태일재단이 용산-노동부-조선일보 삼각편대에 힘을 실어줬다”고 평가했다.

<12대88 사회를 넘자>의 해법이 무엇인지는 기획 기사가 끝나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조선일보에 그려진 노동조합의 모습을 확인하고 ‘조선일보와의 담론 경쟁’을 예측해 본다.

최대한 편견을 없애기 위해 조선일보의 지난 1년 기사를 검색했다. 2023년 1월 1일부터 2024년 2월까지 조선일보 지면에서 ‘민노총(민주노총)’으로 검색된 조선일보 사설과 칼럼을 포함한 기사는 모두 383개(1면 팔면봉 코너 포함)이다. 그 중 사설은 모두 49개였다. 신문 사설은 특정 사안 또는 쟁점에 대해 독자들의 신념, 행동, 생각 등을 설득하기 위한 공적 담론이며 언론사는 사설을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핵심 가치나 이념을 드러낸다.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는 ‘이달의 나쁜 사설’을 선정하면서 ‘신문 사설은 담론 권력’이라고 의미를 뒀다.

조선일보는 매주 한 번꼴로 민주노총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조선일보에게 민주노총은 ‘조폭과 다름없는 폭력 집단이며, 우리 사회에서 격리해 괴멸해야 할 종북세력’일 뿐이다. 

​조선일보 사옥 (사진=연합뉴스)​
​조선일보 사옥 (사진=연합뉴스)​

조폭과 다름없는 ‘민노총’?

조선일보의 민주노총과 관련한 기사·사설 중 가장 많은 프레임은 ‘조폭 민노총’이다. 불법·폭력을 강조하며 시민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민폐세력으로 규정하며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기사와 칼럼, 사설은 모두 124개이다. 사설은 22개로 조사됐다. 이밖에 윤석열 대통령의 ‘건폭몰이’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건설노조를 조폭으로 몰아간 기사는 모두 74개였다.

주로 사용한 단어는 ‘24시간 불법 시위 천국’, ‘혐오 캠핑장’, ‘불편은 늘 시민 몫’, ‘주민 골병’, ‘집단 시위 일상화된 국가’, ‘조폭 행태’, ‘무법자’, ‘조폭 그 자체’ 등이다. 박정훈 논설실장은 칼럼 <전장연 스티커, 민노총 확성기, 정치인 막말>에서 "민노총 보고 조폭 같다는 사람 들이 많다. 그들의 행태는 조폭을 빼닮았다"며 ‘수치심도 모르는 막무가내 떼쓰기 집단’으로 묘사했다.

심지어 조선일보는 헌법적 권리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부정하며, 경찰이 불허한 집회를 허가한 법원과 판사까지 공격했다. 서울행정법원이 금속노조의 국회 앞 1박 2일 노숙 집회를 허용하자 다음 날 사설 <민노총 노숙 시위까지 허용한 법원, 시위 자유만 우선인가>에서 “판사들의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고 판사 탓을 하고 나섰다. 

조선일보 2023년 1월 20일 자 사설
조선일보 2023년 1월 20일 자 사설

‘민노총’ 간첩?

두 번째로 많은 프레임은 ‘민노총 간첩’이다. 이와 관련한 기사·사설은 92개이며, 사설은 모두 16개로 조사됐다. 대표적인 사설 제목은 다음과 같다. 

<일만 나면 북이 지령 내리고, 한국서 그대로 실행된다니>

<지령문만 90건, 민노총・북 관계 안 밝혀진 게 더 많을 것>

<핼러윈 참사 때 '퇴진이 추모다' 구호도 지시였다니>

<민노총 내부에 북한 지하조직이 들어앉은 게 사실인가>

조선일보는 사설 <민노총·통진당 수백 차례 방북, 간첩 활동과 관련 없냐>에서는 민주노총이 남북 교류 협력을 목적으로 통일부 허가를 받아 진행한 ‘남북 노동자 통일대회’, ‘6·15 남북공동선언 연대 모임’ 등 합법적인 방북 활동에 대해 “전세기까지 동원한 방북이 많았다”며 “북한 행적은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고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 의도는 ‘민주노총=간첩’이란 프레임을 덧씌우기 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조선일보는 “일부 인사들이 북한에서 한편처럼 행동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하지만, 출처는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민주노총의 방북에는 국정원 관계자들이 함께 갔으며 모든 일정이 공개적으로 진행됐다. 조선일보는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이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지시받는 등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사건을 통해 마치 민주노총 전체가 북한의 지령을 받는 간첩단이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나지도 않은 상태이다. 조선일보에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언론 윤리는 헌신짝처럼 버려도 되는가.

3월 12일 대법원은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대우조선해양에 유리한 칼럼을 써 준 대가로 금품과 향응을 받은 혐의에 대해 사회상규와 신의성실을 위반한 ‘부정 청탁’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3970만원대 초호화 유럽 여행을 근거로 송 전 주필의 ‘청탁 칼럼’이 조선일보 논설 주간 사무를 이용한 우호적 여론 형성에 관한 대가라고 인정했다.

조선일보의 ‘민노총 간첩’ 프레임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조선일보는 돈을 받고 그 대가로 기사와 칼럼, 사설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는 ‘비리신문’, ‘청탁일보’라 불러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파렴치한 비리집단 ‘민노총’?

세 번째 프레임은 ‘기득권 비리 집단’으로 규정하고 노노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민주노총과 노동조합을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비리 집단으로 몰고 고립하기 위해 ‘깜깜이 조합비’, ‘비정규직을 착취하는 귀족노조’, ‘근로조건 개선에는 관심 없는 정치 투쟁 집단’ 등의 부정적 프레임을 사용한 보도와 사설은 82개로 조사됐다. 대표적 사설은 다음과 같다. 

<"정치 집단이냐" 잇단 탈퇴, 민노총 방향 안 바꾸면 고사시켜야> 

<대기업 노조 사상 최대 임금 인상이 불러오는 문제들> 

<돈 씀씀이 공개 거부하면서 세금 1500억원 받아 간 거대노조>

<대형 노조 63%가 회계장부 제출 거부, 뭘 숨기는 건가>

<나랏돈과 조합비 사용처 흑막 밝히는 게 무법 노조 개혁 첫걸음>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쿠팡이 직접 고용한 배송기사 들이 총회를 열어 민주노총 탈퇴를 결정하자 “민노총이 근로 환경 개선, 처우 개선 같은 개별 노조원 권익보다 정치 집회만을 일삼는 데 반발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을 향해 “조직폭력단을 연상케 한다”고 썼다.

최근 MBC는 쿠팡이 불법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인력을 관리했다고 보도했다. 블랙리스트에 쿠팡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거나 관리자에게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들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쿠팡의 블랙리스트에 대해 침묵했다. 

조선일보는 현대차 노사가 사상 최대의 임금 인상에 합의하자 현대트랜시스 등 현대차 부품 계열사 6개 노조 지회가 동일한 특별 격려금 및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며 공동 파업을 예고한 것과 관련해 사설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고임금은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 협력 업체, 해외 공장 노동자를 착취하는 구조에 따른 것이란 말이 실감 난다”고 썼다.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한다며 꺼낸 ‘노·노 착취’를 거드는 주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산업의 이중구조’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 조선일보의 주장은 오히려 원청 회사인 현대자동차의 책임을 은폐하는 것이다. 지난해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낮은 생산성’(조선일보 주장)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사상 최대의 임금과 성과금을 지급하고도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법인세는 오히려 줄었다. 이중구조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국가가 현대자동차에 더 많은 세금을 거둬 이를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조선일보는 사설 <파업을 식은 죽 먹기나 장난처럼 할 수 있는 나라>에서 "노조 집행부가 파업을 결정하면 사실상 그대로 파업이 된다"고 하지만 이는 노동법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고 파업을 벌이는 노동조합은 없다. 

2023년 2월 21일자 조선일보 사설
2023년 2월 21일자 조선일보 사설

‘민노총’이 장악한 용병언론?

윤석열 정권이 본격적인 공영방송 장악에 나서자 조선일보는 ‘민노총에 장악된 공영방송’, ‘노영방송 MBC’ 등 공영방송에 부정적 프레임을 덧칠하기 위해 ‘민주노총’의 부정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이와 관련된 기사와 사설은 23개로 조사됐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실 “수신료는 사실상 세금…국민 불편 호소 반영”>에서 “KBS는 최근 건설노조 불법집회 수사 등과 관련해 ‘민노총 편향적’이라는 비판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언제, 어떤 내용을 편파적이라고 하는지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았다. 정작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이야말로 ‘건폭몰이’에 항의하며 분신한 양회동 지대장의 죽음을 기획 분신으로 왜곡하고 유서 대필 보도로 고인을 모욕하는 편파 보도를 한 당사자가 아닌가.

또 조선일보는 <노조가 장악한 방송…정치 갈등 격화되며 공영은커녕 용병언론 됐다>에서는 편파방송의 근본 원인으로 “공영방송이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에 장악됐다”는 점을 들었다. 이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일방적으로 “일종의 '용병 언론'이 됐다”는 윤석민 교수의 주장만을 실었다. 역시나 근거는 없다.

방송법은 방송편성 책임자를 선임하여 자율적인 방송편성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방송의 자율성 보장을 위해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 규약>을 제정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단체협약을 통해 보도·제작·편성 책임자에 대한 종사자 임명동의제를 두고 있으며, 시청자위원회를 통해 시청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KBS와 MBC가 민주노총을 탈퇴하면 ‘용병 언론’에서 벗어난다는 것인가. 

한국기자협회는 언론윤리헌장을 통해 “특정 집단, 세력, 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한 자세로 보도해야 한다”며 ‘공정한 보도 원칙’을 제시했다. 윤리강령에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나 갈등적 사안을 다룰 때는 다양한 입장을 두루 담아 전체를 아우르는 균형 잡힌 시각과 관점을 보여준다”며 인권 존중의 원칙을 제시했다. 또한 “기사로 인해 불이익을 볼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에는 자신을 방어하고 반론할 권리를 보장한다”며 피해를 최소화할 것을 주문했다. 

조선일보가 ‘민주노총’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1년 치 기사를 찾아 여러 차례 읽으며 분석했으나 조선일보와의 ‘담론 경쟁’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담론 경쟁’을 위해 무엇보다 조선일보가 ‘노동에 대한 언론 윤리’를 되돌아보기를 희망한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