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9월 미국 순방 중 '욕설'과 '비속어'를 한 사실이 1심 재판을 통해 확정됐다. 

하지만 1심 법원은 윤 대통령이 정확히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증명하거나 판단하지 못하면서 MBC 보도를 '허위보도'로 규정했다. MBC가 '바이든'이라고 보도할 만큼 과학적인 근거를 갖추지 못했고, 대통령실의 주장은 '정황'상 수용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분명한 것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청력테스트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9월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모습 (사진=MBC 보도화면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022년 9월 21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모습 (사진=MBC 보도화면 캡처)​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성지호)가 MBC에 주문한 정정보도문은 다음과 같다. 

"본 방송은 2022년 9월 22일 <뉴스데스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 장소에서 미국 의회와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향해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하였다는 취지로 보도하였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이라고 발언한 사실이 없고, '바이든은'이라고 발언한 사실도 없음이 밝혀졌으므로 이를 바로잡는다"

'이 새끼들' '쪽팔려서' 욕설·비속어 사용 확인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

MBC를 비롯한 140여개 언론사가 보도한 윤 대통령 발언이다. 해당 보도가 허위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이 실제로 무슨 말을 했는지가 객관적 사실로 밝혀져야 한다. 대통령실이 언론 보도 후 15시간 만에 내놓은 해명은 '국회에서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이었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한 외교부는 '날리면'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MBC 보도를 '의도적 허위보도'로 규정해 소장을 제출했을 뿐이다. 윤 대통령은 '기억 안 난다' '바이든은 물론 이 새끼 발언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정정보도청구 소송에서 언론이 아닌 청구자가 허위 입증의 책임을 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 1심 재판부는 입증 책임을 MBC에 떠넘겼다. 

또한 1심 재판부는 현재의 과학수준으로 진술여부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단계에서는 법원이 언론사가 근거로 삼은 자료 등 소송과정에서 현출된 모든 과학적 증거의 신뢰성을 조사하고, 증명력을 음미하거나 탄핵하는 방법으로 진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가 MBC로부터 자료 등을 제출 받아 재판 과정에서 외부 감정인을 통해 확인한 윤 대통령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 ***(판독불가) 쪽팔려서 어떡하나"

1심 재판부 판결대로라면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회, 야당을 향해 욕설을 뱉은 것이 된다. 1심 재판부는 "윤 대통령이 '바이든은'과 '날리면' 중 어떤 발언을 한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했다.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사진=연합뉴스)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사진=연합뉴스)

전후 '맥락'과 외교부 장관 '주장'

1심 재판부는 윤 대통령이 '바이든'이라 발언했는지 여부가 기술적 분석을 통해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MBC가 '바이든'이라고 보도한 것이 문제라고 봤다. 

특히 재판부는 "이 사건 발언이 이루어진 시각, 장소, 배경, 전후 맥락, 당시 위 발언을 직접 들은 박진 장관의 진술 등을 종합해볼 때, 윤 대통령이 미국 의회와 바이든을 향하여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하였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다시 말해 별다른 증거 없이 윤 대통령이 '바이든' 발언을 한 적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윤 대통령은 재정공약회의에서 대한민국이 앞으로 3년 동안 총 1억 달러를 기여하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였고, 이후 바이든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기여액을 상당히 증액해줬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미국 역시 60억 달러를 더 기여하겠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며 "대한민국이 글로벌펀드에 1억 달러를 기여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동의가 필수적인데, 당시에는 야당이 국회 의석수 과반을 차지한 '여소야대' 상황이었다"고 했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회'가 자연스럽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같은 논리라면 바이든 대통령 역시 미국 의회와의 협력을 통해 글로벌펀드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 '바이든'을 거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법원은 "이렇게 보기 위해서는 윤 대통령이 일반적으로 미국 의회를 지칭하는 '의회' 대신 착오로 대한민국 국회를 지칭하는 '국회'를 사용하였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미국 의회를 '국회'로 잘못 지칭하였다고 볼 만한 합리적인 사정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재판부는 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 보좌한 박진 외교부 장관의 주장을 별다른 근거 없이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풀 기자단에 의해 촬영됐고 MBC 기자들 중 발언을 직접 들은 사람도 없는데 박진 장관은 현장에 있었다는 게 신빙성 판단의 유일한 근거다. 

박진 장관은 2022년 9월 30일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대통령이 어떤 말을 했는지 단 한 문장이니까 이 자리에서 공개해달라'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표현 하나하나에 대해 말씀드리지는 않겠다"며 "다만 제가 대통령 옆에 지나가면서 이해한 취지는 '우리가 세계 질병 퇴치를 위해서 공여하겠다는 발표를 했는데, 그것이 제대로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창피한 것 아니냐' 이런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박진 장관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재판부는 "이는 앞서 본 이 사건 발언의 배경, 전후 맥락에 비추어 신빙성이 높다"고 판시했다. 

대통령실 15시간 만의 해명

대통령실이 윤 대통령 발언의 진위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떻게 해줄 수 없느냐"며 즉각 부인을 못하다가 15시간 만에 '바이든' 해명을 내놓은 것은 논란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대통령실이 이 사건 발언 내용 자체에 대해 명시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고 하여 곧바로 이 사건 발언을 시인하였다고 이해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MBC 주장과 대통령실 해명에 따르더라도 대통령실이 '이 사건 발언은 사실이다'라고 적극적으로 시인한 사정은 확인되지 않는다"며 "각 해명은 이 사건 진위 여부와 무관하게 보도 자체로 인한 논란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회를 향해 욕설과 비속어를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대통령실이 파급력을 고려해 부인하지 못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지난 2022년 9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쉐라톤 뉴욕 타임스퀘어호텔 내 프레스센터에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지난 2022년 9월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쉐라톤 뉴욕 타임스퀘어호텔 내 프레스센터에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국영상기자협회 설명과 MBC·KBS 등 윤 대통령 해외 순방 일정을 동행취재한 기자들의 해설 보도를 종합하면, 한국시간으로 9월 22일 오전 7시 30분 무렵 관련 영상이 방송매체 서버로 송출완료됐다. 방송기자들은 동영상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각자 확인하는 절차를 거쳤으며 오전 7시 40분경부터 욕설로 들리는 단어가 있다는 이야기가 기자들 사이에서 오갔다. 기자들은 기자실에 있던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바이든'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지만 이 관계자는 "나는 다르게 들린다. 좀 기다려달라"는 취지로 답했다.

이후 오전 9시를 전후로 '바이든'으로 적시된 발언 녹취와 영상이 이른바 '지라시'로 돌았다. MBC가 오전 10시 7분 보도를 했고, 당일 대부분의 언론사가 '바이든'으로 표기해 보도했다. 이 같은 과정에서 대통령실 관계자는 영상취재 기자단에게 "어떻게 해줄 수 없느냐"고 말한 데 이어 방송사 취재기자단 간사에게도 "외교상 부담이 될 수 있는 내용"이라며 비보도를 요청했다. 

해당 영상이 퍼진 3~4시간 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사적 발언을 외교성과와 연결짓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은 기자들에게 대통령실도 윤 대통령 발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됐다. 이 시점까지 윤 대통령 발언을 두고 기자들과 대통령실 사이에 논란은 없었다는 얘기다.

한편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이날 성명을 내어 "어떻게 ‘정답’이 없는 ‘오답’이 가능한가. 실제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바이든은 아니’라는 결론을 자의적으로 정해놓고, 어색하게 꿰맞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며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말한 것인가"라고 1심 판결을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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