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고성욱 기자] KBS ‘시사기획 창’을 제작하는 기자들이 ‘윤비어천가’ 비판을 받는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 편과 관련해 “공영방송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무너졌다”며 “한순간에 홍보물 제작자로 전락해버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KBS 기자협회도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켰는지 되묻는다”며 “이런 방송이 제작돼 전파를 타게 된 경위 역시 책임자 측은 상세하게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KBS '시사기획 창'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 예고편 갈무리

KBS ‘시사기획 창’은 26일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 편을 방송했다. 해당 프로그램은 ▲지난 1년간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순방 세일즈 외교 성과 ▲윤 대통령의 런던 국빈 방문 당시 공군 1호기 상황 등을 다뤘다. 

KBS는 설명에서 “올해 마지막 해외 순방지였던 네덜란드 국빈 방문까지 총 13차례 15개국을 함께 방문한 대통령과 경제사절단은 외교의 중심에 ‘경제’를 놓고 움직이는 세일즈 외교에 집중했다. 그리고 우리의 ‘원 팀’전략은 통했다”고 말했다. KBS는 “대통령과 정부, 기업인이 하나 돼 움직이는 ‘원 팀 대한민국’, 세계경기 침체와 위기 돌파의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는지 '시사기획 창'에서 알아본다”고 했다.

윤 정부의 세일즈 외교에 대한 비판은 없었으며 인용된 21명의 인터뷰도 긍정 일색이었다.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는 시사제작2부 최 모 부장이 직접 원고를 쓰고 제작했으며 부서원들은 예고편이 나가기 전까지 방송 내용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프로그램을 두고 네티즌들은 ‘시사기획 창’이 국정홍보 방송으로 변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27일 저녁 ‘시사기획 창’ 평기자 8인은 사내 게시판에 성명을 내어 “논거가 빈약한 내용을 보면서 공영방송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창' 제작진의 자부심은 무너졌다. 그간 쌓아올린 안팎의 소중한 평가는 한순간 사라졌다”며 “KBS가 국민이 아닌 5년 단임 정부의 안녕을 걱정한다는 비아냥을 듣는 상황까지 왔다”고 밝혔다.

기자들은 “외국인들의 의례적인 공치사를 담을 게 아니라, 순방에 나선 기업의 장밋빛 기대만 담을 게 아니라, 공군 1호기 좌석에 앉은 고위 관계자가 ‘긴장하고 있고 쉼없이 준비한다’는 우리가 찍지 않은 인터뷰를 방송에 내보낼 것이 아니라, 논거를 더 탄탄하게 뒷받침하고 예상되는 반론을 성실하게 담아내는 노력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은 사내 심의팀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나왔다고 전했다. 사내 심의팀은 “순방과 기업 성과 간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사례가 많지 않고, 대통령이나 정부의 홍보성 주장, 혹은 순방 관계 기업인의 인터뷰에서 많은 논거를 찾고 있어 논지의 객관성이 떨어져보인다”고 평가했다고 한다.

KBS '시사기획 창'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 방송화면 갈무리
KBS '시사기획 창' 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 방송화면 갈무리

기자들은 “‘시사기획 창’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기자’들이 만드는 다큐 프로그램이다. 저널리스트의 비판적 시각으로 아이템에 접근하고, 팩트 체크를 기본으로 아이템을 제작해왔다”며 “시청자의 호응을 받은 이유도, 기자들이 자부심을 가진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 방송에서는 창피함이 우선했다”고 비판했다.

기자들은 “공영방송의 영상물이 안과 밖의 사람들에게 ‘북한인가’하는 당혹감과 ‘슬픔’을 주는 이 상황을, 한순간에 홍보물 제작자로 전락해버린 상황을 우리 제작진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더 이상 충성 경쟁을 보고 싶지는 않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KBS 기자협회도 <일방적 홍보가 저널리즘인가>라는 성명을 내고 “정부가 '세일즈 외교'를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탄탄한 근거와 다양한 관점을 토대로 짚어보고(정보 제공), 분석하며(비판 및 감시), 나아갈 방향을 조망(해결책 제시)해야 하지만, 어제 방송에서는 이 같은 부분은 없다”며 “대통령실에서 발표한 해외 순방의 성과만을 무비판적이고 일방적으로 보도하는 '받아쓰기'식 구성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KBS 기자협회는 “방송에는 대통령실에서 홍보성으로 촬영한 뒤 제공한 미공개 영상도 포함된 것으로 보이는데, 출처 표기를 하지 않은 것 역시 제작의 기본에 관한 문제”라고 했다.

KBS 기자협회는 KBS 방송제작가이드라인과 공정성가이드라인을 거론하며 “과연 어제 방송이 KBS가 스스로 밝힌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을 지켰는지 되묻는다”고 말했다. KBS에는 ‘시청자가 특정한 사안을 편견 없이 올바로 이해하도록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균형 잡힌 시각과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는 방송제작가이드라인과 ‘제작자는 제작과정에서부터 전체적인 프로그램의 편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다양한 견해를 포함하도록 유의한다’는 공정성가이드라인이 있다. 

KBS 기자협회는 “이런 방송이 제작돼 전파를 타게 된 경위 역시 책임자 측은 상세하게 밝혀야 한다”며 “사회를 바라보는 '창'이 되겠다며 수많은 기자들이 치열한 문제의식을 담아 15년 동안 제작해온 ‘시사기획 창’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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