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가 상승을 이유로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자 일부 보수·경제지들이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조선·중앙·동아일보에서 임금인상이 확정됐거나 이뤄질 전망이다. '조중동'의 임금인상 틀을 최저임금에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추 부총리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간담회에서 "우리 경제의 어려움을 감안해 경영계에서는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주고 적정 수준으로 임금이 인상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임금은 기본적으로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면서도 "과도한 임금 인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를 더욱 확대해 중소기업, 근로 취약계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고 결국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중앙일보 6월 29일 사설 갈무리
중앙일보 6월 29일 사설 <과도한 임금 인상은 인플레 악순환 부른다> 갈무리

29일 일부 보수·경제지는 추 부총리의 전날 발언을 대대적으로 다뤘다. 중앙일보는 사설 <과도한 임금 인상은 인플레 악순환 부른다>에서 "추경호 '과도한 임금 인상 자제' 일리있는 지적"이라는 부제목을 달았다. 중앙일보는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비용 주도 인플레이션’이 ‘임금 주도 인플레이션’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때"라면서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면 취약계층과 중소기업이 힘들다는 논리를 깔았다. 

중앙일보는 "고물가가 장기간 이어지면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건 취약계층"이라며 "(중략)대기업과 달리 상당수 중소기업은 원가 상승과 매출 부진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런 중소기업들은 임금을 올리기는커녕 생존의 위협마저 느끼는 상황"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은 큰 폭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앙일보는 "지난 1분기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며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기업 근로자들의 고통 분담이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아직 시작되지 않은 '임금 주도 인플레이션'을 거론하며 책임을 경제당국이 아닌 노동자에게 묻고 있는 셈이다. 

세계일보는 사설<고물가 심화시키는 '과도한 임금인상' 자제할 때다>에서 추 부총리 발언을 인용한 뒤 "문제는 노동계와 거대 야당의 행태"라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최저임금 법정 심의 기한 하루 앞둔 어제 결의대회에서 '치솟는 물가와 금리로 노동자의 삶은 더는 견디기 어려운 지경'이라며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세계일보는 "이래선 곤란하다"며 "노동계는 임금 인상에만 매달리던 관행에서 벗어나고, 야당은 정부 정책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구습에서 탈피해야 할 때"라고 썼다. 

이 밖에 <복합위기 속 과도한 임금 인상 자제하고 상생 지혜 모으길>(국민일보), <'인플레 쓰나미' 증폭시키는 과속 임금 인상 자제해야>(서울경제), <커지는 인플레 공포, 노사 긴축고통 나눠야>(파이낸셜뉴스), <고통분담 절실한 때 임금 더 올리려는 '몰염치' 대기업 노조>(디지털타임스) 등의 사설이 이어졌다. 서울신문은 추 부총리 발언 하루 전날인 27일 <복합위기 나 몰라라 상생 잊은 대기업 노조>이라는 사설을 썼다. 

2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 부총리의 발언은 '임금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발언으로 내용적으로 크게 틀리지 않지만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국가 경제를 총괄하는 경제부총리가 인플레이션 상황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태도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노사가 자율로 정할 임금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8일 JTBC 보도 <"월급 빼고 다 올랐는데"… 기름 부은 경제부총리의 입>에서 "임금노동자의 급여를 올리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은 희생을 강요하는 것", "직장인 월급을 스테이시켜 고물가를 잡겠다는 것은 방법적으로 잘못" 등의 시민 반응이 소개됐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설사 내용이 맞다고 하더라도 공무원이 민간에 얘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MBC 보도 <대기업들 임금 인상 자제시키면 "임금격차" 해소?>에서 신승근 한국공학대 교수는 대기업 임금을 묶어야 임금격차가 해소된다는 추 부총리 주장에 대해 "핵심인력들이 한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더 많은 나라 경쟁업체로도 선택이 가능한데 그걸 정부 차원에서 규제한다고 규제가 될지(모르겠다)"고 했다.

추 부총리의 발언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심의 시한을 하루 앞두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 아니냐는 해석이 분분하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29일 의원총회에서 "추 부총리는 과도한 임금상승을 이야기 했지만, 다수 대기업들은 이미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의 예측치를 뛰어넘는 임금인상을 결정한 바 있다"며 "따라서 최저임금 심의 법정시한 하루 전 나온 임금 인상 자제 발언은 사실상 저임금 노동자들의 지갑을 홀쭉하게 만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경영계는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물가 상승을 웃도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제가 침체된다고 주장했다. 

강승복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이 2015년 발표한 논문 '최저임금 인상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10% 오를 때 물가는 약 0.2~0.4%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적으로도 최저임금 인상률과 물가 상승률은 비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이 16.4% 대폭 인상됐던 2018년 물가 상승률은 전년보다 인상폭이 0.5% 하락한 1.4%로 나타났다. 반대로 최저임금 인상폭이 2.75%로 급감했던 2010년 물가 상상률은 전년대비 0.2% 상승한 3%를 기록했다.  

경향신문은 29일 사설 <“임금 인상 자제” 요청한 부총리, 최저임금 누르기 아닌가>에서 "추 부총리의 이날 발언이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중략) 하지만 그 기저에는 정부의 물가 관리 책임을 피하면서 인플레이션 책임을 노동자, 임금 인상에 전가하려는 인식이 엿보인다"며 "재계가 ‘임금 인플레이션’을 핑계로 벌이는 최저임금 동결 주장에 정부가 동의한 것처럼 비치는 게 사실이다. 최저임금 결정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취지가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한편,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8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항상 경영계 입장을 대변하는 조중동이 직원들 월급을 물가 상승률 그 이상으로 올리고 있다"며 "최저임금 산정에도 조중동의 임금인상 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조중동,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 대기업을 비롯해 고액연봉자들의 임금은 올려주면서, 청년과 서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계가 걸린 최저임금은 동결하겠다는 것은 비열한 짓"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발간한 조선노보에 따르면 올해 중앙일보·JTBC는 6%, 동아일보는 4.7% 임금인상을 결정했다. 조선일보 노동조합은 "이들 언론사들이 최근 10년 내 최대 폭의 임금 인상을 결정한 것은 최악의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 임금 폭락을 보전해 주려는 측면도 크다"면서 "임금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조합원들은 '그럼 월급쟁이들만 고스란히 물가 고통을 떠안으라는 것이냐'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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