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에겐 항상 악플이 따라다녔다. 말기암이라는 병명이 거짓말이라는 악플이었다. 그가 마치 악질적인 거짓말쟁이라도 되는 듯 악플은 저주의 양상까지 보였다. 임윤택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갖은 증거를 대가며 임윤택의 거짓말을 확신했다.항암치료를 받는 암환자들이 모두 같은 증상을 보이는 것은 아니며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다는 반론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임윤택이 방송 활동하는 것 자체가 거짓말의 증거라고들 했다. 그것 때문에 임윤택은 답답하다며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결국 임윤택이 죽음으로 암을 증명한 셈이 되었다. 그동안 임윤택의 거짓말을 확신하며 악플을 쏘아대던 사람들은 지금 어떤 심경일까?세상엔 다양한 삶의 양상이 있고, 모든 사람에겐 저마다의 사정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과 사람
을 두고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네 안 받았네 말들이 많은데 무의미한 논란이다. 당연히 받았다. 혹은 안 받았다고 해도 말이 된다.무슨 말이냐면, 은 특정 영화의 영향으로만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비슷비슷한 여러 영화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즉 서양 첩보 영화 전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되고, 안 받았다고 해도 된다. 아무튼 특정 영화의 영향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 영화는 감독의, 일종의 ‘로망’이라고 하겠다. 어렸을 때부터 봐온 첩보영화에 대한 로망 말이다. 그걸 그대로 스크린에 구현한 것이다. 자기 손으로, 한국 사람들을 써서. 그러니까 첩보영화를 많이
베를린의 스토리가 너무 복잡해서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반응과, 너무 간단해서 밋밋하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왜 그러는 걸까?첫째, 경험의 차이다. 이런 류의 첩보 영화를 많이 본 사람에겐 어디선가 본 듯한 간단한 구조다. 나도 영화 보기 전에 반전이 있다고 해서 ‘반전은 언제 나오나’ 이제나 저제나 하면서 봤지만 반전은 나오지 않았다. 예측 가능한 스토리로 갔을 뿐이다.하지만 평소 이런 종류의 영화를 즐기지 않은 사람에겐 복잡할 수도 있다. 단순하게 착한 편과 나쁜 편이 나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죽도록 싸우다 끝나는 원초적 구성에 익숙하다면, 이 영화 스토리도 나름 반전이라고 느낄 수 있다.둘째, 자막의 유무다. 서양 영화는 자막이 나오기 때문에 스토리 전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양현석 YG 대표가 최근 음원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는데 핵심적인 논리는 ‘음원은 대중이 알아서 선택하는 것이다’였다. 어떤 논란에 대해 이렇게 대중의 선택 논리로 맞서는 건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벌들의 상투적인 방식이다. 작은 영화를 좀 더 배려해야 한다는 주장에 극장주들도 대중의 선택을 내세운다.대중의 선택을 지상선으로 내세우는 사고방식은 김영삼 정부 당시에 도입됐다. 이것은 원론적으로는 시장주의인데, 김영삼 정부 이래로 도입된 이 사고방식은 특별히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대중이 알아서 좋은 것을 선택하면 시장은 잘 굴러갈 것이니, 인위적인 개입은 불필요하다는 논리다.세계적으로 이 논리가 깨진 것이 2008년 금융위기였다. 이때부터 국내에서도 자본주의 4.0이라며, 대중의 선택 그 이상의 시
최근 대부분의 논란이 그렇듯이 이번 음원 논란도 가장 저급한 수준으로 흘러가고 있다. 무한도전과 연제협의 이해다툼 구도가 된 것이다. 대부분의 필자들은 무한도전을 두둔하며 연제협을 공격하고 있다.지금처럼 ‘누가 더 잘났냐‘, ’그러는 너는 잘했냐?‘, ’니들도 개판이잖아‘ 이런 식으로는 아무런 건설적인 결과도 얻어낼 수 없다. 자극적인 패싸움만 있을 뿐이다.이번 논란의 핵심은 무한도전이나 연제협이 아니라, ‘방송사가 예능을 앞세워 음원시장을 흔드는 것이 바람직한가’이다. 네티즌은 무한도전을 욕하지 말라며 감정적으로 대응하는데, 무한도전은 이 논점과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무한도전을 계기로 논란이 촉발됐을 뿐이다.(무한도전 음원에 대해선, 무한도전 하나가 가끔 하는 이벤트 음원 정도는 괜찮다고 과거에
강북멋쟁이 등 무한도전 음원이 음원시장을 흔들면서 발생한 논란이 꺼질 줄을 모른다. 최근엔 한국연예인제작자협회에서 이와 관련한 성명을 발표해 더욱 논란이 커졌다.상당수 필자들이 이것을 무한도전과 대형 기획사의 충돌이란 프레임에 입각해 쓰고 있다. ‘박명수는 소녀시대를 이기면 안 되느냐’, ‘무한도전이 왜 욕을 먹어야 하느냐’는 식의 프레임이다.이런 프레임은 무한도전 팬덤을 자극해 불필요한 싸움만을 부를 뿐이다. 박명수가 소녀시대를 이기건 말건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박명수가 소녀시대를 이겼다고 욕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무한도전을 욕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문제의 핵심은 박명수나 무한도전이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방송사가 직접 나서서 음원시장까지 좌지우지하는 게 건전한
이수만은 살아있는 신화다. 영미와 일본 중심으로 공고하게 짜인 세계 대중문화계의 헤게모니 구조에 ‘한류폭탄’을 투척한 사람이다. 처음엔 도시락 폭탄 정도인 줄 알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폭발력이 커져 이젠 세계를 융단폭격할 정도가 되었다.한 마디로 역사를 새로 쓴 사람이다. 한민족 역사상 이런 정도로 우리 문화를 해외에 알린 이가 없었다. 물론 이수만의 SM이 일군 한류는 주로 중화-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권에 집중되어 있다. 싸이 신드롬 정도의 사건을 영미권에서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SM이 이룩한 성과만 해도 엄청난 것이다.HOT를 통해 한류라는 말이 시작되고, 동방신기와 보아를 통해 일본 신한류 형성의 토대를 닦았으며, 소녀시대로 마침내 신한류를 현실화시켰다. 그리고 싸이 현상에도 어느 정
이병헌은 참 얄미운 배우다. 다 가졌기 때문이다. 보통 배우들은 연기면 연기, 외모면 외모, 이렇게 어느 한 가지 특성에 치우치게 마련이다. 송강호와 송승헌의 특징을 생각하면 되겠다. 그런데 이병헌은 이 두 가지를 다 가졌다.이병헌에게는 존재감, 카리스마라는 것이 있다.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고, 화면을 가득 채우고, 극을 이끌어가는 힘 말이다. 이런 매력은 단순하게 얼굴이 잘 생긴 것과는 또 다른 종류의 힘이다. 외모로만 따지면 정우성의 조건이 더 나을 수도 있지만(정우성은 키가 크다), ‘아이리스’ 시리즈를 보면 이병헌의 카리스마가 더 강했다. 게다가 이병헌은 ‘목소리’까지 가졌다.이런 이병헌의 힘이 ‘광해’ 천만 흥행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만약 이병헌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흥행이 폭발하지
싸이 보고 강제한류스타, 강제해외진출이라고들 했다. 싸이가 생각지도 못했는데 미국에서 강남스타일 신드롬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중에 싸이가 대학축제 때문에 귀국했을 때, 강제한류스타를 패러디해서 강제출국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일부에서 그 패러디를 못 알아듣고 싸이를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국익을 위해 강제출국시켜야 한다는 말로 오인해서 반발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어쨌든, 영화 광해의 천만 관객 돌파도 싸이와 같은 의미에서 강제 천만이라 할 만하다. 그 누구도, 영화 광해 측도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못했던 천만이기 때문이다. 배급사 측에선 광해 흥행의 최대 목표로 700만 명 정도를 상정했었다고 한다. 개봉 시기가 그 이상을 상상할 수 없는 때였다. 여름방학도 겨울방학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기 자체가
빌보드 1위에 대한 기대가 커지자, 왜 1위만 바라냐며 2등도 대단한 성과라는 말들이 나온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얘기다. ‘강제출국’이 필요했다는 주장엔, 왜 미국에서의 활동만 중시하냐는 말이 나온다. 정말 그럴까?만약 미국에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2등까지 했으면 당연히 축하만 할 일이다. 그 상황에서 왜 1등을 하지 않았으냐며 뭐라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 이번 사태의 문제는 그런 상황과 다르다.열심히 하다 2등까지 한 것이 아니라, 손 안에 다 들어온 빌보드 넘버원을 걷어차버린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만약 미국에서 계속 활동했으면 이미 2주째 연속 1위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따라서 싸이 신드롬은 더 커졌을 것이며, 그러면 다음 주 그 다음 주 1위도 쉬웠을 것이고, 그에 따라
일 때문에 싸이 시청 공연을 실시간으로 보지는 못하고 인터넷으로 강남스타일 동영상을 찾아 봤다. 그런데 현재 인터넷에 공개되어있는 공연 동영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문제란 바로, 청중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번 싸이 시청 공연의 주인공은 싸이 혼자만이 아니었다. 싸이와 수만 명의 청중이 모두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영상과 소리는 싸이 중심으로만 편집됐다. 이러면 시청 공연을 한 의미가 사라진다.이번 공연엔 마음껏 ‘떼창’ 문화를 즐겨보자는 의미가 있었다. 떼창뿐만 아니라 수만 명이 일시에 추는 춤도 장관이었을 터다. 공연장에 간 사람들은 그런 장관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려고 했다. 수만 명이 일시에 열광하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전율을 느끼게 한다. 과거에 외국 락그룹 공연 동영
싸이가 빌보드 2위한 것을 두고 일본 네티즌들이 격한 반응을 보였단다. 한국인들의 조작이라면서 싸이의 성과를 폄하했단다. 각종 댓글로 싸이를 조롱했단다. 한 매체의 기사 내용이다.어김없이 우리 네티즌도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을 조롱하는 댓글들이 쌓였다. 낚인 거다.싸이를 이용해서 한일 관계를 이간질하는 언론의 낚시 행태는 며칠 전부터 있어왔다. 미국에서 그렇게 인기 있는 싸이가 일본에서는 인기가 없다며, 일본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내용을 전하는 기사들이었다.거기에 네티즌들이 강한 반응을 보이자, ‘옳다구나’하며 이번엔 누군지 알 수도 없는 일본 네티즌의 말들을 빌어 ‘일본, 싸이 신드롬 한국조작설 유포’ 기사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런 기사들이 한국에서 장사가 되니까. 만선
한땐 싸이가 빌보드 1위를 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었다. 이젠 1위를 안 하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빌보드 차트에서 올라가는 탄력이 그만큼 무섭기 때문이다. 2위까지 워낙 힘 있게 치고 올라갔기 때문에, 이런 탄력이라면 다음 주에 1위를 못할 경우 이변이다.그러니까, 1위 자체는 쉬울 수 있는데 그 다음이 문제다. 이젠 몇 주 연속 1위를 할 것인가가 문제란 얘기다. 이왕 1위를 한다면 단발보다는 여러 주 이상 가는 게 좋다. 그 다음엔 미국의 주요 시상식에서 상을 받도록 해야 하고, 그 다음엔 팝 역사에서 2012년이 싸이 신드롬의 해로 기록될 정도까지 가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 탄력을 더 받아야 한다. 그런데 싸이는 국내에서 대학축제와 기업행사를 돌고 있다
싸이가 미국에서 뜨자 바로 이어진 네티즌 반응은 박진영 조롱이었다. 싸이는 이렇게 미국에 가지 않고도 한 방에 떴는데, 박진영은 원더걸스를 미국까지 보내서 고생시키고도 기대만큼의 성과를 못 이뤘다는 비아냥이다.그러더니 요즘엔 싸이를 내세워서 다른 한류스타들을 비난하는 것이 유행이다. 일본에 진출한 한류스타들이 싸이처럼 싹싹하지 않고 건방지다는 기사가 뜨더니, 한류스타들은 싸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기사들도 떴다. 한편, 김기덕이 해외에서 대상을 받은 후 네티즌은 과거에 김기덕을 비판했던 평론가들을 조롱했다. 김기덕을 알아보지 못한 한국의 영화계도 비난의 대상이 됐고, 최근에 김기덕의 작품세계를 비판한 사람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입시교육 때문이다. 하도 정답 맞추기를 하다보니 모든
강남스타일이 강남을 조롱내지는 비판한 것이라는 분석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나도 ‘강남스타일이 강남을 비판해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다’는 식의 답변을 은근히 요구하는 질문들을 계속 받는다. 정말 강남스타일은 강남을 비판/조롱한 것일까?전혀 아니다. 강남스타일의 핵심은 강남조롱이 아닌 자기조롱이다. 전혀 강남스타일스럽지 않은 싸이가 강남스타일이라고 우기며 허세를 떠는 것이 강남스타일 뮤비의 내용이다. 그게 하도 어처구니가 없고 같잖아서 웃기는 것이다.강남스타일에서 강남은 조롱의 대상이 아닌 선망의 대상이다. ‘오빤 강남스타일’이라는 말의 의미는, ‘난 그렇게 잘 나가고 멋진 사람이니 나의 꼬심에 넘어가줘(오빠 죽이지?)’라고 할 수 있다. 즉 ‘강남‘이 ’멋지고 잘 나가는 것‘의 상징으로 사용된 것이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에서 1억뷰를 돌파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그동안 한류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다고는 했지만 1억뷰는 넘지 못하는 선이었다. 반면에 미국의 1급 팝스타들은 1억뷰를 우습게 넘었었다. 그만큼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엄존했던 셈이다.이번에 싸이가 1억뷰를 돌파한 것은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그 선을 넘어섰다는 의미가 있다. 한류의 인기는 주로 동아시아에 편중된 것이었고, 전체적으로 보면 마니아들에게 한정된 시장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강남스타일은 그 한계를 깼다.미국은 우리에게 철옹성이었다. 옛날부터 한국의 국민가수들이 미국 공연을 자랑했었지만 사실은 교포를 대상으로 한 이벤트성 공연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 원더걸스를 비롯한 한국 가수들이 미국 시장에 도전했지만 미국 시장은 쉽게 문을
강남스타일 관련 인터뷰를 하다보면 싸이의 미국 성공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반복해서 받게 된다. 모두들 그게 궁금한가보다.점쟁이도 아니고, 이런 예측이란 게 무의미하긴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싸이의 성공가능성은 대단히 높다. 지금까지의 남성 한류 스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지금까지의 남성 한류 스타들은 모두 멋진 남자 이미지였다. 이건 동아시아에서 100% 통한다. 그런데 미국에선 그렇지 않다. 미국사람들은 동양 남자를 그렇게 멋지거나 섹시하다고 느끼지 않는다.반면에 싸이는 우스꽝스러운 남자 이미지인데 이건 통할 수 있다. 웃긴 동양남자 캐릭터는 미국사람들도 얼마든지 좋아할 수 있다. 싸이가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시장이 있다는 얘기다.사실 싸이의 자유분방한 스타일 자체가 한국보다는 미국
연예인들이 독도 관련 발언을 쏟아내고, 네티즌들은 용기 있는 발언이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반면 이 문제에 미온적인 연예인에 대해선 비난이 폭발한다. 바로 얼마 전에도 카라가 피해를 당했었다. 카라의 경우는 일반 네티즌뿐만 아니라 언론까지 나서서 공격을 했다. 왜 독도 문제에 대해 똑 부러지게 말을 못 하느냐는 것이다.과열이다. 연예인들이라든가 문화인에게 국가적 대립을 부추기는 발언을 강요해선 안 된다. 지금이 전쟁 상황이면 또 모를까, 외교적 설전 단계에서 그럴 필요가 없다. 한국과 일본이 아무리 외교적 마찰을 빚는다 해도 사회문화적 교류는 계속 이어진다. 문화적 적대는 가장 나중이어야 한다.지금 단계에서 연예인들이 일본에 대해 적대적 발언을 하는 건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선동밖에 안 된다. 그
티아라 왕따 사태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티아라 왕따 사태라 함은, 대중이 티아라를 왕따 시키는 작금의 사태를 말한다. 이건 별 근거도 없이 생겨나서 대중이 집단적으로 극단적인 공격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집단광기라 할 만하다.티아라 왕따 사태가 집단광기의 양상을 보인 건 벌써 꽤 됐다. 티진요라는 카페가 나타나서 가입자 수가 30만을 넘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 사태 초기의 일인데, 그때 이미 상황은 집단광기의 양상을 보였다. 그후로도 이것이 끝날 줄을 모른다.최근에 함은정이 드라마에서 쫓겨나자 집단공격성이 다시 불붙고 있다. 함은정이 잘린 건 ‘쌤통’이려니와, 다른 티아라 멤버들까지 출연작에서 당장 잘라버리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정말 매장되는 꼴을 볼 생각인 것 같다.대중이 이렇게 광기를 보이
얼마 전 있었던 황상민 교수의 방송사고 사태 때 수많은 사람들이 김연아 선수를 욕했었다. 황상민 교수가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했는데도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던 것이다.바로 지난주에도 한 멀쩡한 중앙일간지에 한 멀쩡한 지식인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글을 실었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번 황상민 방송사고 사태는 너무나 단순한 사건이어서 특별히 본질이랄 게 없는데도 사람들은 황상민 교수의 말도 안 되고 지극히 선동적이기만 한 이야기에 동조하면서 본질론을 펼쳤다.김연아 측에게 뭔가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이 터지자 일제히 욕을 한 것이다. 무슨 미운 털일까?그건 그런데, 일단 황상민 교수의 복잡한 이야기들이나 본질론이 왜 무의미한 주장인지부터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