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석 YG 대표가 최근 음원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혔는데 핵심적인 논리는 ‘음원은 대중이 알아서 선택하는 것이다’였다. 어떤 논란에 대해 이렇게 대중의 선택 논리로 맞서는 건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벌들의 상투적인 방식이다. 작은 영화를 좀 더 배려해야 한다는 주장에 극장주들도 대중의 선택을 내세운다.

대중의 선택을 지상선으로 내세우는 사고방식은 김영삼 정부 당시에 도입됐다. 이것은 원론적으로는 시장주의인데, 김영삼 정부 이래로 도입된 이 사고방식은 특별히 ‘신자유주의’라고 부른다. 대중이 알아서 좋은 것을 선택하면 시장은 잘 굴러갈 것이니, 인위적인 개입은 불필요하다는 논리다.

세계적으로 이 논리가 깨진 것이 2008년 금융위기였다. 이때부터 국내에서도 자본주의 4.0이라며, 대중의 선택 그 이상의 시장질서 조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다.

얼마 전 대선 때는 모든 후보가 경제민주화나 대형마트 규제 등을 주장했다. 만약 대중의 선택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경제민주화도 필요 없고, 대형마트도 규제해선 안 된다. 대중이 알아서 선택할 것이니까. 재벌빵집도 규제하면 안 된다. 대중이 알아서 선택할 것이니까. 이런 식이면 공정거래위원회 자체가 필요 없다.

역사의 교훈은, 대중의 선택은 절대로 옳은 것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요즘 이 부분에 세계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고, 국내에서도 여야가 여기에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음원 논란이 불거지자 대중의 선택 논리가 창궐한다. 양현석 대표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유명인이나 네티즌이 이런 주장을 반복한다. 이 논리의 위험성이 간과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중이 알아서 선택할 것이란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대중은 절대선이 아니고 정의의 기준도 아니다. 대중도 얼마든지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는 행위자에 불과하다.

한국 대중음악계를 지금과 같은 참담한 지경으로 만든 3대 원흉은, 대중(소비자), 방송사, 기획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셋이 모두 똑같은 책임을 지고 있다. 이 셋 중 어느 하나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은, 그저 화풀이 마녀사냥에 불과하다. 그런 식이면 현실은 영원히 개선되지 않는다.

방송사가 직접 음원장사를 하며 음원시장을 흔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사람들은 ‘연제협이 나쁘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건 그저 증오의 표출일 뿐이지 전혀 합리적인 대응이 아니다. 연제협이 좋건 나쁘건 음원시장 질서의 원칙과는 상관이 없는 문제다.

또, 방송사의 음원장사에 부정적인 입장이면 연제협의 편을 드는 거라고 여기는 분위기인데 그건 완전히 착각이다. 지금 연제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욕하는 그 대형기획사들은, 방송사가 음원장사를 해도 방송사와 손잡고 여전히 잘 살 것이다. 무한도전 편을 들면 연제협에게 ‘빅엿’을 먹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이건 누구 편을 드는 문제가 아니다. 무한도전이 착하고 연제협이 나쁜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제다. 방송사가 대중을 등에 업고 음원시장을 흔드는 것이 옳으냐는 우리 공공질서에 대한 사안이다. 좀 더 차분한 접근이 아쉽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