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하이브 산하 빌리프랩 소속 보이그룹 엔하이픈의 컴백은 순탄하지 않다. 10개월 만에 한국 활동을 재개했지만 팬덤 내외부가 소란스럽다. 타이틀 곡 ‘Bite Me’ 안무엔 일곱 명의 멤버와 짝을 이루는 일곱 명의 여성 댄서가 등장한다. 멤버들과의 페어 안무가 포함돼 있고 안무 동작에 스킨십이 섞여 있다.

쇼케이스에서 무대가 공개됐을 때 현장에선 팬들의 성난 목소리가 빗발쳤다. 23일에는 연예 커뮤니티 인스티즈에서 활동하는 엔하이픈 팬덤 ‘엔진’ 명의로 페어 안무를 빼라는 성명서가 올라왔다. 이들은 미성년자 멤버가 있음에도 안무가 선정적이라고 지적한다. 엔하이픈이 소속된 하이브 본사 앞에선 항의 문구가 쓰인 스크린을 단 차량을 보내는 ‘트럭 시위’가 진행 중이다.

그룹 엔하이픈(ENHYPEN)이 22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다크 블러드(DARK BLOOD)' 발매 기념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타이틀곡 '바이트 미'(Bite Me)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룹 엔하이픈(ENHYPEN)이 22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다크 블러드(DARK BLOOD)' 발매 기념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타이틀곡 '바이트 미'(Bite Me)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 상황엔 여러 반응이 있을 수 있다. 무대는 무대로 보라거나 소속사의 무대 연출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아이돌과 팬덤의 관계를 잘 모르거나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외부의 시선으론 공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팬덤의 입장에 공감하는 편이다. 저 안무는 무대의 표현 요소로 봐도 흠결 사유가 있다. 단지 백업 댄서를 세우거나 여성 댄서를 써서가 아니다. 무대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아이돌이다. 가장 중요한 파트인 후렴과 오프닝/엔딩에서 페어 안무가 등장하고 댄서들과 대형이 합쳐지면서 엔하이픈 멤버들에게 오롯이 포커스가 가질 않는다. 일부 장면만 봤을 땐 보이그룹이 아니라 혼성 그룹처럼 보인다. 무대 카메라 클로즈업이 들어가는 장면에서 멤버와 댄서의 투 샷으로 화면이 채워지기도 한다. 활동 공백기 동안 열 달이나 기다린 입장이라면, 활동의 가장 중요한 콘텐츠인 무대 퍼포먼스에서 아이돌에게만 집중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일반적으로 아이돌 그룹 무대엔 솔로 활동이나 무대의 규모감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백업 댄서들을 잘 쓰지 않는다. 쓴다고 하더라도 성별이 다른 댄서와의 페어 안무 같은 건 찾기 어렵다. 케이팝의 정체성은 팬덤 산업이다. 보이그룹의 경우 팬덤 구매력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고, 팬덤 형성의 동력은 아이돌을 향한 애착감정이다. 엔하이픈 팬덤의 성명문에는 “지난 10년 간 볼 수 없었던” “시대역행적 퍼포먼스”라는 구절이 있다. 그 10년은 케이팝 산업의 팬덤 시스템이 고도화된 시기다. 먼 옛날 가요계에 존재한 혼성 그룹이 멸종되고, 보이그룹 무대에서 여성 댄서들과의 페어 안무가 사라진 이유도 마찬가지다.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공급도 사라진 것이다.

그룹 엔하이픈(ENHYPEN)이 22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다크 블러드(DARK BLOOD)' 발매 기념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타이틀곡 '바이트 미'(Bite Me)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룹 엔하이픈(ENHYPEN)이 22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다크 블러드(DARK BLOOD)' 발매 기념 미디어 쇼케이스에서 타이틀곡 '바이트 미'(Bite Me)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그렇기 때문에 궁금한 건 굳이 이런 안무를 구성한 하이브와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의 의중이다. 오랜 전례나 아이돌 팬덤의 속성상 반발이 나올 거라 예상하긴 어렵지 않다. 노래마다 분위기에 맞는 안무가 필요하고 그걸 연출하는 건 회사의 프로듀싱 권한이다. 하지만, 꼭 요염한 페어 안무를 넣거나 댄서들의 존재감을 아이돌과 뒤섞지 않고는 표현 방법이 없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연출의 필연성이 보이지 않고, 어떠한 이득도 없으며, 오히려 반대하는 팬들이 나타날 개연성만 있는 안무를 집어넣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기존 팬덤이 괴로움을 호소하는 무대를 보고 유입할 새 팬덤이 있을지 의문이며, 지난 활동에 비해 답보 상태인 음반 판매량과 저조한 음원 순위를 보더라도 저 무대가 어떤 확장성을 준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이 논란은 소비자에 대한 존중과 소통으로 연결된다. 팬덤에 의해 존재하고 팬덤의 지지로 돈을 버는 사업을 한다면, 그들의 수요와 정서적 반응을 염두에 둔 채 활동을 기획해야 한다. 이번 논란은 팬들의 맹목적 요구로 회사 경영과 아이돌 인권에 지장이 생기는 종류의 상황으론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의 수요가 기본적으로 호불호의 문제일지라도, 마땅한 명분도 실리도 없이 예상가능한 반발을 자초하고 그에 따른 피드백도 묵살한다면 그 아래엔 팬덤의 존재에 대한 경시가 깔려 있는 것이다. 하이브와 빌리프랩의 이러한 처신은 호불호를 넘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논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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