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중국 시장은 케이팝 산업의 민감한 쟁점 중 하나다. 중국 공구 시장이 성장하며 음반 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게 됐지만, 케이팝 팬덤 내부에선 중국 시장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몸짓도 퍼덕댄다. 한국 사회에 팽배한 반중 여론의 부산물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중국 시장에서 각 그룹의 입지에 따른 여론처럼 보인다. 중국 팬덤이 상대적으로 작은 그룹 팬들이 중국은 현지 활동이 막혀 있다는 이유로 의미를 축소하거나 현지 투어가 가능한 일본 시장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변하는 식이다.

이런 논쟁은 남자 아이돌보다는 여자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 오고 간다. 남자 아이돌에 비해 여자 아이돌은 국내든 해외든 코어 팬덤 규모가 작고, 그래서 여자 아이돌의 중국 공구 의존도가 훨씬 높기 때문이다. BTS가 'MAP OF THE SOUL : 7’ 앨범으로 케이팝 초동 음판 기록 337만 장을 세웠을 때 그중 중국 공구는 77만 장이었지만, 작년 에스파가 초동 기록 142만 장(써클차트 기준)을 세웠을 때 중국 공구는 80만 장이었다. 다른 여자 아이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남자 아이돌보다 중국 공구 비중이 높고 다양한 그룹이 수혜를 본다. 지난해 ‘After Like’ 앨범으로 초동 90만 장을 기록한 아이브 역시 3차 공구까지 합해 중국 공구가 총 65만 장가량이다.

걸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걸그룹 에스파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돌에게 투어 공연과 현지 활동이 중요한 건 팬덤 세일즈의 주요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투어는 기존 팬들에게 굿즈를 팔고 새로운 팬들을 유입시킬 수 있는 기회다. 공연 티켓 판매 수익 자체는 대관료 등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없다. 반대로 팬덤 유입이 왕성하고 팬덤 세일즈가 가능한 시장이라면 투어 공연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최근 코어 팬 성장세가 가장 큰 지역 중 하나고, 음반 판매가 주는 매출과 마케팅 효과는 결코 적지 않다. 몇 년 전처럼 여자 아이돌 앨범이 일이십만 장 팔리는 시대라면 몰라도, 현재 여자 아이돌은 초동 100만 장 시대에 들어섰다. 중국은 적게는 일이십만 장에서 많게는 칠팔십만 장까지 앨범을 사가는 시장이다.

어떤 이들은 관세청 통계 등을 들먹이며 중국보다 미국 시장 음반 수출 성장세가 가파르고 일본에서 앨범을 더 많이 사간다고 주장하지만, 남자 아이돌 음반 판매량과 여자 아이돌 음반 판매량을 구분하지 않은 해석의 오류다. 미국 음판 수출에선 BTS 등 글로벌 인기 그룹 소수의 비중이 크고 일본에서도 남자 아이돌 앨범을 더 많이 구입한다. 사례별로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온다. BTS, 세븐틴처럼 일본에서 인기 있는 남자 아이돌 직수입 판매량은 20만에서 40만 장가량이고, 여자 아이돌은 가장 직수입 판매량이 큰 트와이스도 개별 앨범 판매량이 10만 장 대에 머문다. 신인급 그룹에선 일본 직수입 판매량이 가장 높은 것이 에스파 8만 장가량인데, 에스파 중국 공구 80만 장과 비교하면 (남자 아이돌이 아닌) ‘여자 아이돌’ 그룹의 음반 판매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실감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BTS) [빅히트뮤직 제공]
방탄소년단(BTS) [빅히트뮤직 제공]

정리하면 간단한 이야기다. 음판이 그룹 활동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요소 중 하나고, 남자 아이돌과 달리 여자 아이돌은 음판에서 가장 큰 요소가 중국 공구다. 남자 아이돌과 여자 아이돌의 글로벌 팬덤 시장은 구조적 정세가 다르다. 중국은 남자 아이돌에 비해 여자 아이돌의 코어 팬 규모가 작은 여타 해외 시장과 달리, 여자 아이돌 코어 팬 비중이 남자 아이돌과 엇비슷한 유일한 시장이다. 그것이 남자 아이돌 공구 이상으로 여자 아이돌 공구 판매량이 나오는 매출 결과로 도출되는 것이다. 이건 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구조적 지형이기 때문에 예외 사례가 존재하기 힘들다. 하이브의 경우 중국인 연습생을 뽑지 않아 회사 팬들이 중국 시장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자평하지만, 하이브조차 보이그룹과 달리 걸그룹은 음반 판매를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다. 뉴진스의 경우 데뷔와 함께 중국 공구가 대규모로 이뤄진 이례적인 케이스이고, 이번 컴백 앨범도 중국 공구 30만 장 이상으로 전체 초동 판매량 70만 장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그에 비해 중국 팬덤이 약한 르세라핌조차 중국 공구 20만 장가량으로 초동 음판의 30% 이상이다.

무엇보다 중국 시장의 의미는 레드오션에 빠진 걸그룹 시장에 성장 동력을 준다는 점에 있다. 기존 걸그룹들의 활동 수명이 길어지고 신인 걸그룹이 쏟아져 나오며 걸그룹 시장은 초 포화 상태가 됐다. 더구나 한국 시장은 걸그룹 코어 팬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최근 뉴진스가 컴백 당일에 '침착맨' 이말년 방송에 출연하는 등 특정 걸그룹이 남초 팬덤 친화적 행보를 보이는 것도 팬덤 파이가 고갈되었기 때문에 ‘대중성’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여초 팬덤은 이미 여자 아이돌 팬덤 주류가 된 데다 여초 커뮤니티는 폐쇄적 성향이 강하다. 외부에 개방돼 있어 이슈 파급력이 높은 ‘남초 커뮤니티’의 지지를 얻으며 ‘대중성’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걸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걸그룹 뉴진스 [어도어 제공]

반면, 중국은 시장이 작동하는 논리가 '경쟁'이다. 팬덤 화력을 입증하는 기록에 민감하기 때문에 그룹 간 판매량 경쟁, 같은 그룹 멤버 팬덤 간 경쟁이 치열하다.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케이팝 팬덤 유입도 계속해서 이뤄진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파이가 고갈되는 것이 아니라 파이가 확장되고 매출이 증대하는 시장이다. 데뷔 연차가 오래된 기존 그룹도 중국 공구를 바탕으로 음판이 성장하고, 신인 그룹도 예전과는 출발선이 달라진 것이다. 중국 시장이 현지 활동이 막혀 있다는 말만 단순하게 반복할 것이 아니라 - 물론 현지 활동까지 가능하다면 더 큰 가능성을 가지겠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 아이돌 시장에 미치는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시장의 의의와 더 상세한 분석에 관해서는 이전에 쓴 글 두 편을 참고해 주길 바란다. ( ☞에스파 초동 음판 백만 장의 의미, ☞'걸 크러시'로 연결된 한국과 중국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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