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아이돌의 실력을 평가하는 말은 많다. 많아도 너무 많고, 아이돌 산업이 막 생겨났을 때부터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부분에 관성적으로 고착돼 있다. 어떤 아이돌이 실력 있는 아이돌인가? 바꿔 말하면 아이돌의 전문성은 무엇일까? 춤추고 노래하는 게 그들의 재능인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지난여름 방송된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보며 새삼 깨달은 건 아이돌은 자기가 하는 일들의 전문가를 절대로 이길 수가 없단 것이다.

댄서보다 춤 잘 추는 여자 아이돌이 얼마나 있을까? 아마도 없거나 드물 것이다. 춤 잘 춘다고 소문난 아이돌은 많다. 하지만 그들의 춤을 댄서들과 비교하면 기능적인 측면에서 더 훌륭하다고 하긴 어렵다. 이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고, 종합 엔터테이너의 정체성이 낳는 필연적 결과다. 이것저것 다 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만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을까. 자신의 몸을 춤을 추기 위한 몸으로 세팅하는 데 투입하는 시간이 다르고, 동작의 기반이 되는 코어 근력이 달라서 동작을 잡는 절도와 태가 다르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엠넷 제공=연합뉴스]
'스트릿 우먼 파이터' [엠넷 제공=연합뉴스]

아이돌의 다른 ‘실력’도 마찬가지다. 래퍼보다 랩을 잘하는 아이돌은 없거나 드물고 보컬리스트보다 노래 잘하는 아이돌도 찾기 힘들다. 소수 있다고 해도 그런 경우는 통상적인 아이돌의 범주를 벗어난 재능이다. 흔히 쓰이는 “탈 아이돌 급” 운운하는 표현이 그렇지 않은가? 아이돌이 아이돌 같지 않아야 내세울 만하다면 그게 과연 ‘아이돌로서의 실력’일까? 춤 노래 같은 기능적 퀄리티만 따진다면 아이돌에 대한 평가는 도토리 키재기가 되거나 아이돌의 존재에 대한 자기부정을 깔고 갈 수밖에 없다.

한 분야의 전문성은 다른 분야와 겹치지 않는 고유한 기능과 차별적 경쟁력으로 구성된다. 지금까지 아이돌의 전문성이 '칼군무'로 불리는 무대 퍼포먼스였던 건 사실이다. 가요계에 그런 걸 하는 다른 가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 점에서 <스우파>는 케이팝이 품은 존재 기반을 잠재적으로 흔들어 버렸다. <스우파> 댄서들은 아이돌보다 강력한 퍼포먼스와 다양한 댄스 장르를 선보였다. 한국 최고의 음악방송에서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전까지 소비되던 퍼포먼스의 기준이 파괴되고 다시 정의된 것이다. 케이팝 신과 퍼포먼스란 정체성을 공유하지만, 무대 뒤에 가려져 있던 댄스 신이 부상했고 댄서들은 아이돌의 백업과 춤 선생을 넘어 퍼포먼스의 전문가로 이름 불렸다.

이건 아이돌이 태동했고 활동하는 산업 환경과 밀접하다. 한국은 엔터 내수 시장이 상대적으로 작다. 여러 가지 문화 장르가 여의도 방송국에 소용돌이 형 구조로 흡수되며 대중에게 소개되었다. 아이돌 산업은 댄스 가요에 대한 수요, 댄스 퍼포먼스에 대한 수요, 랩과 힙합에 대한 수요, 비주얼 형 연예인에 대한 수요, 심지어 록 밴드에 대한 수요와 연기자에 대한 수요 등을 한 묶음의 상품으로 공급하며 발달했다. 이 상태가 각각의 수요에 해당하는 전문 분야와 병렬되었고, 아이돌의 정체성과 ‘실력’에 대한 시시비비, 누가 진짜 ‘전문가’인지 가리는 인정투쟁이 벌어졌다. 립싱크 논란은 물론, 연기자들이 아이돌 연기자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국카스텐 하현우가 십여 년 전 아이돌 밴드를 비판했고, 많은 래퍼들이 툭하면 아이돌을 ‘디스’하는 것이 그런 현상이다.

예능 '쇼미더머니' [엠넷 제공=연합뉴스]
예능 '쇼미더머니' [엠넷 제공=연합뉴스]

하지만 어느덧 미디어가 산개된 채 파편화되고 덩어리진 대중문화가 서브컬처로 나뉘면서 아이돌을 구성하던 수요 공급 요소들도 각각의 신으로 분리된 채 떨어져 나가고 있다. <쇼미더머니>가 힙합 신을 부상시키며 힙합과 아이돌을 분리했다면 <스우파> 시리즈는 케이팝의 정체성과 댄스 퍼포먼스 사이에 절취 선을 그어놨다. 심지어 인터넷 방송 여성 스트리머 시장이 발달하며 걸그룹을 구성하던 남성향 팬덤 산업적 요소를 가져가 버렸다. 이렇듯 대중문화이자 종합 엔터테인먼트로서의 파이가 떨어져 나가고 아이돌 역시 하나의 서브컬처가 돼 버린 것이 국내에서 케이팝 시장이 축소된 원인 중 하나다.

다시 한번 질문으로 돌아가자. 그렇다면 무엇이 아이돌의 실력인가. 단순히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는 사실이 아이돌의 전문성인가? 그 모두를 높은 수준으로 갖춘 아이돌이 몇이나 되는가. '아이돌을 뛰어넘어야' 남들만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돌이기 때문에' 남다른 점이 무엇인지 봐야 하는 것 아닐까? 다른 것 안 하고 춤만 추는 댄서들이 그래서 결코 아이돌을 따라갈 수 없는 종류의 ‘전문성’은 무엇일까. 이 답안은 저마다의 해답으로 채울 수 있지만 춤노래 같은 개별적 기능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큰 틀에서 대답을 제시하자면, 다양한 산업과 문화 요소가 종합된 아이돌의 정체성을 긍정하고 주목하되, 기능적 퀄리티를 넘어 그것들의 혼재나 어우러짐이 주는 대체 불가능한 감흥과 존재감에서 키워드를 찾는 것이다.

걸그룹 뉴진스(NewJeans) [어도어 제공=연합뉴스]
걸그룹 뉴진스(NewJeans) [어도어 제공=연합뉴스]

최근 데뷔한 걸그룹 뉴진스는 거기 부합하는 사례다. 뉴진스 멤버들은 춤을 잘 추지도 않고 가창력을 뽐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다소 서툰 느낌까지 든다. 그래도 그들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흥겹다. 서툴기 때문에 더 시선을 끈다. 노래와 댄스 자체가 평범한 목소리와 생기 있는 몸동작으로 표현하게끔 연출되어 있고, 타이트한 퍼포먼스를 목표로 제작된 것이 아니다. 이런 헐거움이 싱그럽게 약동하는 이미지와 교차하고, 앨범 아트부터 오디오 비주얼 콘텐츠 하나하나, 멤버들 패션과 얼굴까지 모든 것이 균일한 무드로 뉴진스란 그룹으로 재현된다. 아무리 스텝을 잘 밟는 댄서들이 뉴진스의 춤을 완벽하게 커버한다고 해도 뉴진스란 고유명사가 빚는 저 분위기는 절대로 재현할 수가 없다.

이건 케이팝 산업의 전문성이란 개념이 기획과 제작, 트레이닝 단계를 아우르는 집단적 창작 행위에서 비롯함을 가리킨다. 아이돌은 실력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 인형이 아니다. 집단적 창작에 참여하기도 하고 그것이 집약된 결과물을 해석해서 재현하는 퍼포머다. 외모와 분위기, 목소리와 표정, 팬들과의 호흡, 센스와 표현 능력, 카메라와 무대 앞에서의 존재감 같은 제 존재 양태로써 최종적 그림을 완성해주는 마스터피스의 자질이 곧 아이돌의 재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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