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보수언론은 감탄하기 바쁘지만 G7 정상회의에 대해선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과 만남을 가진 것이다. 이 분들은 양국 정부로부터 충분한 배려를 받지 못했고 사회적으로는 혹시라도 멸시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 자신들의 피해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해왔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남은 이 분들 표현대로 ‘꿈같은 일’이었을 거다. 감히 말하건대 윤석열 대통령이 외교 안보와 관련해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히로시마의 한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공동참배한 것도 좋은 일이다. 일본 사회는 ‘세계 유일의 피폭국’을 말하면서도 정작 한국인 희생자의 문제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아왔다. 이 위령비도 처음에는 평화공원 밖에 세웠던 것을 1999년에야 간신히 이전한 것이 아닌가. 두 나라의 정상이 공동참배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가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연합뉴스)  
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 기시다 유코 여사가 21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이 공동참배의 의미를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 총리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표현이 ‘허리를 굽혀 고개를 숙였다’라고 하는 어떤 물리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고개를 숙였다’고 하는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말로 하진 않았으나 어쨌든 강제징용 피해 문제에 대한 사과를 한 것 아니겠느냐, 이런 뜻일 게다. 그리고 그런 주장이라면 그건 거의 가짜뉴스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 정부와 주류 정치인들은 원폭의 피해만 말하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는다. 원폭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군부의 무모한 전쟁 고집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다른 전쟁 같으면 이미 항복을 하고도 남았을 상황에 ‘1억 옥쇄’를 말하며 항전을 지속하니 상대인 미국 입장에선 극단적 해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가 원폭 투하로 나타난 것이다. 즉, 원폭의 피해라는 것은 당시 항복을 거부하던 일본 군부와 자신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충격을 줘야 한다고 판단한 미국 정부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대거 희생당한 것이다. 따라서 원폭 피해자를 제대로 기리는 방법은 무모한 전쟁을 일으킨 과거의 일에 대해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것이다. 일본이 그런 태도를 분명히 한다면 한국 대통령이 옆에서 그에 동조하는 그림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발언에서 그런 태도를 읽을 수는 없었다. 일본 주류 정치인들은 여전히 핵폭탄이 떨어진 것에 대해서만 말한다.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바뀐 것도 아니다. 히로시마는 정치인 기시다 후미오의 지역 기반이다. 히로시마 유권자들이 볼 때에는 총리인 자기 지역 정치인이 한국 대통령을 데려와서 자기 지역의 피해 현안에 대해 공감을 표하게 한 걸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걸 “일본 총리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두 정상이 말이 아닌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서 “그동안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 위주로 해왔다면 이번에는 실천한 것”이라고 했다. ‘말보다 실천’이라는 통념에 기댄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비겁하다. 만일 일본이 공치사에 가까운 ‘말’만을 반복해오다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결단하는 ‘행동’을 했다면 이런 평가는 정당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맥락에서의 ‘말없는 행동’은 그 진의에 대한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각자 입장에 따라 아전인수하면 그만이다. 대통령실의 설명은 아전인수를 정당화하기 위한 입장 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이 말해야 할 바를 말하지 않고 있으나 뭔가 행동을 하니 그냥 그 말을 했다 치자는 거다.

대통령은 과거사에 대한 사죄 없이 양국 관계가 한 발짝도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발언한 바 있다. 여당과 보수언론은 일본의 태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반일 선동을 그만두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그런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나 일본의 태도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일관계 개선 자체를 문제삼는 게 아니다. 일본의 태도를 지적하면서도 양국의 관계는 개선될 수 있다. 그걸 가능하게 하는 게 외교적 능력이다.

G7 정상회의의 핵심의제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경제적 조건을 무기화하는 중국에 대한 경고였고 이에 대항하기 위한 연대를 조직하자는 거였다. 그런데 이러한 공동행보를 하면서도 각국은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크(de-risk)’를 선택하는 등 중국을 겨냥한 표현의 수위를 낮추거나, 인도와 같은 ‘회색지대’에 있는 일부 참관 국가의 입장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외교적 능력’을 발휘했다.

각국의 입장을 주의깊게 보라. ‘all or nothing’의 세계관으로 일관하는 국가는 우리 뿐이다. 이런 태도는 당장의 국익에 위협이 될 뿐더러 역사적 불의를 초래할 수 있다. 지금이야 한국이 ‘과거사 반성 없는 한일관계 개선’을 밀어 붙이니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내 보수세력이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며 호응하는 듯 보일 수 있다. 트럼프 정권 당시 문재인 정권이 대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놓치지 말자는 분위기를 잡은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 상황이 영원히 유지 가능한가?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일본 내 얼마 남지 않은 양심세력을 위축시키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위령비가 평화공원 내로 이전할 수 있었던 것도 역사적 과오를 직시하고자 하는 양심적 일본인들이 도왔기 때문이다. 한국이 과거사 해소가 없어도 된다는 입장이라면 이런 분들의 목소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런 문제에 있어서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역사보다 경제가, 반성보다 실재적 힘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정당화한다. 똑같은 태도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다루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먹어도 돼, 안 죽어’란 정신으로는 인류와 핵기술의 공존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핵보유국들이 ‘핵 없는 세상’을 말하는 아이러니도 그 목적이 정당하다고 믿기로 했기 때문에 수용 가능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없는 미래는 모래성 같은 것에 불과하다. G7 정상회의는 우리가 이런 교훈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어야 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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