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하종삼 칼럼] 원고의 순서는 먼저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하 사전으로 표기함)의 목민심서 해설을 【】 안에 인용하고 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다음 제5편의 이전은 속리(束吏)·어중(馭衆 : 중인들을 이끌어감)·용인(用人)·거현(擧賢)·찰물(察物)·고공(考功)의 6조로 구분하였고, 제6편의 호전은 전정(田政)·세법(稅法)·곡부(穀簿 : 곡물의 장부)·호적(戶籍)·평부(平賦 : 균등한 세금부과)·권농(勸農)의 6조로 구분되었다.

제7편의 예전은 제사(祭祀)·빈객(賓客)·교민(敎民)·흥학(興學)·변등(辨等 : 등급의 판별)·과예(課藝)의 6조로 이루어졌고, 제8편의 병전은 첨정(簽丁)·연졸(練卒)·수병(修兵)·권무(勸武)·응변(應變 : 변란에 대응함)·어구(禦寇 : 왜구에 대한 방어)의 6조로 이루어졌다.

제9편의 형전은 청송(聽訟)·단옥(斷獄 : 중대한 범죄를 처단함)·신형(愼刑 : 형벌의 신중함)·휼수(恤囚)·금폭(禁暴 : 폭력의 엄금)·제해(除害 : 해가 되는 일을 덜어 버림)의 6조로 구성되었고, 제10편의 공전은 산림(山林)·천택(川澤)·선해(繕廨)·수성(修城)·도로(道路)·장작(匠作)의 6조로 구성되었다. 위의 여섯 편은 『경국대전』의 6전을 근거로 하여 목민관의 실천 정책을 소상하게 밝혔다. 즉, 이전은 관기숙정(官紀肅正)을 큰 전제로 아전(衙前)·군교(軍校)·문졸(門卒)의 단속을 엄중히 하고 수령의 보좌관인 좌수(座首)와 별감(別監)의 임용을 신중히 하되, 현인(賢人)의 천거는 수령의 중요한 직무이므로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 글은 이전, 호전, 예전, 병전의 각 조를 설명한 글이다.

‘사전’에서는 12편의 각 6개 조를 어느 것은 설명하고 어느 것은 설명하지 않는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추측하건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단어가 집필자의 구분 기준인 듯하다. 문제는 각 조의 제목을 설명하면서 사전적 해석을 해놓았는데 이것이 목민심서 각 조항의 내용과는 대부분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중 표지 (牧民心書)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한국학중앙연구원]
정약용의 목민심서 중 표지 (牧民心書)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 한국학중앙연구원]

앞의 글에서 봤듯이, 병객(屛客)을 ‘손님 접대’라고 풀이해 한자의 해석마저 틀린 경우가 있었고, 첨하(瞻賀 우러러 축하함)와 같이 단어 뜻은 맞지만 목민심서 내용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해설을 달아놓은 경우도 있었다.

위의 붉은글자체 부분은 대략 한자 해석은 맞으나 목민심서의 뜻과는 맞지 않는 것들이다. 먼저 이전의 어중(馭衆 : 중인들을 이끌어감)을 보자. 어중 조의 내용은 부하를 통솔하는 방안이다. 그래서 그 내용도 군교나 무인, 문졸, 관노, 시동 등이 어중의 대상이다. 여기에 ‘위엄은 청렴에서 나오고 신의는 충성에서 나오는 것이니, 충성스러우면서 청렴할 수 있다면 이에 부하를 복종시킬 수 있다’는 유명한 구절이 등장한다. 즉 어중은 수령이 부하를 통솔하는 내용, 소위 말하는 조직관리 혹은 리더십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사전’에는 ‘중인’을 이끌어감이라고 했는데 한글로만 되어 있어서 정확치는 않으나 중인(衆人)으로 보인다(혹 中人이면 반은 맞는 말이다). 다산이 목민심서 이전 중인에서 말하는 의미와는 전혀 다른 뜻이다.

곡부(穀簿 : 곡물의 장부)의 경우 한자 해석은 맞다. 그러나 다산 당시 곡물의 장부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당장 국세(國稅)만 하더라도 전세, 대동미, 삼수미 등등이 있다. 그러므로 곡물장부라고만 하면 어떤 것을 말하는지가 불분명하다. 목민심서 호전 곡부에서 말하는 곡물의 장부는 ‘환곡의 장부‘이고 모든 내용이 삼정의 문란 중 하나인 환정(還政)에 대한 내용이다.

변등(辨等 : 등급의 판별) 역시 한자의 해석은 맞다. 그러나 등급의 판별이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앞의 조가 흥학이고 뒤의 조가 과예로 되어 있다. 목민심서의 내용을 모른다면 학문의 등급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다분하다. 예전 변등은 신분제(身分制)에 대한 글이다. 여기에는 노비제를 적극 옹호하는 불편한 면도 등장한다.

어구(禦寇 : 왜구에 대한 방어)에 대한 해석은 참 묘하다랄까? 어구 바로 앞의 조 응변(應變)이 수령의 내부반란 대응에 대한 글이라면 어구는 외적의 침입에 대한 내용이다. 그래서 이 글에 등장하는 외적도 몽고, 거란, 여진, 왜 등 다양하다. 그냥 외적에 대한 방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왜구라고 특정할 이유가 없다.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 [연합뉴스 자료사진]

단옥(斷獄)을 검색하면 ‘중대한 범죄를 처단함’ 이렇게 나오는데 이것이 맞는 해석인지 모르겠다. 단옥은 한자 그대로 옥사를 결정하는 일이다. 연려실기술을 보면 당률을 채택한 고려의 형법에 보이고, 삼봉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도 등장한다. 조선시대 법률서인 대명률직해 제29권 전체가 단옥이다. 이 세 가지 모두 ‘옥사를 결정하는’ 업무와 연관된 일이지 중대 범죄를 처단한다는 의미는 없다. 언제부터 단옥이 ‘중대한 범죄를 처단함’이라는 용어로 쓰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선조들이 쓰던 용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목민심서의 단옥 또한 옥사의 판결에 대한 내용이다.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내가 한 번 살피고 생각하는데 달렸으니 어찌 밝게 살피지 않을 수 있겠으며, 또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가 중심내용이다. 그러므로 단옥은 옥사의 판결을 신중하게 하라는 의미가 강하며 뒤에 이어지는 신형(愼刑)은 형벌을 신중하게 하라는 것이다. 단옥은 판결을 신중히 할 것을, 신형은 이미 판결이 난 형벌의 시행을 신중히 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관기숙정(官紀肅正)이라는 용어 역시 출처가 불분명하다. 앞의 근민관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나 목민심서에 등장하는 말이 아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에서 사용하던 용어로 등장한다. 조선시대 관리가 지켜야 할 규율과 관련해서는 관기(官紀)가 아닌 관방(官方)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사전’에서 각 조문에 해석을 단 이유는 목민심서의 각 조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일 것이다. 단어의 단순 해석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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