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 한상혁)가 후원한 '소유겸영 규제 개선 방안' 세미나에서 민영 지상파 지분을 대기업(상호출자제한기업)에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대기업 지정 기준을 상향 조정하자는 것에서 한 발 더 나간 주장이다. 민영 지상파 소유규제 철폐는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이자 SBS 대주주 태영그룹의 현안이다.

민영 지상파 소유겸영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이들은 과거와 달리 대기업 자본의 영향력이 여론 영향력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없다면서 사후규제만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언론·시민사회 관계자들은 대기업 자본이 방송을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하며 사후규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사실상 무규제를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내놓았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30일 한국방송학회는 방통위 후원으로 '국내 방송미디어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하 소유겸영 규제 개선방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토론 패널을 제외한 발제자와 패널 5명은 지상파 소유규제를 철폐하거나 완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명박 정권의 이른바 '미디어법 날치기'로 대기업의 지상파·종편·보도PP 지분 소유가 가능해졌다. 현행 방송법 제8조는 대기업이 지상파방송사 지분을 10% 초과해 소유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방송법 시행령 제4조는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의 대기업을 소유제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호반건설(KBC 전 대주주), 삼라(UBC 대주주)에 이어 SBS 대주주 태영그룹이 올해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됐다.

발제를 맡은 이영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대기업의 지상파 소유규제 완화와 민영 방송사간 복수소유 허용을 주장했다. 이 교수는 "애초 자산규모를 기준으로 진입·소유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정말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상황인데, 과연 맞느냐.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규제수단의 적절성이 커야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면서 "(소유규제가 과거)유료방송 사업자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지상파의 공공성·공익성을 노렸다면 지금은 그런 시점이 아니다. MPP·종편·OTT가 지상파를 넘어서는 콘텐츠 투자를 하고, 글로벌 전략을 수립하는 상황에서 국내 방송시장을 지키려는 지상파의 위상을 학계에서 더 논의해야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KBS·MBC를 제외한 (민영 지상파)방송은 복수소유규제로 광역화 시도를 못하고 있다. 그 결과 SBS를 제외한 나머지 민영방송 매출이 저조한 상황"이라며 "재무적으로 건전한 방송사가 투자도 할 수 있고, 공익성·공공성을 구현할 수 있다. 민영방송은 전형적으로 시장 실패가 나타나는 분야"라고 했다. 또 이 교수는 현재 10%로 제한된 대기업의 지상파 지분 기준을 종편과 같은 30%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했다. 민영 지상파에 들어올 수 있는 대기업 집단이 늘어난다고 해도 10% 지분만으로는 시장 진입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지난달 30일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후원 '국내 방송미디어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하 소유겸영 규제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이영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발제 중이다 (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지난달 30일 열린 방송통신위원회 후원 '국내 방송미디어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하 소유겸영 규제 개선방안' 세미나에서 이영주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발제 중이다 (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경제권력의 여론 영향력 확대에 대해 이 교수는 시청점유율 규제 등 방통위의 사후규제로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교수는 "소유규제의 목적은 한 기업의 여론독과점을 우려하는 것인데, 그건 시청점유율 규제로 가능하다"면서 "사전규제에서 사후규제로 바뀌는 흐름에서 방통위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방송법이 개정됨으로써 공영방송이 더 공적책무를 잘해야 한다는 시그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청점유율 규제는 미디어법이 날치기 통과될 때 마련된 것으로, 한 방송사가 시청점유율 30%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한 방송법 조항을 말한다. 실제 30%를 초과하는 방송사가 나오기 어려워 종편 출범의 명분쌓기 도구로 도입됐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지난 2019년 감사원은 방통위원장에게 시청점유율 조사를 계속 수행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를 재검토하라는 조치사항을 통보했다. 

토론에서 소유규제 철폐 주장이 이어졌다. 김용희 동국대 교수는 "'얼마나 규제를 해야될까', 그런 건 의미가 없다. 과감하게 공영방송을 제외하고 민영에서는 소유겸염규제를 완전히 없애는 게 나쁘지 않다"며 "생존을 지속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모든 것을 허용해주어도 이들이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방통위가 주최한 관련 토론회에서도 발제자로 나서 규제 철폐를 주장한 바 있다. (관련기사▶민방 소유제한 완화 논의, 시작부터 '규제 철폐론')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공·민영 체계가 명확하게 분리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민영 지상파에 대한 규제완화가 공적가치를 훼손시킨다는 접근 방식은 가장 지양되어야 할 접근"이라며 "사전적 통제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 연구위원은 "소유규제 완화가 공적가치 강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현재 시청자와 국민이 바라는 것은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보는 것"이라며 "과연 어떤 것이 공적가치를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콘텐츠 수급비용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 연구위원은 "몇 년 전부터 민간기업도 공적책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용자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구조다. (소유규제가 완화되어도 민영 지상파가)공적가치를 신경 안 쓸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사후규제에서의 정부 역할이 훨씬 중요하다. 지상파가 공적가치를 잘 구현할 수 있도록 방통위가 도와줄 수 있는 환경조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민환 바른사회시민회의 대표는 "지금 시대에 대기업이 여론독과점을 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생태계에서 불가능하지 않나. 가장 중요한 것은 차라리 (소유규제를)다 없애버리는 것"이라며 "소유규제는 완전히 철폐해서 언론의 자유를 시장에 맡겨보는 것은 언론의 형태가 다양화되는 세상에 맞다. 괜히 20조, 30조, GDP 연동 고민하지 말고 과감하게 작은 정부의 취지에서 사전규제는 없애자"고 했다. 

한국방송협회 조성동 정책연구위원은 "소유규제와 관련한 논의는 오늘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우려사항 때문에 전면재검토를 할 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다"면서 "유료방송은 거대 통신사들이, 종편은 보수신문사들이 진입했는데 지상파만 옥죄는 규제 관성이 맞나"라고 말했다. 조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재허가, 심의제도, 과태료·과징금, 편성위원회, 시청자위원회, 보도국장 임명동의제 등 사후·자율규제가 이미 많다"면서 "경제지표도 너무 안 좋은데 (소유규제 완화를 하지 않으면) 허가사업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홍원식 동국대 교수는 "우리사회 자본영향력은 3~5대 소수 대기업들인 상황이다. 방송·미디어가 최소한의 자본안정성을 갖고 정말 우려되는 대기업 자본력에 대해 어느정도 저항성을 갖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방송을 작은 시장에만 묶어둔다면 오히려 자본의 영향력으로부터 더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국내 방송미디어 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하 소유겸영 규제 개선방안' 세미나 토론 패널 다수는 대기업의 지상파 소유제한 규제를 완화하거나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대기업의 지상파 사적이용 문제 여전"

그러나 대기업이 보도기능을 갖춘 민영 지상파를 인수해 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여전하고, 이를 사후규제로 규율하면 된다는 주장은 무규제를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이용성 민언련 정책자문특별위원장은 "대기업이 지상파를 소유했을 때 여론다양성 문제 뿐 아니라 사적이용이 더 문제가 된다"며 "지상파의 여론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고 해도 특정 대기업이 지상파를 가지고 연출할 수 있는 사적이용 보도 문제는 여전히 있다. 대기업 소유규제 논의에서 반드시 언급돼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두 차례에 걸쳐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이 소유규제 완화 시 대기업의 지상파 사적이용 가능성을 방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지난해 12월 지상파를 소유할 수 있는 대기업 기준을 GDP와 연동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어 양 의원은 지난 8월 대기업이 방송사의 보도, 프로그램 제작·편성에 부당하게 관여하지 못하도록 해야한다며 방송사가 대주주 관련 프로그램 송출 내역 등을 방통위에 제출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가로 발의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방송사는 반기마다 대주주 관련 프로그램 내역을 방통위에 제출해야 하고, 방통위는 이를 공표해야 한다. 자료제출을 거부한 방송사는 과태료 대상이다.

지난해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2020년 7개 지역민방이 재허가 조건에 따라 방통위에 제출한 '대주주 보도' 건수는 25건이었다. 하지만 이들 민방은 대주주가 등장한 보도를 누락하거나, 같은 내용의 대주주 보도를 여러번 송출한 뒤 1건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보도건수를 집계해 방통위에 자료를 제출했다. 뉴스타파의 자체 집계결과는 60건이었다.  

이 위원장은 "민영 지상파 재허가 과정에서 수많은 조건들이 제시됐고, 이후 재허가 심사에서 또 문제가 불거져 나왔고, SBS의 경우 최다액출자자 변경심사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붙여진 조건도 내부에서 문제가 있었다"면서 "사후규제를 통해 대기업 규제완화가 낳는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용성 민주언론시민연합 
이용성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자문특별위원장은 대기업이 지상파에 진입할 경우 보도기능을 갖춘 방송사를 사적이용할 우려가 여전하다고 우려했다 (한국방송학회 유튜브 중계화면 갈무리)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위원은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이번 논의가 태영그룹을 위한 규제완화 논의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김 정책위원은 "이 문제는 민영 방송의 소유규제 문제만 논의할 게 아니라 벌써 몇 년째 논의되고 있는 통합미디어법을 가져가면서, 공적영역이나 지배구조 문제를 논의하면서 풀어줘야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태영이 급하다고 하니까 태영만을 위한 법안과 시행령을 처리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정책위원은 "그게 아니라면 9개 지역민방을 대기업이 인수하게 해야하는데 그러려면 겸영을 다 풀어줘야 한다. 또 지상파이기 때문에 공적책무라든지 지배구조에서 모기업과의 계열 분리 문제 등을 살펴야 하는데, 대기업이 그렇게 해서라도 민방에 들어올 이유가 있나"라며 "지금 논의는 태영의 민원을 들어주는 것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정책위원은 "핵심은 사후규제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 시장에 진입할만한 자본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라며 "지금처럼 대기업이라고 했을 때, 태영처럼 SBS를 하나의 부속 사업으로 두는 그런 자본을 계속 허용할 것인가 혹은 미디어 분야에서 활동하는 자본에게 공적책무를 지워 들어오게 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는 '대기업의 지상파 진입에 대한 우려가 미디어환경 변화로 사라졌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고, 금융자본의 진입 등 사회적으로 완강하게 반대가 있는 부문이 있다"면서 "공영방송 섹터가 명확하게 구축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막강한 자본의 여론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심 교수는 사후규제를 통해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불가능하다. 재허가 제도의 경우에도 우리나라는 가처분의 천국"이라며 "매출을 기반으로 법을 위반해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큰 엄격한 패널티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는 한 사후규제로 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무규제 상태로 가겠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고 우려했다. 심 교수는 패널티로 연결재무제표상 매출을 기준으로 과태료·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거론했다. 인적·물적분할을 통해 분리된 방송사만을 대상으로 과태료·과징금을 부과한다면 액수가 너무 적어 사후규제로서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심 교수는 "대기업 기준을 20조 등으로 상향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지역 민방의 경우 사실상 지자체 광고로 먹고 사는데, 거의 지자체장 홍보 채널화가 된다"면서 "지자체와 대기업 자본 중 누가 더 지역에 악영향을 끼칠지 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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