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서울신문이 '과감한 규제혁신'을 일성으로 내세운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를 치켜 세웠다. 보험법 전문가인 한 후보자가 공정위 업무를 규제혁파로 이해하는 상황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서울신문은 문재인 정부 공정위가 '기업 옥죄기'로 공정한 경제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을 했다면서 한 후보자의 일성이 "반갑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신문은 김상조·조성욱 공정위원장의 공정경제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엄정대응을 주문했다. 또한 서울신문 대주주 호반건설의 김상열 전 회장(현 서울신문·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은 지난 3월 공정위로부터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당한 바 있다. 

서울신문 23일 사설  갈무리
서울신문 23일 사설 갈무리

서울신문은 23일 사설 <새 공정위원장, 규제 혁신으로 공정경쟁 보장해야>에서 지난 19일 한 후보자의 출근길 발언과 관련해 "지난 정권이 기업을 옥죄면 공정한 시장경제를 만들 수 있다고 착각했던 점을 고려하면 반가운 일성이 아닐 수 없다"고 썼다. 한 후보자는 이날 "새 정부가 추진하는 역동적 혁신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혁신하고 마음껏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반칙과 부패에 엄격한 조치와 부당한 규제 철폐는 양립이 가능하다"며 "공정위가 지난해 부과한 과징금(1조 84억원)의 93.9%에 대해 기업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공정위 제재가 절대 다수 기업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서울신문은 "기업이 승복하기 어려운 제재는 피해자 구제를 늦추고 사업 의욕을 꺾는다. (중략) '재벌 저격수'란 교수 시절 활동을 인정받아 문재인 정부 초대 공정위원장이 된 김상조 전 위원장이 기업집단국을 만들어 휘두르던 규제의 칼은 경제 회생이 지상 과제인 지금에는 맞지 않는다"면서 "시장주의자로 평가받는 한 후보자와 당국이 규제 혁신을 통해 공정경쟁의 장을 만들기 바란다"고 했다. 

그러나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 행정처분에 불복해 제기된 행정소송에서 일부승소를 포함한 공정위 승소 비율은 2021년 90.9%에 달한다. 공정위가 지난 17일 서울신문 기사 <헛스윙 제재 공정위, 6년간 1조 환급… 소송비·이자로 700억 ‘민폐’>를 통해 내놓은 해명이다. 문재인 정부 공정위의 행정처분 불복소송 승소율을 보면 ▲2017년 91% ▲2018년 92.8% ▲2019년 90.4% ▲2020년 90.3%다. 

(공정거래위원회 해명자료 <>)
공정거래위원회 설명자료 <헛스윙 제재 공정위, 6년간 1조 환급... 소송비·이자로 700억 민폐 기사 관련(서울신문 8.18)>

공정위는 "소송에서 (일부)패소한 경우 우선 과징금을 전액 환급한 후 판결취지에 부합하도록 과징금을 재산정하여 재부과하고 있다"며 "이 같은 절차에 따라 우선 환급 후 재부과한 금액은 최근 6년간 3737억 원이다. 참고로, 최근에는 환급금액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서울신문은 문재인 정부 시절 사설을 통해 공정위 수장의 규제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상조식 개혁' 시동, 고질적 갑질부터 도려내야>(2017년 6월 18일), <법만 지켜도 재벌개혁 할 수 있다는 공정위원장>(2017년 6월 19일), <공기업 갑질 정조준한 '김상조 개혁 2탄'>(2017년 6월 26일), <'갑질' 프랜차이즈 업주, 전 재산 날릴 각오해야>(2017년 7월 18일), <조성욱 공정위 후보자 "편법승계 엄정 대응" 주목한다>(2019년 9월 2일), <공정위, 호반 등 중견기업 '일감 몰아주기'도 엄단해야>(2019년 11월 24일) 등이 대표적이다. 이 시절 서울신문은 공정위를 '경제 검찰'로 받들었다. 

서울신문은 2017년 6월 19일 사설에서 "공정위의 존립 근거는 다름 아닌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이다. 공정위가 현재 45개 그룹의 내부 거래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며 "'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법 위반 행위가 발견되는 기업에 대해서는 직권조사를 통해 철저히 대응할 것'이라는 김 위원장의 경고가 단순한 엄포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김상조 효과'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고 썼다. 

이어 서울신문은 "'김상조 공정위'가 재계에 던진 화두는 다름 아닌 현행법 준수 명령"이라며 "이 단순한 화두가 재벌개혁의 시작이자 끝인 셈이다. 이제는 더이상 불법과 편법에 따른 부의 증식이 용납되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김상조 전 위원장이 기업집단국을 만들어 규제의 칼을 휘둘렀다'는 현재의 서울신문 논조와 정반대다.

공정위를 향한 서울신문의 논조 변화가 호반건설과 김상열 회장 때문 아니냐는 의심은 서울신문 안팎에서 제기돼 왔다. 김상열 회장은 친족이 지분을 보유한 계열회사 자료를 고의 누락한 혐의로 지난 3월 공정위로부터 고발당했다. 공정위는 김 회장이 2017~2020년 대기업 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면서 친족이 보유한 13개사와 사위 등 친족 2명을 누락했다. 검찰은 지난달 김 회장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호반건설은 업무 담당자의 단순 실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신문은 지난 6월 14일 기사 <얼굴도 모르는 친척도 총수 책임?… 공정위 ‘동일인’ 과잉 규제>에서 "공정위는 매년 대규모기업집단을 지정하며 소속 회사의 현황을 파악하고 관련 자료를 빠짐없이 제출할 의무를 ‘동일인’에게 부과하고 있다"며 "이에 대해 법조계, 학계의 전문가들은 동일인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관련 조항이 모호한데 형사처벌까지 두고 있는 ‘과잉 규제’의 대표적인 예라고 입을 모았다"고 썼다. 

또한 호반건설은 기업 승계를 위한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사고 있다. 김 회장의 장남 김대헌 호반건설 사장이 100% 지분을 소유한 분양대행업체는 호반건설 분양물건을 받아 급성장했고, 2018년 이 분양대행업체가 호반건설과 합병되면서 김 사장이 호반건설의 최대주주에 올랐다는 의혹이다.  

지난 6월 서울신문 기자 56명은 공동성명을 내어 "김상열 회장은 잇단 사원 면담 자리에서 곽태헌 사장과도 공감대를 이뤘다며 이른바 ‘칭찬하는 신문’을 만들자는 취지의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며 “우려스러운 언론관을 가진 사주와 경영진이 편집권에 개입해 서울신문을 ‘식물 언론’으로 전락시킬까 두렵다. 편집권의 주체는 기자가 아닌 사주라고 말하는 듯한 사장과 편집국장을 비롯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관련기사▶서울신문 기자들 "사주 이해관계 기준으로 지면 결정") 

한기정 공정위원장 후보자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보험법' 전문가로 윤석열 대통령 서울대 법대 3년 후배다. 한 후보자의 과거 연구와 활동은 상법과 보험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공정위 업무와 관련한 전문성을 갖춘 인물로 보기 어렵다는 언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겨레는 23일 기사 <한기정 후보자 논문 90% 이상 '공정위 업무와 무관'>에서 한 후보자가 1998년부터 2021년까지 작성한 전체 논문 39편 중 21편(54%)의 주제는 '보험'이었다고 보도했다. 15편은 통신·금융·민법·상법 관련이었다. 공정위 업무와 연관성이 있는 논문은 3편에 불과했다. 

공정경쟁 정책 부문에서 전문성을 의심받는 한 후보자가 재벌·대기업의 시장 독점과 불공정 행위를 조사해 처벌하는 공정위의 핵심 업무와 동떨어진 '규제 혁파'와 '기업할 자유'를 일성으로 외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한겨레 8월 23일 기사 <>
한겨레 8월 23일 기사 <한기정 후보자 논문 90% 이상 '공정위 업무와 무관'>갈무리

경향신문은 22일 사설 <규제혁파 앞세운 윤석열 공정위, 시장 질서 바로잡겠나>에서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민간 경제 주체들의 자유로운 경제 활동 보장을 전제로 하지만 미국 등 거의 모든 나라가 공정거래제도를 두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며 "시장 독점과 경제력 집중을 방지해 자본주의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공정거래법에 명시된 공정위의 사무인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 규제 ▲기업결합의 제한 및 경제력 집중의 억제 ▲부당한 공동행위 및 사업자단체의 경쟁제한행위 규제 ▲불공정거래행위와 재판매가격유지행위 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의 금지행위 규제 등을 거론하며 한 후보자 발언에 대해 "본연의 업무를 변경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23일 사설 <규제완화 깃발 든 상법 전문가가 공정위원장이라니>에서 "1981년 출범한 공정위 역사에서 그동안 위원장은 관료나 공정거래법 관련 학자들이 맡아왔는데, 한 후보자가 취임하면 공정위 핵심 업무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맡는 첫 사례가 될 것"이라며 "그가 출근길에 한 발언은 더욱 자질을 의심스럽게 한다. (중략)미국이나 유럽연합의 경쟁당국이 빅테크나 플랫폼의 규제를 강화하는 시기에 이런 인식만이 앞서 뭘 하겠다는 건지 참으로 이상한 인사가 아닐 수 없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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