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케이팝의 뜨거운 감자는 음악방송 앵콜 무대 라이브다.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1위 트로피를 수상하는 자리가 왜 논란에 오르는 걸까. 이어지는 앵콜 무대를 통해 가창력이 시험에 들기 때문이다.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 놀림거리가 되고 영상이 퍼져나가 ‘흑역사’로 남는다. 그런 사례가 이미 여럿 기록돼 있다. 앵콜 무대는 케이팝 가수들의 가창력을 평가하는 공식적 이벤트로 정착해 버린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심사위원이 돼 합격인지 낙제인지 '패스 앤 패일' 증명서를 발급한다. 이번 주에는 르세라핌이란 그룹이 낙제점을 받고 몰매를 맞는 중이다.

르세라핌 'EASY' 뮤직뱅크 1위 앵콜 무대 (유튜브 채널 KBS Kpop 갈무리)
르세라핌 'EASY' 뮤직뱅크 1위 앵콜 무대 (유튜브 채널 KBS Kpop 갈무리)

노래 부르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노래 솜씨가 평가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앵콜 라이브로 가창력을 평가하는 건 가창과 무대 환경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논란이 되는 경우는 대부분 노래 중에 음정이 나가는 케이스다. 앵콜 무대는 일반적인 무대처럼 가창을 위해 차분하게 세팅된 환경이 아니다. 도열해 있던 가수들이 움직이며 빠져나가고, 소감 멘트를 뱉다가 노래를 부르는 등 어수선한 환경이다. 반주를 정확히 듣고 키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아이돌 노래는 여러 파트로 나누어져 있어 각자 파트가 돌아오면 매번 새로 음정을 잡고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모니터링이 불리한 환경에선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도 평소보다 퍼포먼스가 내려갈 수밖에 없다.

물론, 같은 환경에서도 실수 없이 부르는 그룹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앵콜 무대 역시 자신들의 다른 무대보다는 음정과 발성이 불안정하다. 그 정도면 선방했다, 다른 그룹처럼 ‘망하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다. 설령 앵콜을 훌륭히 소화한다 해도 특별히 화제가 되지도 않고 팬이 유입되지도 않는다. 엔믹스는 탁월한 라이브 무대를 수차례 보여줬지만 그들이 라이브를 못하는 다른 그룹들보다 인기가 많은 것은 아니다. 잘 부른 라이브보다 못 부른 라이브가 훨씬 화제가 되고, 사람들은 누군가를 칭찬하기보다는 질타하기 위해 무대를 평가하는 것 같다. 앵콜은 그런 ‘깐깐한’ 잣대에 안성맞춤으로 취약하게 노출되는 환경이란 말이다.

앵콜 무대는 일위를 한 기쁨을 팬들과 나누는 세리머니로 봐야 한다. 가창력을 재는 잣대로 쓰이는 것부터가 자연스럽지 않은 현상이다. 이건 케이팝 가수들이 온전한 라이브를 소화하는 무대가 그만큼 드물다는 뜻이다. 요즘엔 유튜브를 통해 스튜디오 라이브를 선보이는 방송이 많이 생겼지만 하나같이 ‘후보정’ 믹싱을 레코딩 수준으로 걸어 놓은 무대다. 그런 방송에선 못하는 그룹이 없다. 다들 레코딩 버전과 큰 차이 없는 퀄리티를 들려준다. 실시간으로 퓨어한 라이브를 선보이는 무대는 음악방송 앵콜 정도밖에 없다. 그래서 막후의 이벤트에 불과한 무대가 가수의 실력을 전면적으로 규정하는 도착적 현상이 생긴 것이다. 한편으론 혹독한 훈련으로 이룬 퍼포먼스 퀄리티를 내세우는 케이팝의 자부심에 따른 ‘업보’이기도 할 것이다.

걸그룹 엔믹스(NMIXX)가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소피텔앰버서더호텔에서 열린 두 번째 미니앨범 '에프이쓰리오포: 브레이크'(Fe3O4: BREAK) 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걸그룹 엔믹스(NMIXX)가 1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소피텔앰버서더호텔에서 열린 두 번째 미니앨범 '에프이쓰리오포: 브레이크'(Fe3O4: BREAK) 발표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하지만 꼭 아무런 꾸밈없이 발가벗은 채 노래를 불러야 정확한 평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은 가수의 실력을 해부하려고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다. 요즘엔 믹싱 기술이 발달하면서 각종 이펙터를 보컬에 걸어 질감을 변형하는 것이 보편적인 작법이 됐고 보컬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늘어났다. 노래를 못 하는 래퍼라도 오토튠을 걸어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육성과는 다른 독특한 무드를 준다. 비록 라이브에서 그대로 재현할 순 없더라도 말이다. 노래를 잘한다 못한다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재료로 어떤 바이브와 아이디어, 정체성을 만들어 내느냐가 ‘음악성’으로 통하는 시대다. 하물며 케이팝은 노래 한 곡보다 크고 다양한 콘텐츠를 음악과 함께 묶어서 보여주는 복합 콘텐츠 산업이다. 이런 음악을 감상하면서 앵콜 무대 하나로 가치를 재단하는 건 너그럽고 공정한 시각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노래를 못 부른 가수가 뒷말을 듣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거기서 나아가 과열된 분위기로 상황을 몰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아이돌을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악플을 퍼붓고 여기저기 영상을 퍼트린다. 이런 사람 중엔 다른 그룹의 팬으로서 현재 자기 그룹에 불리한 이슈가 있거나 똑같이 가창력 논란으로 비난을 당한 '흑역사'가 있어 경쟁 그룹을 끌어내리고 자기 그룹의 허물을 덮으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케이팝의 발전을 저해하는 건 앵콜을 부르다 음정이 이탈하는 아이돌이 아니다. 뭐든지 줄을 세우는 과열된 경쟁문화와 미성숙한 마인드의 안티 팬덤이다. 그들이 문화의 성숙을 좀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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