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조현옥 수필가] 교문 안쪽으로 나란히 줄을 선 측백나무에 민트색 별사탕이 달렸습니다. 납작납작 눌러 놓은 듯한 측백나무의 연녹색 잎을 보면 상쾌한 느낌이 들며 더위를 조금은 식혀주는 듯합니다. 

그 싱그런 잎 위에 드문드문 달린 측백나무 열매는 더운 여름날의 선물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 먹던 과자 사이에 가끔 들어있는 별사탕 모양에 민트색이라 마카롱이나 마시멜로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나무가 별 모양 머리핀을 꽂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하나 따 먹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측백나무 열매 (사진=조현옥)
측백나무 열매 (사진=조현옥)

측백나무 잎은 여러 번 쪄서 말린 가루로 먹으면 각종 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고 지혈 작용도 하며 머리숱을 빽빽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또한 측백나무 향은 시신에 생기는 벌레를 죽일 수도 있어 무덤가에 심었다고 합니다. 측백나무 열매도 여러 효능이 있는데 자양 강장과 심신 안정에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찜통 같은 날씨에 거리 곳곳에 심어진 측백나무의 푸르름을 보면 떠오르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건설 골조를 생산하는 회사에 다니기 때문에 건설 현장 이곳저곳을 다닙니다. 여러 장소를 다니며 만나는 사람이나 특별한 장소의 사진을 친구들 대화방에 종종 올리는데 유명 예술가나 연예인일 때도 있습니다.

주말이면 의미 있는 유적지 방문이나 등산 소식을 전하고, 고향에 계신 어머님도 자주 찾아뵈며, 고향 사진이나 텃밭을 재배하며 푸르게 자라는 채소들의 소식을 전하기도 합니다. 집 근처인 의정부 회룡사에서 그의 어머니가 계신 군산, 직장 일로 다니는 현장 근처의 사진까지 올리니 결국 그가 얼마나 동분서주하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부지런하고 활기차게 사는 그의 모습 자체가 푸르름으로 가득해 보입니다. 

근래에는 축구심판 자격증을 따서 축구경기장에 선 모습도 종종 봅니다. 올해 대학에 들어간 아들과 함께 경기장에 있는 모습은 정말 뿌듯해 보입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푸르름이 깊어지는 나무처럼 그의 삶도 푸르름이 깊어지고 약해짐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처음 그 친구를 모임에서 만난 날이었습니다. 서로들 두런두런 이야기하느라 소란한 분위기에서 대표가 할 말이 있어 일어섰는데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박수 세 번'을 군산 사투리로 외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말투가 좀 재미있어 활발한 친구인가 보다 했습니다.

그 뒤 모임에 올 때마다 그 친구는 항상 친구들을 위한 책이나, 복권 등 작은 선물을 준비해 왔습니다. 때로는 뽑기까지 준비해와서 '꽝'을 뽑은 친구를 위한 위로의 말까지 준비하는 유머도 있었습니다. 

측백나무 (사진=조현옥)
측백나무 (사진=조현옥)

제가 수필 작가로 등단하고 '아버지의 두 바퀴 인생'이란 글이 수록된 책을 주었더니, 감동이 진하다며 친구들 대화방에 글의 일부를 올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는 다양한 글을 읽어야 한다며 제게 그의 시인 친구 시집을 주기도 하고 자신이 보는 신문의 칼럼을 보내 주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학교 근무를 시작하고는 일상에 지쳐 거의 독서를 하지 못할 때였는데, 짤막한 칼럼을 메시지로 보내 주니 바빠도 그것은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쓰던 수필은 원고지 15~20매 정도의 중수필이었는데 신문 칼럼을 읽으며 5~6매 단수필 형식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얼마 뒤 친구는 저의 글을 지인에게 소개하였고, 신문사 측에서도 제 글이 마음에 든다고 하여 지면에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일 년에 시 세 편을 꾸준히 외우며, 1년이나 논어에 나오는 문구를 꾸준히 쓰며 마음을 닦는 친구는 붓글씨 솜씨도 뛰어나 생일인 친구나 개업하는 친구에게 축하의 글을 써주기도 합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친구가 아들 둘에게 10년 동안 매일 편지를 썼다는 사실입니다. 그 말을 듣고 놀라 어떻게 그렇게 했느냐 했더니 아이들 학원을 못 보낼 상황이 생겨 미안한 마음에 쓰기 시작한 것이 10년이 되었다고 하네요. 아버지로서 공부하려는 아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하지 못해 안타까웠던 마음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인 아버지는 많이 있겠지만 자녀에게 10년이나 편지를 쓰는 아버지는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을 읽은 아들들은 잘 자랐지요. 자식은 부모의 말만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보고 자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실한 삶을 사는 친구의 모습이 자녀들에게 좋은 본보기였을 텐데, 그 마음을 담은 편지까지 썼으니 아버지의 마음을 읽고 아들들은 곧고 푸르게 자란 것 같습니다.

둘째 아들은 한때 재미있고 특이한 학교 행사로 꽤 많은 조회수를 올린 동영상의 주인공이었는데 공부도 열심히 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여 다니고 있습니다.  그가 아들들에게 쓴 편지는 다산 선생이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쓴 편지처럼 그 안에 담긴 마음과 가르침이 귀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측백나무 (사진=조현옥)
측백나무 (사진=조현옥)

어느 해인가 그는 친구들이 서로 호를 쓰면 좋겠다며 한 십여 명의 호를 지어주었습니다. 친구들의 특징을 생각해 그에 어울리는 한자로 호를 지어주었습니다. 제가 매주 산에 갈 때여서 저에게는 ‘산을 만난다’는 의미의 遇山(우산)이라는 호를 지어주고 한글로 우산(雨傘)과 소리가 같으니 사람들 마음에 우산 같은 글을 써 주라고 하더군요.

그 친구의 호는 송곡(松谷)입니다. 소나무처럼 푸르고 활기차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 씀이 있는 친구와 소나무 향이 있는 골짜기라는 호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키가 크고 올려다봐야 하는 소나무보다 길가에 나란히 서서 햇빛을 받으며 사람들 눈높이에서 친근하게 보이는 측백나무가 더 친구를 닮아 보입니다. 타원형의 단아한 몸체로 무더위 아래서도 반짝이는 황금 측백나무의 당당함도 송곡을 닮은 듯합니다.

측백나무처럼 송곡이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직장과 가정에서 피톤치드를 발하길 기원해 봅니다. 그리고 측백나무의 꽃말인 ‘견고한 우정’처럼, 우리 모임이 의미 있고 견고한 우정을 이어나가는 데 송곡 친구가 지금처럼 그 역할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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