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조현옥] 여름꽃, 가을꽃도 떠난 늦가을 교정에 반송(盤松)의 연녹색 푸르름이 줄지어 서 있다. 코로나19로 원격 수업을 하여 비었던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학생들의 활기찬 모습을 그들도 흐뭇하게 바라보는 듯하다.

반송은 위로 높이 자라는 소나무와 달리 가지가 옆으로 퍼지며 우산 모양으로 자라는데, 그 모양이 우아하고 정겨워 선비들이 좋아하는 나무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여섯 그루의 반송이 천연기념물로 정해졌다고 하는데 그중 무주 설천면의 반송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또한 나무 연구가 박경진 씨에 따르면 서울에서 개성으로 가는 길목에 커다란 반송이 있었는데, 고려 시대에 왕이 남쪽으로 행차를 하다 비를 피해 반송정(盤松亭)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한다.

교정의 반송(盤松) (사진=조현옥)

보통 학교의 교목으로는 느티나무나 은행나무 또는 하늘을 향해 높이 뻗은 소나무를 정하여 학생들이 나라의 커다란 동량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개교한 지 3년 된 이 학교는 동그랗고 온화한 모양의 반송이 교목이다. 혼자 높이 자라기보다 옆으로 손을 뻗으며 둥글게 자라는 반송은 주변 사람과 협력하며 함께 나아가는 사는 사람을 키우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반송은 귀한 사람을 보내고 맞이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한 명 한 명 귀한 학생들이 매년 들어오고 떠나가니 이 또한 학교와도 어울리는 나무라 생각된다.

늦가을이지만 따뜻한 햇살이 솔잎 사이를 환히 비추는데 키 작은 반송 잎 사이로 붉은 꽃대가 보인다. 송홧가루는 다 떨어졌지만 붉은색 꽃대가 초록 잎새 사이에 핀 작은 꽃송이 같다. 이 꽃대는 겨울이 되어서도 변함없는 푸르름을 간직한 솔잎과 함께 봄을 기다릴 것 같다.

대부분의 식물은 꽃이 필 때만큼은 꽃의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시선과 사랑을 받다가 꽃이 진 뒤의 시간은 잎이 주는 신선한 공기와 그늘, 초록 세상으로 영광이 전해진다. 그런데 송화는 평생을 꽃의 영광은 누리지 못하는 것 같다.

반송의 붉은색 꽃대 (사진=조현옥)

흙이나 볏짚, 나무와 풀이 많은 예전 세상에서 송홧가루는 자연의 일부로, 세상에 흡수되고 받아들여졌다. 자연에서 만들어진 것은 자연스럽게 자연으로 동화되었다. 하지만 요즘같이 반지르르하고 단단한 포장으로 도로도 지붕도 덮인 세상에서 봄철 송홧가루는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꽃의 시간으로 사랑받는 시간이 없이 세상을 노랗게 덮는 귀찮은 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불평을 들으며 그 생명을 전하려 바람 따라 몸부림친다. 솔향기, 솔숲, 솔바람 같은 정겨운 단어가 갖는 소나무의 영광을 위해, 벌과 나비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생명을 얻기 위해 송화는 가벼운 가루로 세상을 배회한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 강한 생명력의 위대함을 알고 있었기에 노오란 그 가루를 모아 차를 만들고 다식을 만들고 송편을 만들어 먹었다. 궁중음식의 재료로 많이 쓰였다고 하니 이 노란 가루의 품격은 궁중 옷의 자수에 쓰이는 금사 못지않았을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사람은 자연의 생명력을 받아들일 때 가장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어렸을 때 큰어머니께서 시어머니의 시어머니부터 물려받은 다식판에 노오란 다식 반죽을 넣고 다식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도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옆에서 익숙하게 반죽을 넣고 모양을 찍어내는 큰어머니의 손을 신기하게 바라만 보았다. 요즘 같으면 아이들이 함께 빵 반죽을 하고 모양도 만들지만, 그때는 엄숙한 제사 준비 과정에 감히 어린 내가 끼어보겠다고 나서지 못했다.

그렇게 송화는 그냥 꽃이 아니라 우리 음식이고 생활이었다. 송화에는 칼슘과 콜린 성분이 풍부하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며, 꿀과 함께 먹으면 위장보호가 되며 감기에도 효능이 좋다고 한다. 송화는 1년에 10일 정도만 채취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송화의 효능을 누릴 수 있다.

송화 (사진=조현옥)

화려한 꽃잎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다른 꽃들과 달리 송화는 그 은은한 향기와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그 효능을 나누어 준다. 그래서인지 이 꽃의 꽃말은 정절, 장수라고 한다. 자신의 형체를 보존하지 않고 가루가 되어 생명력을 나누어주는 송화를 보니 자식의 삶을 위해 끝없이 헌신하는 예전 어머니들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녀의 삶에는 부모님의 사랑이 형체를 알 수 없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자식이 사는 것, 자녀들의 영광이 부모님의 인생이고 삶이었다.

요즘은 이런 무조건적인 희생과 사랑을 주는 것만이 자녀를 위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한다. 자녀가 스스로 생각하고 설 수 있는 최소한의 힘만 보태주는 것이 자녀를 위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이나 삶을 희생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한다. 가치관에 따라 사랑의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부모의 자녀를 향한 사랑의 양은, 자연스러운 마음만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때때로 끔찍한 뉴스를 접할 때면 자극적인 식재료와 인공첨가제가 들어간 음식을 먹고 너덜거리는 위장처럼 사람의 마음이 닳아 없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송홧가루의 존재감 없는 가벼움과 부드러움이 위장을 감싸며 치료하듯,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치료할 약은 사람의 마음에 소리 없이 스며드는 사랑일 것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머금은 교정의 반송이 변함없이 푸르름을 머금고 겨울이 지나면 송화가 또 피고 향기로운 가루가 날릴 것이다. 수수한 송화 향기가 날릴 때는 이 땅을 덮고 있는 사람들 마음의 상처와 각박함이 한층 물러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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