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문재인 정부를 향해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하라고 했던 서울신문의 논조가 윤석열 정부에서는 달라졌다. 

서울신문 김성수 논설위원은 1일 <공공기관장 ‘버티기’가 능사?… ‘불편한 동거’ 피해는 국민 몫>, <황교안 대행, 방통위원 ‘알박기’… 文정부서 두 달 뒤에 원대복귀> 등의 기사를 통해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등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이 '버티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논설위원은 "전 정권 인사가 남은 임기까지 하겠다고 버티면 갈등이 생긴다"며 "윤석열 정부에서도 데자뷔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김 논설위원은 전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재선 의원 출신, 한 위원장은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를 지낸 진보 성향이라며 "모두 1년 남은 임기를 끝까지 할 태세다. '굳이 올 필요 없는 사람까지 다 배석시켜서 국무회의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은 있다' 윤 대통령도 불편한 심정을 감주치 않는다"고 적었다. 

서울신문 1일 오피니언 23면 갈무리

이어 김 논설위원은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김은경 전 장관의 실형이 확정되면서 '무조건 버티기'가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고 비꼬았다. 김 논설위원은 "병법에 나오는 연환계(배를 서로 묶어 연결하는 전법)처럼 전 정권 기관장들이 스크럼을 짜듯 집단대응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 김 논설위원은 대안으로 대통령과 공무원 임기를 맞추는 제도 개선을 제시했다. 

김 논설위원은 다른 기사에서 2017년 4월 황교안 대통령 직무대행이 박근혜 청와대 비서관 출신 김용수 미래창조과학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을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한 데 대해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반발했다고 보도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김 상임위원을 미래부 2차관으로 돌려보낸 데 대해 김 논설위원은 "'알박기' 인사에 맞선 '알빼기' 인사라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서울신문은 지난 10일 사설 <文 임명 국책 기관장이 尹 정부 '두뇌'라는 모순>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 10명 중 7명이 윤석열 정부와 1년 넘게 손발을 맞춰야 하는 셈"이라며 대표적 인사로 한상혁·전현희 위원장, 홍장표 KDI 원장,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을 꼽았다. 

서울신문은 "윤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는 기관장도 있다고 하지만 정책 혼선만 야기할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공공기관장은 임기가 남아 있어도 자진 사퇴하는 게 관행"이라면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산하기관 인사들에게 일괄 사표를 강요한 사건 때문에 직권남용으로 실형을 받으면서 최근엔 '버티기'가 새로운 관행처럼 번지고 있어 유감"이라고 썼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2017년 5월 13일 사설 <공공기관장 인선 '원칙과 기준'부터 세우길>에서 "새 정권이 들어서면 공공기관장들이 덩달아 바뀌는 것은 관행처럼 내려왔다"면서 "그러나 지난 정부 인사라는 이유만으로 사표를 받는 것은 온당치 않다. 잘 돌아가는 기관의 수장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은 조직의 영속성과 발전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울신문은 "물론 자질에 문제가 있거나 경영 실적이 안 좋으면 서둘러 교체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음달에 나올 공공기관 경영평가 결과가 큰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며 "이에 앞서 새 정부가 반드시 해야할 것이 있다. 공공기관장 인사의 원칙과 기준을 천명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신문 2017년 5월 13일 사설, 2008년 8월 6일 임창용 정책뉴스부장 칼럼 갈무리 
서울신문 2017년 5월 13일 사설, 2008년 8월 6일 임창용 정책뉴스부장 칼럼 갈무리 

2008년 서울신문 임창용 정책뉴스부장(현 논설위원)은 <[데스크시각] 공공기관장 임기제 지켜지려면>에서 "참여정부가 임기를 한두 달 남겨두고 무리하게 선임한 일부 기관장들의 버티기는 오히려 꼴사납다는 느낌마저 든다"면서 "하지만 이들의 개인적, 정치적 결점과 정부 인사시스템 원칙은 별개로 다루어야 할 사안이다. 만약 임기 전이라도 기관 운영 과정에서 해임될 만한 사유가 있다면 정해진 합법적 절차에 따라 교체하면 될 일"이라고 썼다. 

임 부장은 "단지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임기제 기관장들까지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는 논리는 임기제 도입 취지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잠시만 참아주면 안 될까. 1년만, 아니 몇 달만 남은 임기를 인정해주면 안 될까. ‘역대 정부에선 임기제를 훼손했지만 우리는 인사원칙을 꼭 지키겠다.’는 각오로 말이다"라고 당부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던 2018년 서울신문은 사설 <환경부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 그대로 넘길 일 아니다>에서 "그런 문건이 작성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부의 도덕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검찰의 강제수사를 촉구했다.

한상혁·전현희 위원장의 경우 법으로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한 합의제 기구의 장이라는 점에서 여타 공공기관장들과 다르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는 지난달 20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와 인터뷰에서 "방통위나 권익위는 합의제 위원회 아닌가. 위원회는 중립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하게 구성하고 임기를 둔 것인데 위원장을 '그만두라'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며 "미국에서도 합의제 위원회는 대통령이 해임할 수 없다. 미국 대법원 판결도 있다"고 말했다. 

'엽관제'가 정착된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인사권자의 정치적 관계를 기준으로 기관장 인사가 이뤄진다. 그런 미국에서도 합의제 독립기구 위원을 해임하지 못하는데, 방통위·권익위원장에 대한 여권의 사퇴 압박은 부당하다는 이 교수의 설명이다. 

윤석열 대통령(가운데),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왼쪽),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가운데),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왼쪽),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오른쪽) (사진=연합뉴스)

한편, 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자는 입법 논의를 '공공기관의 정치화가 우려된다'며 외면했다. 지난 2019년 9월 민주당 김정우 의원은 공공기관장 임기를 대통령 임기에 연동하는 공공기관운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정치적 파급효과를 고려해 차기 정부 출범일에 맞춰 2022년 5월 9일부터 시행토록 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에서 한 차례의 축조심사를 거친 뒤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됐다. 심사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정부 입장을 대변해 입법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장을 맡고 있던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현 국민의힘) 의원들은 신중론을 제기했다. 21대 국회 들어 민주당 이원욱 의원이 대통령 임기종료 시 공공기관장 임기가 만료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한 차례도 논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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