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김앤장 고문 때의 업무 이력을 '2줄'로 신고하자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이 이해충돌방지법 제도개선을 주문했다. 이를 두고 당연한 조치라는 언론 평가가 뒤따른다. 

4일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전 위원장은 최근 한 총리가 이해충돌방지법에 따라 국무조정실에 제출한 김앤장 고문 이력이 부실하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모범을 보여야 할 총리가 부실한 자료를 냈다"며 개선방안을 강구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지난 5월 2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2일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8일 KBS는 한 총리가 이해충돌방지법이 시행된 이후 '1호 신고자'로 민간 부문 업무활동 내역을 제출했다면서 김앤장 고문 업무 내용을 단 2줄로 신고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KBS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내역서는 A4 1장 분량으로 ▲국제통상환경·주요국 통상정책 연구분석 및 소속변호사 자문 ▲주요국 경제 변화에 따른 국내 경제정책 방향 분석 및 소속변호사 자문 등이 전부다. 

앞서 한 총리는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4년 4개월동안 김앤장 고문으로 활동하고 약 20억 원의 고액 고문료를 받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KBS는 한 총리가 제출한 자료는 인사청문회 당시 답변보다도 내용이 적고, 국무조정실은 별도의 보완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4일 사설 <권익위, 총리의 로펌활동 ‘2줄 신고’에 적극 대응해야>에서 "지난 5월 19일 시행된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의 1호 신고 대상자인 한 총리의 부실 제출이 고위공직자들의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권익위가 법 제정 취지에 맞게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한 총리가 이해충돌방지법을 교묘하게 빠져나가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해충돌방지법 제8조는 제출해야 할 민간업무 활동내역 중 하나로 '고문·자문 등을 한 경우 그 업무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관련 시행령은 기관명, 소재지, 활동기간, 담당 업무 등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한겨레는 "이 법의 제정 취지는 민간과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사항을 신고해 공직자들의 이해충돌을 막고 이를 공개해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자는 것"이라며 "한 총리처럼 신고해서는 이해충돌 여부를 판단조차 할 수 없는 만큼, '법대로' 신고했다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한겨레는 "다른 공직자들도 한 총리를 따를 조짐"이라며 "이 법이 제대로 장착할 수 있도록 한 총리가 먼저 모범을 보이고, 권익위는 법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구체적인 작성지침을 만들고, 기관장들은 권익위에 직접 제출하도록 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한국약제학회 회장 활동을 '학술행사 및 학회 운영 총괄'이라고 한 줄로 적어냈다고 한다. 

KBS '뉴스9' 6월 28일 보도화면
KBS '뉴스9' 6월 28일 보도화면

같은 날 한국일보는 사설 <한 총리 이해충돌 외면한 ‘2줄 신고’, 제동 건 권익위>에서 전 위원장의 질책성 주문에 대해 "‘1호 신고자’가 부적절한 행태를 보이자 주무부처로서 당연한 반응을 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일보는 "이해충돌방지법은 8년여의 진통 끝에 탄생한 성과다. 공무원 윤리강령을 위반해도 내부 징계에 그쳤지만 이젠 형사처벌을 받거나 과태료를 물게 된다"며 "그런데 윤석열 정부의 첫 총리가 법의 취지를 버젓이 무시한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중략)목차나 다름없는 두 줄을 적어 냈는데 어떻게 이해충돌 여부를 판단하라는 건지 황당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이번 사례로 제도 실효성의 문제가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민간부문 업무활동 내역서를 지난달 20일 국무조정실 이해충돌방지 담당관에게 제출했는데, 서류에 문제가 있어도 과장급 직원이 국무총리에게 보완을 요구하는 게 가능한 일이냐는 지적이다. 지난 5월 민주당 김병욱 의원은 공공기관장의 이해충돌에 관해 해당기관이 아닌 권익위에 신고·제출하도록 하는 이해충돌방지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또 한국일보는 "새 정부 출범 후 사퇴 압박을 받는 권익위원장의 ‘몽니’로 보는 시각이야말로 본질에서 벗어난 얘기"라고 강조했다. 정치권 안팎과 언론에서 여권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는 전 위원장이 이해충돌방지법 이슈를 통해 날을 세운 것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권은 지난 달부터 전 위원장,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등에 대해 '몽니', '후안무치' 등의 발언으로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가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해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 총리는 지난달 전현희·한상혁 위원장을 국무회의에서 사실상 배제한 데 이어 취임 1개월 기념 기자단 만찬에서는 홍장표 KDI(한국개발연구원) 원장에 대해 "소득주도성장 설계자가 원장에 앉아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직격했다.

한 총리의 발언은 윤석열 정부 공공기관장 물갈이의 신호탄으로 풀이되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는 59명에 이른다"며 "지난 정부의 민생파탄 주역들이 계속 공공기관을 맡겠다는 것은, 새 정부의 실패는 물론 민생을 더욱 나락에 빠트리겠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이었다면 한 총리는 직권남용 수사대상"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임기직 인사를 사퇴 압박한 게 잘못이라고 고발한 게 국민의힘이다. 소모적인 정쟁 그만하고 이참에 제도 바꾸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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