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많습니다. 매일 아침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왼손은 턱에 괴고 오른손은 클릭질하는 자세로 심드렁하게 창을 연다. 정치뉴스엔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고 곧 신경줄을 놓는다. 대체로 분노할 힘도 없이 썩소만 짓게 되기 때문이다. 경제뉴스에선 잘 알지도 못하는 숫자 놀음에 수십조 원이 요동친다. 클릭하면 그저 스스로가 얼마나 비경제적인, 그래서 2009년 대한민국 사회에선 얼마나 무식하기 짝이 없는 동물로 규정되는지 확인하는 거울 같아 슬쩍 외면한다. 물론 냉소와 외면만 있는 건 아니다. 각종 연예 뉴스에 검지가 빠르게 경련하기도 한다. 이런 뉴스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의 클릭질을 ‘낚기만’ 원할 뿐이야, 혹은 ‘…’로 끝맺는 제목을 남발하며 말초적인 궁금증을 유발하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역사의 심판을 약속했습니다. 대통령 각하, 우리는 당신을 역사의 심판에 넘깁니다. 역사는 당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말해줄 것입니다.” 프랑스의 지성 에밀 졸라가 지에 보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대목입니다. 이보다 3년 앞서,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재판의 실상을 폭로하는 ‘나는 고발한다’를 이 신문에 실었습니다. 올해 2월, 제가 몸 담고 있는 잡지에서는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를 진행했습니다. 아이디어는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가 주셨습니다. 조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진보나 보수 입장을 떠나, 공법학을 전공하는 입장으로 봤을 때도 현재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보면 법의 근본적 원칙이나 가치와 어긋난다는 생각이 든다.” 법학뿐 아닙니다. 인수위
진보블로그(http://blog.jinbo.net)의 어떤 블로거는 6·10을 가리켜 ‘이명박의 선물’이란 표현을 썼다. 아이러니하지만, 진보블로그의 감수성에서 가장 멀리 있을 조선일보의 강찬석 주필 역시 비슷하게 봤다. 그는 “6월 10일 서울광장을 메운 군중의 절반은 이명박 정권 1년4개월 세월이 불러 모았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썼다. 언론연대 양문석 사무총장은 이번 선물의 의미, 그러니까 ‘정세균 대표를 향한 시민들의 환호’를 민주당 지도부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어찌되었건 그렇게 6·10은 끝났다. 그러곤 곧장 아주 재미난 그러나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상황들이 생각보다 훨씬 거칠고 매섭게 전개되고 있다.올해 6·10은 광장이 열릴 것이냐 말 것이냐가 다른 모든 이슈를 압도하는
대전의 한 초등학교 야구부에서 구타사건이 발생했다. 야구부 코치가 어린 아이들을 야구방망이로 때린 것이었다. 때린 이유는 간단했다. 전지훈련 가서 했던 연습시합에서 ‘졌기’ 때문이었다. 그 벌로 선수들은 그날 밤 숙소 밖으로 불려나와 주전선수는 20대, 비(非)주전선수는 일곱 대 가량을 맞았다고 한다. 그 중 여섯 명이 학교를 그만두고 전학을 가야 했고, 두 명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하는데, 이제 갓 12살 쯤 된 초등학생들을 야구방망이로 이렇게 무자비하게 때린 사람. 그 정신상태가 궁금할 뿐이다. 언뜻 보면, 이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때린 ‘지도자’이다. 물론, 맞다. 일단은 때린 놈이 1차 책임을 가진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운동부 내부에서의 지도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침묵하
최근 노사협의회를 통해서 알려진 사내 연봉계약직 420여명에 대한 회사의 방침이 큰 파문을 낳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보호법의 적용 시점을 맞아 KBS는 법의 기본 취지인 ‘2년 이상 근로시 정규직으로의 전환의무’를 피하고자 계약해지와 자회사 이관을 7월1일부터 시행하고자 하는 것이다.들리는 바로는 고령자보호법과 특수전문직 조항에 따라 법적용에서 배제되는 30명에 대해서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고 특수영상 및 수신서비스, 영상편집, 시설관리 등에 종사하는 120명에 대해서는 자회사 이관, 나머지 270여명은 계약해지할 방침이라 한다.이러한 방침이 회사의 의지대로 시행된다면 짧게는 4~5년, 길게는 십수년 이상을 KBS에서 근무한 이들 중 다수는 졸지에 일터에서 쫓겨나 생
“이명박 대통령은 독선적인 국정운영의 잘못을 인정하라”, “청와대의 일방통행이 민심이반의 핵심이다.”, “청와대에서 당을 바보로 알고 있다.” “정당정치와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비민주적 행태를 개선하라.”, “기득권만 보호하려 말고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라.”, “국민이 헌법에 보장된 저항권을 행사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이 말, 말, 말은 야당이나 시민·사회단체가 아닌 지난 4일 한나라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토해낸 말이다. 권부를 겨냥한 격한 말이 귀를 의심케 한다. 국민의 대표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납작 엎드려 청와대 눈치나 보는 그들이었기 하는 말이다. 작심한 듯한 역린(逆鱗)의 소리가 시국의 중차대성을 말하고도 남는다. 이명박 정부에는 국민이 없다. 오직 독선과 독주만 있
3주 전이다. 별세한 고 여운계씨의 기사를 쓰기 위해 토요일 아침 단잠을 깼다. 1976년 일간지의 한 귀퉁이에서 ‘할머니 역할이 잘 어울리는 배우 3위 여운계’라는 대목을 찾았다. 한 인터뷰에서 “나는 20대때부터 할머니가 잘 어울린다는 얘길 들었다”는 문구도 오렸다.우리 방송 역사의 산증인으로 현역배우인 그가 남긴 족적은 깊고 컸다. 기획사의 철저한 관리 속에 배우가 돼 가는 현재와는 달리 그가 맡은 역할은 하나같이 독특한 위치를 점했다. 그가 택한 마지막 드라마에서의 역할은 할머니였다(한국방송 ). 5년차 겨우 걸음마 뗀 기자가 얼굴을 내밀며 칼럼을 써보겠다고 용을 쓰던 그날, 무심코 켜 둔 라디오에서 속보가 타전됐다. ‘노, 사망, 보입니다’정도가 들렸다. 내 귀는 인터넷으로 관람 중
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기라는 유언을 남기고 우리곁을 떠나셨다. 서슬퍼런 MB정권의 공권력을 앞세운 먼지떨이식 보복 수사와 조중동의 하이에나식 물어뜯기 보도 앞에서 노 전 대통령은 너무나 미약한 존재였다. 사랑하는 가족과 자신을 도와준 후원인들을 일방적으로 수사하고 구속하는 엄혹한 정치적 탄압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구차한 변명 대신 온 몸을 던져 항거했다.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미안해 하지도 말고,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몇 마디 말과 함께….MB정권 집권 이래 민주주의는 후퇴 정도가 아니라 초고속으로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엄연히 헌법에 보장되어 있는 집회, 결사 및 표현의 자유가 무력을 앞세운 공권력에 의해 원천 봉쇄당하고 있다. 민중의 지팡이 경찰은
한국정부가 PSI에 참여한다고 공표했을 때, 그 분의 표정을 보고 싶었다.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욕먹을 각오가 되어있다던 그 분, 작가 황석영이다. 오빠가 돌아왔다. 세간의 숱한 변절논란에 이은 정부의 전격적인 PSI 참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의 반등을 타고 슬그머니 돌아왔다. 아니, 사실 ‘돌아왔다’는 표현은 맞춤한 말이 아니다. 그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변절논란’이 탐탁지 않았던 것은 수위의 높낮이 차원이 아니라 그 말이 핵심을 비껴나갔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이명박과 중앙아시아의 초원을 누비기 전에도, ‘잠 못 이루는 번민의 나날’이 계속될 정도로 욕을 먹고 한겨레 ‘왜냐면’을 통해 입장을 밝힌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그가 ‘왜냐면’에 글을 쓴 것이
직업이 기자인 데다 시사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전국에 아는 사람이 꽤 된다. 강의나 토론회, 또는 각종 회의를 통해 그런 분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서울사람들만이 가진 독특한 말버릇을 알게 됐다.서울사람이 마산에 와 있을 때 휴대전화를 받으면 한결같이 “나 지금 지방에 내려와 있거든”이라고 한다. 광주나 부산이나 대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여기 마산인데”라고 해도 될 것을 굳이 ‘지방’에 ‘내려’와 있다고 한다. 반면 마산이나 광주·부산·대전사람은 그런 말을 쓰지 않는다. 나 역시 다른 지역에서 전화를 받으면 “여기 서울인데” 또는 “여기 경북 문경이거든”이라고 정확히 지명을 댄다.물론 ‘내려간다’는 말은 위도상의 개념으로 이해해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서울사람들이 김포나
6월 5일에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측 미디어위원들은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측 위원들을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자기들만의 ‘간담회’를 강행하였다. 4일 여야 측 위원들은 5일 전체회의 개최에 대한 합의 없이 논란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4일 밤 11시 경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측 위원들은 갑작스레 5일 전체회의를 개최한다는 메일을 전달하였고, 민주당과 창조한국당 측 위원들 없이 일방적으로 회의를 진행하였다. 그러면서 야당 측 위원들에게는 미디어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비난을 하였다. 그런데 간담회가 미디어위 회의가 아님을 차치하고라도, 그들이 어렵게(?) 모여서 논의한 내용 자체도 참으로 실망스럽다. 미디어위 위원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이들이 미디어위 회의라고 하면서 결정한 내용
1901년 9월 6일 버펄로의 팬 아메리카 박람회장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모여든 군중과 악수를 나누던 공화당 출신의 미국 제25대 대통령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가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그리고 8일 뒤, 대통령은 쉰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무정부주의자를 자처한 암살범은 한 달 뒤 전기의자에서 처형당했다.누가 대통령을 죽게 했는가? 즉각적인 비난의 화살이 의 사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에게 쏟아졌다. 어느 신문 사설에서 대통령을 ‘미국에서 가장 증오받고 있는 생물’로 묘사한 허스트는 또 다른 사설에서는 “형편없는 제도와 형편없는 사람을 죽여버림으로써 제거할 수 있다면, 반드시 그들을 죽여야 한다”며 사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정치의 중심에 서고 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연일 '우파' '좌파' 용어를 그 부서의 장차관들이 쏟아내고 있다. 처음에는 코드 인사 운위하더니 이젠 그 정도론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예의 전가의 보도인 색깔론을 들먹이며 이쪽저쪽을 쑤시고 다닌다. 무대 위 연기를 대하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쇼'를 지켜본 사람들은 숨을 죽이다 이제 한 두 마디 보태기 시작한다. 기가 막혀 닫아두었던 말문을 이제야 조금씩 트기 시작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의 움직임을 두고 '쇼'라 낮추어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도대체 새 정부 출범 2년이 되도록 문화정책 비전하나 내 놓지 않은 채 정치행각만 벌이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정치적 전위대 노릇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규정짓는
이명박의 ‘실용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훨씬 지났다.현 정부의 여성정책은 어느 수준일까? 현 정부의 여성정책을 살펴보면 사실, 수준을 운운하기에도 민망할 정도이다.대선후보 당시 “애 낳아봐야 보육 얘기할 자격 있다”, “얼굴 덜 예쁜 마사지 걸들이 서비스도 좋고…” 등 이외에도 ‘장애아 낙태’와 ‘관기 발언’ 등을 서슴없이 했던 이명박 후보를 보면서 과연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 성평등에 대한 개념이 존재하는지 강한 의문이 들었었다. 그러나 이 의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할 수 있었다. 인수위원회를 구성하면서부터 여성가족부의 존치 여부를 거론하더니 결국은 주요기능을 타 부처로 넘겨주고 2007년 1조1378억에서 539억으로 예산을 95.5%나 축소시켜 직원이 100명인 초미니 부서로 만들어 버린
망측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차라리 흥미롭다고 해야 할까. 경찰이 ‘노사모’를 범좌파 단체로 분류했다고 한다. 더불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이 있던 29일에는 대규모 연행 계획을 수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보편타당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는 문제들이 잦아진다. 인식이 배반당하는 경우가 다반사가 되는 요즘 자주 떠올리게 되는 개념이 ‘문화적 상대주의’(Cultural Relativism)이다. 제국주의의 열망이 지구를 달구던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역사적 기원을 갖는 개념이다. 지구에 대한 면밀한 비교를 목적으로 하는 인류학이 태동한 때도 그 무렵이다. 말하자면, 문화적 상대주의는 지도에 선을 그어 열강들 마음대로 나라를 나눠 갖던 시절에 기인하는 개념인 셈이다. 대상을 가리지
정치적 신체의 재현1957년 에른스트 칸토로비치(Ernst Kantorowicz)는 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왕이 자연적 신체(body natural)와 정치적 신체(body politic)라는 두 가지 신체를 가진다고 말한다. 자연적 신체는 온갖 결함과 노화를 겪고 시간이 흐른 후에는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신체인 반면, 정치적 신체는 ‘정치형태와 정부를 구성하는, 보이거나 조정될 수 없는 신체’이다. 정치적 신체는 자연인으로서 왕의 신체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무능력에 의해서도 좌절되거나 무가치해질 수 없다. 정치적 신체는 자연적 신체를 부인함으로써 자신을 성립시킨다. 때문에 정치적 신체는 물리적 현존(presentation)이
한나라당이 집권한다고 민주주의가 어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실제로 그렇게들 말했었다. 오히려 자연스레 정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수준에 민주주의가 도달했음에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사람도 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젠장, 그런데 공안정국이 도래했다.반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이민을 가야겠다는 사람도 주변에 여럿 있었다. 대개 서울사람들이었다. 이명박 시정 4년 동안 유독 못 볼 꼴이 많았다. 긴 이야기가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시민의 필요에 따라 쓰임새가 결정되던 보자기 광장이었던 시청 광장은 파란 잔디가 깔린 시장님의 정원으로 ‘개발’되었고, 청계천 복원은 토목시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아닌 ‘신개발주의’의 서막을 여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버스와 중앙차선의 색깔과 같은 비본질적 시각물들이 대중
“조○○라고요? 낯익은 이름인데….” 변호사는 서류를 뒤적였습니다. ‘예감’은 맞았습니다. 사진 속 얼굴이 자꾸 ‘기시감’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건 괜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변호사도 그렇고, 저도 조 경감을 법정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 2일 방영된 을 본 제 처가 퇴근한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사무라이조라고 알아?”, “어 그거 내가 기사도 썼는데…. 남편이 쓴 기사도 안보냐?” 뒤늦게 PD수첩 동영상을 봤습니다. ‘아고라’를 열심히 ‘눈팅’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었을 정보이지만, 역시 영상의 위력은 남달랐습니다. 지방출장 때문에 저는 ‘인터넷세상’과 이틀 동안 단절되어 있었습니다만 인터넷은 2009년 한국의 민주주의가 처한 상황에 대한 탄식과 분노로 들끓고 있습니다. 김재
경찰이 4일 오전 서울광장 봉쇄를 풀었다. 지난달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전경버스 32대가 광장을 봉쇄한 뒤, 노제가 있던 지난 29일을 제외하면 12일 만에 광장이 다시 열린 셈이다. 경찰은 봉쇄를 푼 이유에 대해 “서울시가 서울광장에서 예정된 각종 행사를 이유로 차벽 철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한 경찰 관계자는 “여론에 못 이겨 서울광장 봉쇄를 푼 것은 아니고, 그동안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막았다가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해제할 시점이 됐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서울광장을 봉쇄할 당시 ‘광장이 정치적 집회나 폭력시위 장소로 변질될 우려가 있고 교통 흐름 문제까지 고려한다’는 자체 판단을 봉쇄의 근거로 내세웠었다. 이후 시민들이 ‘자체 판단’이라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