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가 정치의 중심에 서고 있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연일 '우파' '좌파' 용어를 그 부서의 장차관들이 쏟아내고 있다. 처음에는 코드 인사 운위하더니 이젠 그 정도론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예의 전가의 보도인 색깔론을 들먹이며 이쪽저쪽을 쑤시고 다닌다. 무대 위 연기를 대하듯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문화체육관광부의 '쇼'를 지켜본 사람들은 숨을 죽이다 이제 한 두 마디 보태기 시작한다. 기가 막혀 닫아두었던 말문을 이제야 조금씩 트기 시작한다. 문화체육관광부 장차관의 움직임을 두고 '쇼'라 낮추어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도대체 새 정부 출범 2년이 되도록 문화정책 비전하나 내 놓지 않은 채 정치행각만 벌이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정치적 전위대 노릇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규정짓는 것 같아 어색하다는 느낌, 딱하다는 느낌을 떨치기가 힘들다.

▲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스
이명박 정부의 문화체육관광부가 어떤 정책을 펼까 궁금하게 여기던 이들이 많았다. 궁금증에 비하면 막상 챙겨 들여다 볼만한 내용을 내놓지는 않았다. 문화정책 기조들도 앞선 두 정부가 내세웠던 문화산업육성, 문화시장주의가 강화되는 정도에 그쳤다. 더 적극적으로 시장주의를 내세우며 탈규제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기도 했다. 다만 민간으로 이양되었던 권한을 다시 공권력으로 회복시키는 어색한 모습이기는 했다. 즉 권위적으로 '문화판' 지형을 새롭게 정리하고 그를 기반으로 문화시장주의를 완성하는 기조를 가졌던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이명박 정부의 문화정책 시작을 보면서 <권위적 시장주의>가 될 거라 예상했었다. 2009년의 업무보고에서 발표한 3대 중점과제도 주로 경제난과 관련해 정부 방침을 뒷받침하는 사회, 경제적 가치의 확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경제난을 극복하는 데는 시장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며 그를 실현하기 위해 비상한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식의 <권위적 시장주의>를 문화정책도 따르고 있었다.

<권위적 시장주의> 예측을 두고 큰 반대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측 자체가 상당한 근거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 조건이었다. 그런 점에서 '시장주의'는 필연에 가깝다. 이미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시절에도 문화산업의 육성, 문화시장주의를 강하게 외쳐왔던 터라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읽어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예측의 유효성은 머지 않아 심한 타격을 받게 된다. 깜짝 놀랄 정도의 정책 선회가 벌어진 탓이다. 2009년에 들어서면서 문화정책에서 전혀 새로운 색깔들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권위적 시장주의>의 외피가 조금씩 모습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문화산업을 일으켜 경제발전에 이바지하자는 문화산업주의, 문화시장주의와도 성격을 달리하는 정책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2009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직제를 개편 발표한다. 직제 개편을 통해 제 1차관 소속의 '미디어 정책국'이 제 2차관 소속으로 이동하였다. 제 2차관이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책임을 맡고, 미디어 정책도 수행하게 된 셈이다. 미디어 정책을 국정홍보라는 테두리 내에서 펼치고, 주로 정부의 경제 살리기 홍보에 주력케 하겠다는 의지로 읽어낼 수 있다. 제 1차관 산하의 관광산업국 내에 <녹색관광과>와 <새만금 개발팀>을 신설한 사실도 주목을 끈다. 이 또한 실질적인 운하건설로 알려지고 있는 4대강 정비계획을 전위적으로 지원하고, 홍보하려는 심산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3주 후 정부는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임명 발표한다. 제 2차관이던 신재민 씨를 제 1차관으로, 통계청장이던 김대기 씨를 제 2차관에 임명한다는 발표였다. 제 1차관은 기획조정실, 문화콘텐츠산업실, 문화예술국, 관광산업국, 도서관정보정책기획단, 국립대한민국관 건립추진단을 관장한다. 제 2차관은 종무실, 체육국, 미디어정책국, 홍보지원국,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을 총괄한다. 경제 관료인 통계청장을 국정홍보책임을 맡게 한 일, 언론정책을 담당하게 한 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론을 제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정홍보와 이어보도록 한 조처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같은 맥락에서 '4대강 정비사업' '새만금사업'의 보조 사업을 국정홍보를 담당하던 제 2차관이 제 1차관으로 옮겨서 맡게 한 점 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정책 = 전제적 국정홍보책

이명박 정부의 주력 사업인 '4대강 정비사업', 건설, 개발사업과 문화정책이 연관을 맺고, 그를 경제 살리기 정책이라며 국정홍보를 하며, 그 동안 착착 이뤄져 왔던 미디어 지형 바꾸기(2009년 6월의 미디어관련법 제, 개정)와 연관 짓는 준비에 착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외부 정책을 위한 수단으로 문화정책을 동원하고 있는 셈이다. 동원을 위한 내부 조직 정비를 마치자 문화정책 기조의 급선회를 시도하고 있다. 정부 출범과 함께 권위적 시장주의라는 문화정책 기조를 드러냈으나 2년차에 들어와서는 억압적으로 정비될 미디어 지형을 활용해 권위적 국정홍보활동을 하는 것으로 그 기조를 바꾸어가고 있다.

대중들의 신임을 얻지 못한 국정 실정을 감안하면 국정홍보활동은 설득적이거나 숙의적인 의제를 던지는 모습을 띠진 않을 듯하다. 오히려 일방적이고 공세적인 물량 공세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참여정부 시절의 국정홍보처를 폐지하고 국정홍보업무를 축소시켰지만 집권 1년이 지나면서 국정홍보부처의 크기나 예산규모를 키우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2008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정부가 2009년 국정홍보 예산을 전년 대비 72억원 증액, 64명의 직원 증원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권위적 시장주의라는 정부 기조를 홍보하거나 뒷받침할 정부 내 전위 조직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셈이다.

차관인사를 보면서 문화 정책이 과연 전문성을 가진 영역인지 조차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정책과 관련해 충분히 전문성 검증을 받지 않은 장차관 3인이 문화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지휘 아래 부서 조직 개편이 벌어졌다. 동시에 문화정책 대상 기관, 위원회, (한국예술종합) 학교 등에서 인사파열음이 났다. 과거의 관행, 행정절차 조차도 지키지 않은 일방적 정책 수행이었다. 새로운 정부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척결의 대상으로 내몰았다. 자신들이 만든 체제로의 편입을 꾀하는 일방적 정책 수행으로 일관해왔다. 경제관료, 홍보관료, 전위관료 등을 앞세운 채 비민주적 정책 수행을 해가면서 그를 문화정책이라는 부르는 듯하다. 그런 탓에 이명박 정부 2 년차부터의 문화정책을 전제적(專制的) 국정홍보책으로 부르는 것 외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정책 기조가 그렇게 잡히면서 사실상 문화체육관광부가 해낼 수 있는 구체적 문화정책들이 들어설 자리는 줄어들었다. 부서 내부 간 유기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국정홍보라는 기조에는 적절할 수 있으나 대중의 일상적 삶에 다가가기엔 부족한 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2008년 9월 3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부서 중장기 정책비전을 발표했다. 취임 후 6개월 동안 준비한 내용이라 했다. 문화정책 기조 하나 세우질 못한다는 비판을 의식한 발표였다.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국정 철학에 바탕을 두었다고 했다. 실행할 수 있는 내용들만 추렸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정책은 발표 후 4 여 개월에 걸쳐 발표할 예정이라고 했다 (물론 그의 말은 허언(虛言)에 그치고 말았다).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여의도통신
유 장관은 그날이 정책비전을 발표하는 시작이라며 새 정부의 문화정책 기조를 알리는데 주로 시간을 할애했다. 새 정부 문화정책은 “품격 있는 문화국가, 대한민국”를 목표로 설정했다. 목표 달성을 위한 몇 가지 기본원칙도 제시했다. 1) 문화, 예술 그 자체의 완성도와 가치 제고 2) 한글 등 전통문화의 현대적 가치를 찾아 산업에 적용 3) 인문학 바탕으로 소프트파워 강화 4) 선택과 집중 통해 최고의 경쟁력 갖도록 지원 5) 사회적 약자의 문화향유 기회확대 6) 문화가 국가정책의 전반에 스며들게 7) 정부와 민간, 자치단체의 ‘실용적 역할 분담’ 8) 녹색성장을 위해 녹색생활문화 기반조성 9) 우리 콘텐츠 해외에서도 권리 보장되도록 10)문 밖을 나서면 15분 안에 스포츠를 등이다.

2008년 유인촌 장관의 발표를 이렇게 길게 언급한 데는 이유가 있다. 문화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인사들이 애초부터 문화정책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준비가 되지 않은 집권 1년 동안 정부의 여타 정책을 흉내 내며 권위적 시장주의 행태를 보여주다, 2 년 차 부터는 자신들이 준비한 전제적 국정홍보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치 일정, 시장 확대정책 등에 맞추어 문화정책은 급격히 선회했고, 마치 우발적이라고 부를 만큼의 파격적 비 문화정책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날 유인촌 장관의 발표 장면으로 다시 돌아 가보자. 여러 정책의 준비가 그렇듯이 무릇 정책 수립에는 연역과 귀납적 방법을 동시에 동원한다. 연역적 방법은 정책 목표, 기조를 우선하고, 그런 다음 각 국실이 행할 구체적 행동 계획을 내놓는 방식을 말한다. 유장관은 발표 중에 국정 철학에다 여러 번 방점을 찍었다. 연역적 방식이 강하게 작동한 목표와 기조 수립이 아니었을까 짐작되는 대목이다. 연역적 색깔을 강하게 띤 채 수립한 문화정책은 하향식(top-down) 슬로건을 담고, 국실별 실천 계획을 미리 획정하는 전제를 행하게 된다. 물론 연역적이고 하향식 슬로건이라는 비판을 염두에 둔 탓인지 해낼 수 있는 것들만을 담기로 했다는 귀납적 변명도 기조 발표에 담았다. 각 부처의 역량이나 전통을 담아 귀납적으로 정책 목표와 기조를 정했다는 말이겠다. 그런데 2008년에 내놓은 중장기 계획이 2009년의 업무보고, 직제개편에 반영된 바가 별로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전적인 계획 수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케 한다.

그러나 힘들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 선회를 바라보며 어떤 이들은 파시즘적 프로파갠더를 떠올린다고 말한다. 권위적 시장주의 정부를 뒷 받침하기 위해 미디어를 장악하고, 그 내용을 국정홍보로 채우는 일을 문화체육관광부가 기획하고 있다며 혐의를 씌우는 일에 다름 아니다. 문화산업을 육성하는 정책 중 주요 부분인 미디어 산업 육성책이 방송통신위원회로 넘어가 있음을 보면서 그런 쪽으로 역할 분담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의심되는 것도 사실이다. 항간의 여러 의혹들이 전혀 황당하지만은 않다는 말이다.

이명박 정부, 문화체육관광부의 큰 프로젝트가 큰 걸림돌 없이 잘 진행되어 왔다. 미디어 내부의 저항이 만만찮았으나 8부 능선쯤 왔으니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임무완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제적 국정홍보 프로젝트가 놓치는 몇 가지가 있다. 결코 성공하기 힘든 걸림돌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 첫째는 낡은 수법이란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 최면에 걸려들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구린 수법'이라며 반감을 더 증대시킬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둘째, 글로벌한 면에서 보더라도 권위적 시장주의와 전제적 국정홍보책은 고독한 작업이다. 신자유주의를 점차 피해가거나 수정해가는 마당에 한국만 그런 작업을 하는 일은 공명을 불러들이지 못하고,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대중의 호응은 더욱 난망하다. 셋째, 대중이 내놓는 저항적 담론들의 힘도 만만찮아 일방적인 게임은 되지 않을 것이다. 완벽한 미디어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온갖 방식을 통해 대중들의 저항담론들이 머리를 들이밀 것은 뻔하다. 과연 미디어 통제를 통한 담론이 헤게모니를 가질 수 있을까 우려되는 부분이다.

연일 시국선언에 정치적 선언들이 벌어진다.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한 까닭이다. 그런데도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전제적 수법들을 발휘하거나 준비한다면 그건 미련한 짓이다. 대중을 편하게 해주지 않는 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은 불가능하다. 대중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그 수많은 문화적 기획들을 두고 불편하게 할 일만 찾아가는 모습에서 절망까지 느낀다. 더 늦추진 말자. 더 이상 굽은 길로 가지도 말자. 그것은 모두의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다. 오갈 데 없어 헤매는 대중의 쓸쓸한 마음을 풍성하게 해줄 그런 기획을 문화정책으로 내놓았으면 좋겠다. 더 빨리 한번 더 선회하는 지혜를 발휘하길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