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블로그(http://blog.jinbo.net)의 어떤 블로거는 6·10을 가리켜 ‘이명박의 선물’이란 표현을 썼다. 아이러니하지만, 진보블로그의 감수성에서 가장 멀리 있을 조선일보의 강찬석 주필 역시 비슷하게 봤다. 그는 “6월 10일 서울광장을 메운 군중의 절반은 이명박 정권 1년4개월 세월이 불러 모았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썼다. 언론연대 양문석 사무총장은 이번 선물의 의미, 그러니까 ‘정세균 대표를 향한 시민들의 환호’를 민주당 지도부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어찌되었건 그렇게 6·10은 끝났다. 그러곤 곧장 아주 재미난 그러나 충분히 예측 가능했던 상황들이 생각보다 훨씬 거칠고 매섭게 전개되고 있다.

올해 6·10은 광장이 열릴 것이냐 말 것이냐가 다른 모든 이슈를 압도하는 특수한(!) 상황이었다. 참여정부 때까지만 해도 6·10 즈음이 되면, 민주주의가 ‘기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냐가 쟁점이 되곤 했는데, 올해는 그 알량한 ‘기념’조차 할 수 있을 것이냐 없을 것이냐 하는 문제로 쟁점이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광장이 쟁취하는 대상이 되는 사회에선 ‘독재 타도’ 구호가 설득력을 얻는다. 올해 광장의 메인 구호는 ‘독재 타도’였다.

▲ ⓒ 오마이뉴스 유성호
민주당은 1박2일 노숙을 통해 광장을 쟁취하는 이미지를 남기며, 실로 오랜만에 광장의 주체로 다시 설 수 있었다. 광장의 개폐로 쟁점이 좁혀진 상황에서, 민주당의 국회의원 배지는 위력을 발휘했다. 민주당이 광장을 열어주니, 이에 호응하는 시민사회의 화답 역시 화끈했다. 6·10을 정리했던 마지막 구호가 ‘2012년 민주정권을’이었던 점은 매우 상징적이다.

그 마지막 구호 자체가 광장의 정서에서 이탈되어 있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 순간 민주당 의원들의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아마도 그 한마디에 지난 하룻밤의 고단함은 싹 가셨을 테다. 민주당에겐 대선 패배 이후 가장 황홀한 순간이었을 테고, 민주당의 옆 자리에 있던 야 3당에겐 적막한 순간이었을 테다.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이기고, 산 이명박은 다시 죽었던 민주당을 살려내는 극단적 순환이다.

MB에 이르러 광장을 쟁취해야 했던 역사 속 어느 날이 오늘의 현실이 되었다. 표면적으로 그 광장은 민주당이 연 것이지만, 광장의 구름 인파는 강찬석 주필의 지적처럼 이명박 정권이 모아 준 것이다. 장담하건대, 퇴행이 현실을 지배하게 되면 역사는 거짓말처럼 반복된다. 올해 6·10은 2012년 대선이 이미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복원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회로에 들어섰음을 보여줬다. 정국의 관건은 도로 민주당에게 넘어갔다. 벌써 한나라당은 ‘광장의 굿판’을 때려 치고 등원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MB와 한나라당이 ‘광장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면, 민주당에겐 ‘조중동 트라우마’가 있다. 한나라당을 이기더라도 끝내 조중동은 꺾을 순 없다는 불안이 민주당의 영혼에 잠재되어 있다. 짐짓 근엄한 척 여론을 감안한다며 투항하곤 했던 민주당의 여론은 조중동의 논조를 감안하던 패배였다. 2012년에 이르는 가장 근거리에는 미디어법이 기다리는 6월 국회가 있다. 미디어법은 곧 조중동의 밥그릇 문제이다. 민주당이 이를 어찌 넘는가에 2012년이 황홀함이 우선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광장에서, 오랜만에 선배를 만났다.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낙향했다가 1년 만에 서울에 왔노라고, 도저히 그냥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1년 만이라고 하기엔 너무 담담했다. 그는 사람은 많은데, 할일은 없노라고 했다. 그의 담담한 목소리는 광장의 분위기를 날카롭게 쨌다. 앞서 민주당의 황홀함에 대해 말하긴 했지만, 나를 비롯하여 그 정치적 기다림의 왼편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이의 수가 적지 않고, 무엇보다도 10만의 인파가 모여 3년6개월 후를 기약한다는 것은 너무 매가리가 없는 짓이긴 하다. 아니나 다를까, 뭐가 그리 급했는지 집회가 끝나자마자 민주당은 후다닥 광장을 떴고, 사람들은 술집으로 흩어졌다.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을 방패로 찍은 것은 그로부터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한 번 광장을 열었으니 됐다고 생각한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꼭 뭐에 홀린 것 같았다. 그건 서서히 촛불이 사그라지던 작년 어느 여름밤 집으로 돌아간 기억이기도 했다.

▲ 6·10 민주항쟁 22주년을 맞은 10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열린 '6월항쟁 계승·민주회복을 위한 범국민대회'에서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그렇다고 그때마냥 정체 모를 무기력감에 들떴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기엔 우리가 살아온 시간이 너무 시퍼렇지 않은가. 우린 어느새 1년을 꾸역꾸역 살아냈다. 작년 여름 농담처럼 ‘미래4년 고난’을 어쩔 것이냐고 했었는데, 이제 MB의 임기는 3년이 조금 넘게 남았을 뿐이다. 말년 병장처럼 처박힐 레임덕의 시간을 빼면 실질 시간은 그보다 훨씬 짧게 남았을 뿐이다. 우린 서로 지치지 않고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거다.

물론, 그 사이 언론은 믿기 힘들 정도로 둔해졌고 용산에선 차마 상상할 수조차 없던 참사가 일어났다. 거칠어지는 시대를 앞서 증거하는 것처럼 어느 화물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직 대통령도 생을 던지지 않고는 모욕을 감당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 모두를 남김없이 별일 아니라 지나오지는 않았고, 아니 각별히 기억했고, 그렇게 그럭저럭 견뎌냈고, 무탈 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1년을 돌아보니 MB는 그야말로 한 일이 없다. 조중동은 갖고 있던 것을 죄다 잃기만 했다고 타박하고 있다. 5000명에 육박하는 시국선언자의 명단을 보고 있노라면, 노무현을 폄훼했던 보수 엘리트층마저 MB를 혐오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다. 한명숙, 유시민 심지어 손석희가 나오더라도 오세훈을 이긴다는 서울시장 여론조사를 보고 있노라면, MB를 욕망의 대리물로 여겼던 서울의 반성이 읽힌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MB에게 최후통첩성 메시지를 던지고 있고, 중앙일보 역시 MB의 무능력에 고개를 떨구는 장면이 역력하다. MB는 강해보이지만, ‘공안통치’를 한다고 하지만, 그를 보위하는 조직은 경찰과 뉴라이트 정도밖에는 보이질 않는다.

어느새 6월10일에서도 또 이틀이 지났다. MB의 시간이 저무는 호흡은 가빠진다. 이대로 가면, 조중동이 그를 뜬다면, 내년 지방선거 민심이 그를 뜬다면 2012년을 기약했던 올해 광장의 구호의 원심력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테다. 그렇게 보면, 채 1년도 남지 않은 것이다. 그 사이 또 무슨 일이 있을는지 예측하긴 어렵지만 한예종과 싸우는 정부의 수준을 볼 때, 상황을 반전시킬 기막힌 수는 없다고 믿어도 좋다. 감정적 드잡이 외에는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정부이다. 사람은 많아도 별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제, 한나라당은 안 된다. 광장의 차오르는 분노를 해갈할 현실적 방법은 아직 마땅치 않지만, 어쨌든 MB식으론 안 된다. 그걸 완전히 확인한 6·10이었다. 보지 못한 민주당의 표정이 궁금하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에 벌써부터 황홀해지고 말았는지 말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